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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록 쾌선생 Oct 05. 2023

세종대왕과 디지털노마드

몇 년 전부터 디지털노마드라는 단어가 뜨기 시작했다. 디지털 기기들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노마드=유목민)을 일컫는 말이다. 놀면서도 일주일에 천 만 원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와,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여행사진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환상을 꿈꿨다. 그들이 보여준 모습을 나는 아무런 대책 없이 따라했다. 갑자기 KTX를 타고 부산에 가서 호캉스를 즐겼고, 다른 사람이 일을 하는 업무시간에는 영화나 전시회를 보며 왠지 모를 우월감을 느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자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노트북 하나면 어디든지 일할 수 있는 일상, 마음껏 출근하고 퇴근하는 자유로운 삶. 그도 그럴 것이, 유난히 문화생활을 좋아하던 내게 디지털노마드는 한 줄기 빛이었다. 사람들이 없을 때 가는 전시회는 나의 자유를 한층 업그레이드시켜 주었고, 매일 바쁜 직장인들과는 달리 나는 여유롭게 에세이를 쓰는 작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월 천만 원은 벌리지 않았고, 나는 그들의 실상을 알게 될수록 왠지 모를 배신감을 느꼈다. 이것이 자유라며, 이것이 사업이라며 말하던 사람들을 원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 쉬세요?’

내가 세종에게 자주 하는 질문이었다. 세종실록 기사를 살펴보니 6개월 동안 500개가 넘는 일을 처리하던 그를 보고서. 새벽 3시부터 일어나 일을 하고, 어른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며 회의는 기본, 제사까지 드리는 그를 보며 처음에는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 여겼다. 한 번은 ‘온천을 간다’라는 글에 ‘드디어 떠나시는구나! 그렇게 쉬실 때도 있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휴가를 가도 세종의 일은 멈추지 않았다.


1442년, 세종은 온양 온천행을 결정한다. 무려 49박 50일. 이 일은 왕비와 세자, 여러 대군들까지 같이 가는 큰 행사였다. 휴가를 간 거라 생각했던 내 생각과는 달리, 세종은 온천으로 가면서도 백성들을 돌보았다. 온천 근처의 백성들의 세금을 줄여주고, 노인들에게 곡식을 내렸다. 농민들에게는 술과 음식을 하사하기도 했다. 세종의 은혜에 어떤 노인은 꽃을 받들고 길 왼쪽에 꿇어앉아있으니, 세종은 목면 한 필을 내려주었다. (25/4/3)


세종은 겉으로 보면 디지털노마드가 맞다. 강원도를 가든, 온양온천을 가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마음만 먹으면 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진실은 휴가와 일의 연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것이었다. 세종은 아픈 눈을 고치기 위해 휴가를 간다는 명분이 있었지만, 백성들을 만나는 게 목적이었다. 현장을 시찰하는 일이자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이제 농사철을 당하였으니, 시끄럽게 함이 실로 많을 것이라 불가하다." 하니, 승지 등이 재삼 이를 청하므로 그제서야 허락하고, 임금이 말하기를, "내가 안질을 앓은 지가 10여 년이 되었는데, 이제 그대들이 굳이 청하여 이 행차가 있는 것이니, 대신으로 하여금 나의 본뜻을 알게 함이 옳겠다." 하였다.(23/2/20) 세종은 자신의 눈을 낫게 하기 위해 온천행을 택했지만, 가면서도 항상 백성들을 염려했다. 오로지 여유, 자유만을 외치던 내가 부끄러워졌던 순간이었다.


나는 디지털 노마드로 일을 하면서도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았다. 그들은 겉으로 봤을 때는 여유가 가득해보였지만, 실제로는 일에 열심이었다.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는 것도 아이디어 회의의 연장이었고, 다른 나라로 떠날 때는 새로운 영감을 받기 위한 시간으로 썼다. 취미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더욱 일을 잘하기 위해 독서를 했고, 전시회에 가는 건 그저 여유롭게 보내는 게 아닌 사업의 콘텐츠를 만들기 위한 목적이었다. 맞다. 그들이 하는 모든 활동들은 결국 자신의 일을 더욱 잘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성과가 좋을 수밖에.


이제 나는 그저 휴가만을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지방에 있는 고객들을 만나서 여행을 떠난다. 일부러 고객들과 커피미팅을 잡고, 컨설팅과 코칭을 진행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 혹여 놓친 것은 없을까 고민하고, 그들을 위한 선물을 하기도 한다. 고객 전에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 그들은 나와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번 책을 완성하고 나면, 전국으로 독자들을 만나러 갈 예정이다. 그저 휴가가 아닌,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그 분들의 삶에 한층 가까워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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