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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Aug 09. 2020

출판 프리랜서의 고단함



며칠 동안 비가 퍼붓다가 어제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다. 비구름은 남쪽으로 내려가 거기서 또 홍수를 냈다. 사방이 축축했다. 장마 중의 토요일. 주말이 따로 없는 프리랜서도 토요일에는 조금 느슨해지고 싶다. 하지만 오늘은 깨자마자 부지런히 밥을 해 먹고 집을 나섰다.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이하 출판노조)에서 여는 외주출판노동자 권리 찾기 간담회에 참석하는 날이다. 




나도 가입하고 싶었지만


처음 간담회 모집글을 보고 오늘 집을 나서기까지 갈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나는 출판노조 조합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외주노동자의 권익을 위한 자리라니 가보고도 싶었고 출판노조에서 드디어 외주노동자를 위한 무언가를 한다는 사실에 고무되기도 하였다.  

출판노조에는 벌써 몇 년 전부터 가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주변의 조합원들에게 "출판노조에서 외주노동자를 위해 무엇을 하나요?"라고 물어보면 마땅한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뭐라도 하나 활동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글쎄요."라는 답 외에는 들은 적이 없다. 

그렇다면 스스로 찾아보자는 생각에 출판노조 네이버 카페를 찾아 들어갔지만 게시글이 올라오지 않은 지 한참이나 지난 죽은 공간이었다. 현재 알고 있는 건 트위터 계정뿐이었는데, 흘러가버리는 트위터의 특성상 지난 활동에 대해서는 통 알 수가 없었다. 출판노조 가입 신청서를 써놓고 보내지 못한 채 일 년이 훌쩍 지났다. 




느림보, 상느림보 


발제는 출판노조 조합원이자 문화예술노동연대 대표이신 안명희 선생님이 하셨는데, 발제 자료가 상당히 알찼다. 표준계약서 마련의 배경을 말하며 출판 외주노동자의 현 상황과 문화예술계 다른 직군 프리랜서들과의 비교, 현 정부와 국회의 움직임과 관련해 지금 반드시 표준계약서를 제정해야 한다는 당위까지. 그리고 이를 위해 외주노동자들이 어떻게 목소리를 내고 노조에서 무엇을 할 것이지를 의논하였다. 


간담회를 마치고 구면인 프리낫프리 편집장님과 그 자리에서 새로 만난 딸세포 출판사 대표님과 함께 티타임(이라고 쓰고 프리랜서 성토대회라고 읽는다)을 가졌다. 각자의 작업 스타일, 집중 시간, 생활 습관, 일이 몰아칠 때의 대처법, 스트레스 해소법, 에디터 연대의 중요성, 각자가 속한 모임에 끌어들이기 위한 영업까지. 우리가 할 말은 차고 넘쳤다. 우리가 오늘 나눈 대화만 정리해도 기사 시리즈가 뚝딱 나올 판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다시금 우리 모두가 동의한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의 일을 더 많이 드러내야 한다.

-일을 세세히 나누어서 그 각각의 과정에 단가를 붙일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어려운 건 우리끼리만 안다. 남들도 이런 상황을 알게 해야 한다. 

-혼자 다 끌어안고 있으면 나만 죽는다. 일이 많으면 나누자. 그러기 위해 평소에 네트워크를 쌓아야 한다.


나는 16년 차 단행본 출판 편집자다. 출판사에서 7년을 일했고 마지막 회사를 나온 뒤 9년째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내가 처음 출판계에 발을 들인 2005년부터 외주 출판 노동자의 작업비는 오르지 않았다. 내가 신입 편집자일 때 프리랜서에게 발주하던 교정교열 비용과 2020년 현재 나와 동료들이 출판사로부터 받는 교정교열 비용이 같다. 물가며 집값이며 최저임금이며 세상의 모든 가치가 올라갔지만 출판계 외주노동자의 처우는 그대로다. 느려도 너무 느리게 간다. 세상의 어떤 직군이 10년, 20년 차 경력자를 이렇게 홀대할까. 




외주노동이 일구어낸 한국의 책값


간담회 발제 내용 중 중요한 대목이 있었다. 한국 출판사 중 70%가 5인 미만 사업장이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노동법의 규제를 상당 부분 피해 갈 수 있다. 왜 한국의 출판사는 규모가 작을까? 외주노동자가 많기 때문이다. 굳이 정규직을 고용하지 않아도 쉽게 쓰고 버릴 수 있는 프리랜서들이 이 업계에 그득하기 때문이다. 출판 산업 자체가 외주노동자의 노동에 기대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노동자는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고용노동부에서도 일절 신경 쓰지 않는다. 4대 보험은 어림도 없고, 아무런 노동쟁의조차 할 수 없다. 모든 싸움은 민사로 처리된다. 그것이 바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한국의 책값이 싼 이유다. 우리의 노동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고 산출한 가격이다. 

우리는 종이보다 싸다. 종이값이 오르면 출판사는 그 오른 값을 내지만, 외주노동자가 단가를 올리면 일이 끊어진다. 출판사는 인쇄비, 물류비, 저자 인세는 지급하면서 외주자에게 줄 작업비는 미루고 또 미룬다. 심지어 그것이 '경영의 기술'이라며 자랑스러워 하는 사장도 있다.  




최근에 여러 업계 동료들을 만나고 있다. 예전부터 알던 사람도 있고 새롭게 알게 된 이도 많다. 하지만 나는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 그들과 연대해 우리의 일을, 우리의 상황을, 이 저렴한 노동을 업계 밖으로 더 많이 알려야 한다. 방송, 영화노동자들의 열악함은 업계 특성상 널리 알려지기도 했지만 그들이 계속해서 투쟁하고 교섭한 결과 많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이럴 때 통하나 보다. 우리도 더 나대고 더 싸우자. 오래 전에 써둔 출판노조 가입신청서를 드디어 보낼 때가 된 것 같다. 전화 통화도 무서워하는 인간이지만 이제는 그만 좀 움츠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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