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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Aug 02. 2020

망원동 물난리의 기억




에세이로 유명한 시리즈가 있다. <아무튼> 시리즈다. 그 시리즈의 훌륭함은 내가 말해봤자 입 아플 수준이다. 출판 상도 받았다. 여하튼 그중에 <아무튼, 망원동>이라는 책이 있었다. 성산동과 망원동을 터전으로 살았던 저자가 지금의 소위 '망리단길'(이 단어 싫다)을 보며 예전 망원동 시절을 추억하는 그런 내용이다. 나도 그 책을 읽으며 기억 속의 망원동을 많이도 끄집어냈었다.

나는 태어나 결혼 전까지 30년이 넘도록 망원동에 살았다. 망원동을 떠날 때는 홍대와 상수에서 밀려온 특색 있는 가게들이 하나둘 생겨날 무렵이어서, 실제로 '망리단길'이 되고부터의 망원동은 조금 낯설다. 그래도 언제나 망원동은 나의 애틋한 고향이고 아직 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이다. 




"거기 물난리 나는 동네?"


망원동은 서울에서 유명한 상습 침수 지역이었다. 최근까지도 어른들에게 망원동 산다고 하면 이런 말을 들을 만큼. 

"거기 물난리 나는 동네?"

 

우리 집은 물난리 피해를 많이 겪었다. 그러니까 다른 망원동 주민들보다 조금은 더. 유명한 84년, 87년 물난리 때도 망원동에 살았지만(나는 너무 어려서 기억이 없지만 친척집으로 피난을 가고 부모님이 했던 가게가 크게 손해를 봤다는 것만 알고 있다) 90년대부터는 아예 한강 코앞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망원동의 물난리는 한강이 넘쳐서 난다. 장마철만 되면 우리 엄마 아빠뿐 아니라 동네 어른들 모두 자주 한강에 나가 수위를 확인하곤 했다. 한강이 넘치면 바로 우리 집으로 물이 들어왔다. 같은 망원동이라도 한강에서 좀 떨어진 집들은 그런 자잘한 수해를 입지는 않았는데 우리 집은 그야말로 직빵이었다. 



감자물레방아나 만들던 어린이


당시 빌라에 살았는데 집은 1층이었고 지하실도 있었기 때문에 물이 조금만 넘쳐도 금세 난리였다. 엄마 아빠는 모래주머니를 쌓아 지하실에 물에 안 들어가게 막았지만 늘 한계가 있어 물은 지하실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운이 좋은 해를 제외하고는 초등학생 무렵에는 여름마다 물 때문에 고생을 했다. 

물론 실제 고생은 내가 아니라 엄마 아빠가 하셨다. 나는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고 그저 신기해 무릎까지 차오른 물을 발로 휘휘 저으며 마당을 돌아다녔다. <탐구생활>(당시 초등 방학 숙제용 학습지)에 나오는 감자물레방아를 만들어 실험을 하기도 했다. 사방이 물이니 물레방아 놀이를 하기는 안성맞춤이었다. 

(감자물레방아: 통감자 가운데에 막대를 박고, 몸통엔 돌아가며 책받침 자른 조각을 박아서 날개를 만든다. 철사로 다리를 세워 걸면 완성된다. 감자 위로 물을 부으면 바람개비 돌아가듯 물레방아가 돈다. 실제로 '방아'는 없지만 탐구생활에 그런 이름으로 나와 있었다.)    

그때 부모님은 참 얼마나 애가 타고 힘들었을까. 혹여나 물이 넘칠까 조마조마하고, 물이 넘치면 그걸 막느라 온갖 힘을 써야 했고, 물이 물러가면 뒤치다꺼리를 한참이나 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왜 거기 살았던 걸까? (부모님은 아직도 그 자리에서 살고 계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크면서 집을 넓힐 필요가 있었는데 한강 바로 앞의 그 빌라는 다른 곳들보다 저렴한 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애초에 저렴한 가격 때문에 결혼 직후 망원동에 터를 잡았던 우리 부모님은 그때에도 역시 수해의 위험을 감수하고 그 집을 산 게 아닐까. 




이제 망원동은 괜찮지만


고생 뒤에 낙이 온다고, 지금 이렇게 비가 엄청나게 오고 있지만 집 앞 한강은 넘치지 않았다. 망원 빗물펌프장이 근처에 생기면서 망원동은 이제 서울 한강변 지역 중 빗물 관리가 꽤 잘 되는 곳이 되었단다. 어렸을 때 망원동을 지역구로 출마하는 의원들마다 수해 피해를 줄이겠다는 약속을 했던 기억이 난다. 생활과 정치가 이처럼 가깝다는 것을 어쩌면 나는 한강의 물난리를 통해 처음 배웠을 것이다. 

충북에서 잡혔던 지방 일정이 있었는데 어제오늘 비가 많이 내려 산울림이 나고 제방이 무너지는 등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했다. 우리도 일정을 취소하고 비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지난주에도, 며칠 전에도 부산과 대전에서는 큰 물난리가 났다. 그러나 방송사들은 크게 보도해 주지 않았다. 비가 점점 북상하며 수도권에 이르자, 이제야 온갖 방송사에서 앞다투어 보도를 하는 것이다. 부산 시민들은 재난 주관방송사인 KBS는 부산에서 수신료를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말 그대로 '서울공화국'인 한국의 모습이 이 비를 따라 고스란히 드러난다. 재난 앞에서 소외감을 느끼게 하는 정치를 이제 좀 바꾸면 안 될까? 지역 균형 발전을 말하기 전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활부터 챙겼으면 좋겠다.  




1984년 망원동 물난리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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