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im Ji Youn Oct 21. 2024

생각 많은 계획 중독자_
애착 계획표

아이를 낳고 나서야 처음으로 애착 인형이라는 말을 들어봤습니다. 고작 인형일 뿐인데 뭐가 그렇게 애착이라는 친밀한 정서적 관계를 느끼게 하는 것인지,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정서적인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지만, 정서적인 관계를 물건에게 느낀다니. 나는 그런 것 필요 없이, 아이와 직접적으로 친밀함을 형성하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이에게는 애착 인형이 꼭 필요했습니다. 아무리 아이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한다 하더라도,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어린아이에게는 엄마가 잠시 외출했을 때도 혹은 엄마가 늦게 들어올 때도 엄마의 냄새가 배어 있는 애착 인형이 꼭 필요했습니다. 아이는 애착 인형을 안고 자는 것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었어요. 엄마 냄새가 없어진다고 싫어할까 봐 함부로 인형을 빨지도 못했죠.


신기하더라고요. 내가 옆에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는 물건이 있다니.


생각해 보니 이 엄마한테도 그런 애착 물건이 있었습니다. 애착 인형은 아니고, 애착 계획표예요. 화려한 다이어리 꾸미기 시기를 보내고, 계획표 사랑으로 진화했거든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사회에 살다 보니, 계획표는 핸드폰을 들고 다니는 것과 같은 필수품 같았어요. 게다가 계획을 세우면 장점이 너무 많았어요.


1. 나는 목표가 있는 사람.

계획표는 그 존재 만으로도, 나에게 가슴을 뜨겁게 하는 목표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행동부터가 달라요. 하고 싶은 것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삶에 대한 자세도 적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목표를 이뤄내고 싶거든요.


2. 나는 시간을 허투루 쓸 생각이 전혀 없다는 증명하는 것.

올해의 계획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달에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맞춘 또 다른 계획이 있죠. 더 작게 세분화된 오늘의 계획도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계획이 있는 만큼 하루를 대하는 마음이 가벼울 수는 없습니다. 계획이 있다는 것은 시간을 함부로 대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3. 이대로만 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희망회로.

잘 세운 계획표를 바라보고 있자면, 절로 미소가 퍼지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이 계획을 실행한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해 보면, 벌써부터 뿌듯함에 소름이 끼칠 정도라니까요. 이제 겨우 종이에 썼을 뿐인데, 계획을 실행해 내는 과정을 다 아는 것만 같아요. 연애를 직접 해보지 않고 글로 배우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만, 그래도 나의 목표 달성을 위한 지름길이 내 손에 있는 거잖아요! 


이쯤 되면, 계획표가 없다면 건실하고 성실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을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계획표는 존재 만으로 든든함을 안겨주는 물건이었어요. 


그런데 이 엄마에게는 애착 계획표가 ‘너무’ 많았습니다. 계획표가 담긴 노트를 가방에 넣고 다니며, 잠시 틈이 나면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 커피 한 잔 앞에 두고 쉬면서 계획표를 수정하기도 여러 번 했어요.


계획표는 세워지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더욱 단단하고 치밀해지는 듯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것뿐이었어요. 계획표만 정교해졌거든요. 책상 앞에 앉아만 있을 뿐, 움직이는 것은 뒷전이었습니다. 실행은 머릿속에서만 진행되었죠.



!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나요? 혹시,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만 집중하고 있지는 않나요? 실행 가능한 계획, 실행하고 싶은 계획,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자신의 계획표를 한 번 훑어보세요.
이전 02화 생각 많은 계획 중독자_ 내 다이어리가 제일 잘 나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