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매일 되뇌던 당찬 사회 초년생은, 드라마 속 주인공을 꿈꾸며 반복되는 하루를 버텼습니다.
타고 있던 버스가 신호등에 잠깐 정지해 있으면, 옆 차선에 서 있던 버스의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도 있었습니다. 앞으로 기울지 않으려고 혹은 문이 열리고 닫히는 계단에서 밀리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서 있는 내 모습이 창문에 비치면 괜히 아침부터 차량 맞게 코 끝이 찡 해지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이 엄마는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늘 이런 시기를 겪었으니까요. 게다가 ‘성장형 주인공’들이 사랑받는 인기 캐릭터 아니겠습니까? 언젠가 내가 반짝이는 시기가 오면, 고생했던 추억들은 소싯적 에피소드가 되어 빛을 발하겠지요.
그 당시, 출퇴근의 고단함과 과중한 업무는 감당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반짝이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도 확신했어요. 왜? 계획표가 있었으니까요!
계획표를 세우며 드라마의 엔딩 장면을 수없이 많이 상상해 봤습니다. 그 모습이 당시의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원동력이었으니까요.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을 때는, 승승장구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이 엔딩 장면에 등장했습니다.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는, 휴양지의 리조트에서 바닷가를 바라보며 마감 날짜를 챙기는 디지털 노매드를 마음속에 품었죠. 최근에 마케팅 일을 하고 있었다면, 아마도 파리에 있는 에밀리를 떠올렸을 겁니다.
드라마 엔딩 장면에 맞춰 계획은 계속 수정되었습니다. 자, 어땠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엄마는 승승장구하는 드라마 속 주인공을 경험해 봤을까요? 휴양지에서 바닷가를 바라보며 책을 읽고 노트북을 앞에 두고 키보드를 두드리는 디지털 노매드를 해봤을까요? 파리에서 에밀리처럼 매일 패션쇼 하듯 옷을 갈아입고 기발한 아이디어를 내며 생활할 수 있었을까요?
네, 그렇게 해 본 적은 없어요. 먼 미래라 할지라도 절대로 에밀리가 될 수도 없습니다. 그 드라마들은 내 드라마가 아니었거든요.
조연이 아니라 주연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당연해요. 그런데 어떤 드라마의 주연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렇게 나이가 들고 나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쓴 내 드라마의 주연이어야 하는데, 부럽기만 한 나와는 다른 성향의 사람이 주인공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고 싶었던 것이죠.
자기만의 드라마를 쓰고 그 드라마의 주연 역할을 맡아야 해요. 내 드라마를 쓸 줄 알았더라면, 나는 조직에서 승승장구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임원을 다는 엔딩을 꿈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와 어울리지 않는 엔딩에 억지로 맞추느라 고생하고, 속상하고, 시간을 허비했어요.
휴양지에서 한가롭게 글을 쓰는 작가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작가들이 모진 환경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머리를 움켜쥐며 글을 쓰고 있는 줄은 모르고, 잔뜩 겉멋만 들은 생각만 했습니다. 우리 집은 글을 쓰기 위한 환경이 아니라며 그래서 내가 글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불만만 늘어놨죠.
그저 멋있어 보이는 드라마라고 해서 내 것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에게 맞는 드라마를 먼저 써보려고 하세요. 멋있어 보이는 드라마와는 분위기가 많이 다를지는 몰라도, 내 드라마의 주연이 훨씬 더 내 옷처럼 편안하고 더 멋있고 더 잘 즐길 수 있으리라 확신합니다.
! 어떤 드라마의 주인공을 꿈꾸고 있나요? 내가 진심으로 원하는 드라마의 주연, 맞나요? 혹시, 다른 사람이 펼쳐 놓은 드라마의 주인공에 나를 맞춰가는 계획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