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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Mar 03. 2019

2019년형 효도

이케아에서 쇼핑하려면



"지금 출발~"

엄마가 토요일 낮 1시에 카톡을 보내셨다. 분명히 언제쯤 출발할지 미리 알려달라고 했는데 대뜸 출발하면서 연락하시다니... 덕분에 침대에서 뒹굴거리다가 용수철처럼 일어나 미리 삶아둔 달걀 한 알 먹고 세수하고 옷 주워 입고 집을 나섰다. 나는 고양시에 살고 있고 부모님은 마포구에 사시는데, 오늘은 엄마 아빠랑 이케아에서 만나기로 했다. 연락이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좀 늦는 건 어쩔 수 없지. 아, 봄인데 나는 겨울 패딩을 입고 나왔다. 생각할 시간도 없었을 뿐더러 손에 잡히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들어가면 덥겠는걸. 버스 안에서부터 벌써 덥다. 





이케아에 도착해 전화를 했더니 부모님은 '5번 진열대 앞'이라고 하셨다. 5번 진열대? 5번 코너가 아니고 진열대? 약간의 의심이 들었지만 일단 5번 구역으로 달려갔다. 열심히 둘러봐도 부모님은 없었다. 알고보니 일반적인 입장 코스인 쇼룸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계산대 있는 쪽으로 들어가셔서 창고처럼 물건이 쌓여 있는 구역에서 헤매고 계셨다. 안에서 쇼룸 쪽으로 다시 가는 건 힘들 것 같아서, 아예 들어갔던 문으로 다시 나오시라고 했다. 겨우 만나서 다시 2층 쇼룸부터 구경을 시작했다. 





이케아에 가본 사람은 다 알겠지만 쇼핑은 2층 쇼룸에서 시작된다. 입장시 노랑 장바구니와 메모를 위한 종이, 연필, 줄자가 제공된다. 인테리어 돼 있는 가구와 소품을 메모한 다음 레스토랑에서 간식을 먹으며 기력을 회복하고 내려가 창고형으로 쌓여 있는 구역에서 메모해 온 물건들을 담으면 된다. 전시된 물건에는 이 상품을 어디에서 가져갈 수 있는지 위치가 적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구간 중에 특정 물건이 많이 쌓여 있는 곳에서는 알아서 하나씩 들고 오면 된다. 쇼룸에서 장바구니를 끌고 들어가도 되지만 괜히 통행에 방해만 되고 힘들기 때문에 장바구니는 아래층 내려가서 그때 밀어도 된다. 사실 중간 중간 나왔던 물건들도 아래층 가면 다 다시 나온다.


어쨌든 이런 시스템은 부모님에게 쉬운 것이 아니다. 아버지는 70대, 어머니는 60대이신데 당연히 젊은 사람보다 새로운 시스템 적응이 느릴 수밖에 없다. 나도 페북을 처음 시작할 때 "이제 뭐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하면서 버벅거린 기억이 있다. 그때, 내가 나이들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목표한 장식용 테이블이나 욕실 수납장은 사지 못하셨지만 - 엄마 마음에 쏙 드는 게 없었다. - 몇 가지 생활용품과 얼마 전 구매한 새 쇼파에 어울리는 쿠션과 방석을 세트처럼 맞추어서 사셨다. 나는 덩달아 부엌 발깔개와 프라이팬을 얻었다. 엄마가 사주는 분위기라서 마음대로 살 수는 없었다. 싼 것만 적당히 골랐다.(당연히 내가 살 때도 마음껏 살 수는 없지만....)


이케아 레스토랑에서도 음료와 커피는 한 번 컵을 계산한 뒤 여러 번 리필해 마실 수 있다는 점, 식당 전용 카트와 트레이를 조합하는 법, 줄을 선 뒤 특정 음식은 특정 구역에서만 주문할 수 있는 점 등 적응할 부분이 많았다. 나는 몇 번 와봐서 익숙하기도 하고 학교 구내식당  같은 시스템이라 금방 익숙하지만 이 역시 부모님에게는 한참 관찰해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몸과 정신이 또렷하더라도 새로운 시스템을 학습하는 건 다른 감각이 필요한 일이다. 여러 부분의 관찰력과 이해력과 에너지가 소모된다. 게다가 이케아는 미로 같은 구조로도 유명하다. 해외의 한 남성이 이케아의 안내 화살표를 바꾸어 놓아 많은 사람이 이케아에서 몇 시간 동안 나오지 못했고, 그는 붙잡혔다는 기사를 봤다. 고양 이케아도 길을 잘못 들면 한참을 헤매게 된다. 부모님이 새로운 곳에 가셔서 곁은 스쳐가는 수많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어리둥절 하다가 체념하고 빈손으로 돌아나오실 모습을 생각하면 나는 급격히 슬프다. 


우리는 부모님보다 돈이 없는 세대다. 남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확실히 부모님보다 돈을 적게 벌고 있다. 그런 내가 부모님께 드릴 수 있는 효도는 바로 이런 부분이 아닐까. 새로운 시스템을 보여드리고 함께 경험하는 것. 다음에는 부모님만 오셔도, 혼자 오셔도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알려드리는 것. 어쩌면 다른 친구분들과 오셨을 때 우리 엄마가 한걸음 나서서 설명하실 수도 있지 않을까. 조금은 으쓱한 마음으로. 이것이 2019년의 효도라고, 돌아오는 길에 혼자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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