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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Oct 29. 2018

자, 이제 나가주세요

고마웠다 6년 동안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이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언젠가 재개발 될 것이라는 사실은 계약 전부터 고지된 사항이었다. 

그러나 더불어 많은 이웃 지구의 재개발 무산 소식이 들려왔고 우리가 세를 든 건물의 주인도 재개발이 언제쯤 되려나 매일 근심이 많다고 했다. 그는 4층짜리 빌라 한 동을 모두 소유했는데, 등기도 깨끗했다. 계약할 때 들은 바로는 어디 대학의 교수라고 했다. 


집 근처에는 늘 "재개발 결사 반대!", "재개발 허가 직권 해제하라!" 등이 적힌 현수막과 대자보가 붙어있었다. 우리에게는 대자보를 쓸 권리도 없었지만, 내심 그 대자보들이 반가웠다. 반대 의견이 있으면 재개발이 쉽지 않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곳에 계속 살고 싶었다. 이 집이 너무 좋아서가 아니라 그동안 오를 대로 올라버린 전세값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대자보를 쓸 권리도 없었지만



재개발 전에 최대한 신경을 덜 쓰고 싶었던 건지 그냥 좋은 의도인 건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가 이 집에 7년 넘게 사는 동안 전세 보증금은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친구들이 치솟는 보증금 때문에 이사를 다니면서 우리에게 "그 집은 괜찮아?"라고 묻으면 "응, 살고 있는 사람한테는 안 올린대. 게다가 재개발 때문에..."라고 답해왔다. 그러면 친구들은 "그래도 그게 어디야, 부럽다."라고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질문을 했던 친구들은 모두 나보다 형편이 좋고 가계 수입이 많은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에게 집 문제로 부럽다는 말을 듣는 게 어딘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지난 9월, 드디어 재개발 조합에서 연락이 왔다. 12월 말까지 집을 비우라는 통보였다. 생각보다 기한이 빠듯했다. 사실 지역 카페에서 재개발이 확정됐느니, 진행이 됐느니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불안했고 소문을 확인하려 부동산에 몇 번 연락을 했다. 부동산에서는 법적으로 6개월 전에는 통보를 해주니까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에게 주어진 기간은 3개월이었다. 


이 집에 이사올 때 중개해 주었던 부동산에서 다음 집을 찾아주었다. 우리가 생각한 예산을 말씀드렸는데 부동산에서는 난색을 표했다. 지금 있는 집의 보증금에서 몇 천만 원을 올린 금액이었지만 그나마도 없다고 했다. 우리 집의 짐을 생각하면 더 작은 집으로는 갈 수 없는데 그러자면 감수해야 할 조건이 아주 많았다. 


예를 들자면 대중교통이 불편하거나,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이거나, 30년 전에 지어져 아주 나쁜 컨디션이 예상되는 그런 집들이었다. 그래도 몇 군데 꼽아 놓은 곳을 다녀 보기로 약속해 놓았는데, 룸메가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금액을 훨씬 더 올려서 집을 찾아달라고 했다. 부동산에서는 반색을 하며 금방 좋은 집을 찾아주었다. 가까운 곳의 소형 아파트였다. 지금보다 3평 커지고 1층이라 단점도 많았지만 내부가 깨끗하게 수리되어 있는 집이었다. 하지만 그 집의 전세 보증금은 지금 있는 집의 세 배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우리가 이 집에 사는 지난 6년 동안 시세는 두 배가 올랐다. 두 배의 보증금을 내고서도 비슷한 집을 찾을까 말까였다. 옷장, 침대, 냉장고, 세탁기, 책장, 책상 등 큼직한 짐들만 생각해도 지금보다 작은 평수의 집에서는 살기가 힘들다. 최소한 같은 평수의 집으로 옮겨야 한다. 하물며 조금이지만 더 크고, 오래되긴 했어도 명색이 아파트이며, 내부 수리까지 다 되어 있는 집이니 세 배가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로 보였다.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몇 번의 회의를 한 결과, 우리는 대출을 한껏 받기로 했다. 사실 우리가 이제까지 돈을 적게 벌고 적게 쓰며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두 사람 몫의 생활비만 감당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대출을 받고 이자를 내야 하면 우리는 이제 예전처럼 살 수 없다. 필요한 대출액을 계산해 보니, 월 이자를 30만 원 정도 내야 한다. 거기에 아파트 관리비가 월 13~16만 원 정도다. (지금 있는 빌라의 관리비는 2만 5천 원) 지금보다 월 평균 40만 원 정도를 더 내며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이 괜찮을까?"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이제까지처럼은 못 살아."

"이제 많이 벌어야 돼."

"나 앞으로 돈 많이 벌거야." 


우리는 이 오래된 빌라를 떠나는 시점에 인생에서도 중요한 결심을 해야 했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집에서 살기로 하는 결심, 이제까지의 느슨한 삶을 어쩌면 버리겠다는 결심, 앞으로 돈에게 더 자리를 내주는 삶을 받아들이겠다는 결심. 자본주의 사회에서, 조금 더 안락하고 깨끗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은 곧장 돈과 연결된다. 너무나 명확한 이 연결을 우리는 일단 따라가기로 했다. 


하기 싫은 일감을 거절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작업 시간을 낼 수나 있을까? 야근을 안 할 수 있을까? 늦잠을 잘 수 있을까? 일이 끊기면 어떡하지? 대출 이자는 절대로 밀리면 안 된다는데 가능할까? 괜히 욕심 부렸다가 주변에 손 벌리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이제 취직도 쉽지 않은 나이라 여차하면 출판사 들어간다는 옵션도 이제 어려운데. 


수많은 걱정들이 밀려왔고 지금도 무엇 하나 해결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 작은 아파트를 계약했다. 설령 2년 뒤에 전세금이 오르면 가차없이 나와야 한대도, 그 후에는 지금보다 더 나쁜 조건의 집으로 옮겨야 한대도, 일단은 한 걸음 걸어가 보기로 했다. 조금 무리하며 2년 정도 살아보는 것도, 어쩌면 큰 경험이 되겠지. 


룸메는 앞으로 돈을 열심히 벌겠다고 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거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 말에 어쩐지 믿음이 갔다. 원래 허세가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당장 아무 것도 없지만 믿을 수 있다. 



고마웠어, 그동안



내일 우리는 이사를 간다. 이미 동네의 여러 집이 떠나고 있다. 어제는 도서관에 가면서 비가 막 그친 동네 길을 몇 장 찍었다. 오래된 벽돌과 언덕, 할아버지들이 모여 노시는 정자, 작고 오래된 도서관, 모두 삼십 년은 넘었을 오래된 빌라들과 그 빌라의 이름을 쓴 글씨들. 오래 전부터 폐쇄된 작은 놀이터들. 내년이면 모두 사라질 이 풍경들. 시장에 오는 날에는 가끔 들러서 살펴봐야지. 멀리 가는 것도 아니니까. 


부모님을 떠나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살게 된 집. 춥고 더웠지만, 더 춥고 더 더운 밖을 피해 들어올 곳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집에도 동네에도 내내 불만이 많았지만 사실은 우리가 가진 적은 전세금으로 얻을 수 있는 최상의 집이었다. 게다가 몇 년이나 군소리 없이 머물게 해주었다. 어떤 미래가 있을지 아직 모르지만 우리를 한 발 나아가게 도와준 것도 꼭 이 집이다. 


이렇게 부서질 때까지 살 줄 알았으면 못이라도 마음껏 박을 걸 그랬지. 

고마웠어, 그동안.



주의_ 그림이 실제보다 넓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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