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활 태우지 않습니다. 맛있게 탑니다.
신혼 초 커피잔을 들던 아내를 빵 터지게 한 나의 말이다.
“왜 웃는데?”.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물었다. 눈물을 찔끔 흘릴 정도로 웃던 아내가 말했다.
“지난번에 대구 갔을 때 큰 아버님도 커피를 태운다고 말씀하셔서 되게 신기했는데, 서울에서 들으니까 더 신기해”
그렇다. 내가 늘 ‘태워’ 마시던 그 커피. 서울 사람들은 ‘타’ 마시고 있었다. 커피콩을 직접 볶아 로스팅하는 과정이 포함됐더라면 태워 마신다는 표현이 찰떡같았을 텐데, 생각해보니 서울 토박이의 웃음 버튼을 피할 길이 없었다.
커피 믹스뿐만 아니다. 미숫가루, 유자차, 홍초 음료 등 거의 모든 가루나 액상을 물이나 우유 등에 섞는 음료 레시피에 관해 “태워 마시다”라는 표현을 쓰면서 자랐다는 걸 새삼 느꼈다. 어릴때 마일로(milo)나 네스퀵 가루도 나와 친구들은 우유에 태워 먹었다. 찐 로컬의 인토네이션을 글로 쓰자면 “태^아 무따” 정도 되겠다.
식은 차는 “데파~” 마셔야 좋다. 요리 재료인 채소 ‘대파’와 발음은 거의 같지만 ‘데우다(heating/boil)’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