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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 Ji Youn May 14. 2019

조용한 시간을 대하는 마음

“잠깐만 조용히 해줄래.”


엄마가 너에게 한 말이 아니라, 네가 엄마에게 한 말이었다.


엄마는 너에게 말이 많은 편이다. 사실, 엄마가 말이 많은 것에 대한 자부심도 있다. 엄마는 네가 말을 전혀 하지 못할 때에도 너에게 엄청 많은 말을 했었다. 주고받는 대화의 재미는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소리를 내지 않으면 엄마는 그 조용한 시간을 견딜 수가 없었거든. 하지만, 네가 또래 아이들에 비해 말을 빨리 시작한 것도 그리고 이런저런 단어를 많이 아는 것도 모두 엄마가 말이 많았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는 너에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이유도 있다. 엄마는 너를 심심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너를 가만 놔두고 싶지 않았다는 의미라기보다는,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은 언제나 즐거웠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엇을 하고 놀까, 어떤 것이 있으면 좋을까, 이런 책을 읽어보면 어떨까 등 네가 유치원에 가 있는 시간 동안 엄마는 늘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너에게 하는 말이 많아졌고, 너 역시 엄마에게 하는 말이 많아졌다. 


너에게 말이 많은 이유가 또 있다. 네가 가만히 있으면, 네 머릿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물으면, 고맙게도 너는 네 생각을 엄마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네가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알게 되고 너와 점점 더 친해진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너와 있는 시간을 조용히 보낼 수 있겠니.


엄마는 조용한 시간을 견딜 수 없어서 말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너를 위해 시간을 조용하게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는 엄마에게 잠깐만 조용히 해달라고 했다.


“엄마가 조용히 하면, 그럼 넌 뭘 할 건데?”

“잠깐만. 나 생각하는 중이야.”


엄마와 너는 나란히 소파에 앉았다.

각자 과자 한 봉지를 손에 들고 베란다 창 밖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쯤 열린 베란다 창문 밖으로, 오래된 아파트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 커다란 나무가 흔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람에 흔들리던 초록색 나뭇잎들은 이리저리 햇빛을 받으며 노란색으로, 눈이 부시는 흰색으로, 연두색으로 계속 색깔이 변했다.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났다. 너와 엄마 사이에 나는 소리라고는 저 나뭇잎 소리와 과자 봉지 그리고 과자 씹는 소리뿐이다. 잠들지 않고 이렇게 계속 무엇인가 생각하는 네가 새삼 신기했다.


엄마는 바쁜 것이 익숙한 사람이다. 그게 옳다고 생각’되어진’ 사람이다. 많은 일을 끝내고 마무리 짓는 하루는 칭찬받아 마땅한 하루다. 많이 그리고 빨리. 그렇게 사는 것에 호감을 느낀다. 그래서, 출근을 하지 않게 된 첫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침 시간을 보냈다는 ‘죄책감’에 점심을 먹을 자격이 있는 것인지 반성을 했다니까. 그러다 보니, 엄마가 옳다고 생각하는 ‘시간을 대하는 자세’를 은연중 너에게 주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조용한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혹은 비생산적이며 낭비하는 시간이라는 그런 느낌이니, 너에게는 그런 ‘잘못된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싶었을까. 이렇게나 많이.


그 날, 엄마는 너에게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가끔은 너의 시간을 내버려둬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조용한 시간 속에 있어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너 역시 앞으로 ‘많이 그리고 빨리’가 좋은 것이라는 주변의 생각에 영향을 받게 되겠지만, 조용한 시간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생각을 스스로 품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엄마도 종종 죄책감 없이 조용한 시간을 즐겨보려고 한다. 

고맙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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