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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Dec 17. 2017

겨우내 온기 얻기

(일부) 러시아보다 추운 한국에 사는 수족냉증러


아유, 손 시려.
뭐? 고작 이거 하고 손이 시리다고?
얘가 어려서부터 손이 차잖아. 그래서 내가 뭔 일을 못 시켜.




얼마 전 엄마, 이모랑 김장을 하는데 절인 배추 좀 짜고 나르니 금세 손이 시렸다. 손이 시려서 손이 시리다고 말한 것뿐인데 이모는 깜짝 놀라고 엄마는 저래서 어쩌냐며 한숨을 쉬신다. 그렇다, 나는 러시아보다 춥다는 겨울 한반도에 사는 수족냉증러. 


수족냉증이 있는 분들은 익히 알고 있겠지만 남들보다 빨리, 많이 손이 시리다. 겨울에 찬물로 뭔가를 한다는 게 고통스러울 정도다. 오늘 아침에도 햄채소볶음을 하려고 대파와 파프리카, 양파를 씻고 자르는데, 그 잠깐도 어찌나 손이 시린지 따끔따끔 통증이 느껴질 지경. 그래서 겨울에는 요리를 하기가 더욱 힘들다. 찬물에 여러 번 씻어야 하는 쌈채소를 잘 사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다. 쌀을 씻을 때는 손 대신 거품기나 주걱으로 휘젓는다. 

외출할 때는 장갑을 필수로 끼지만 그래도 손끝은 시리다. 매년 보다 완벽한 장갑을 찾아 헤맨다. 발은 또 어떤가 두꺼운 등산양말이 아니면 반드시 두 개를 겹쳐 신어야 한다. 발가락에 동창이 걸린 지 벌써 십 년도 넘었는데, 조금만 보온을 소홀히 하면 재발이 되어 간지럽고 염증이 생긴다. 




혼자 있을 때는 보일러를 틀지 않는다



결혼 후 첫 겨울을 지날 때다. 룸메도 나도 어려서부터 부유한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절약은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이다. 나는 혼자 있을 때는 보일러를 틀지 않았다. 그냥 옷을 한 겹 더 입고 있었다. 룸메가 밤에 귀가하면, 그때서야 한 시간 정도 보일러를 돌려 집을 살짝 덥히고 잠자리에 들었다. 정말 딱 한 시간, 길면 두 시간 정도만 가동했고 약간 온기가 올라오면 바로 껐다. 그 정도만 해도 집안 공기가 꽤 따뜻해졌다. 그렇게 지낸 한 달이 지나고 가스비가 나왔다. 15만 원 정도였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그렇게 아껴서 틀었는데도 이렇게 많이 나오다니! 내가 맘껏 따뜻하게라도 지냈으면 억울하지나 않지. 그렇게 아꼈는데도. 


그 후 우리는 규칙을 바꾸었다. 보일러는 한파주의보가 나오거나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만 동파 방지용으로 가동했고 대신 침대 위에 온수매트를 깔고 잤다. 온수매트 자체도 꽤 값이 나가긴 하지만 마침 시어머니께서 선물을 해주셔서 감사히 쓰게 되었다. (시어머니가 혼자 김장하신다고 하여 둘이 내려가 종일 도왔는데 그게 기특하셨는지 온수매트를 사주셨다. 김장 다음날 허리는 끊어지게 아팠지만 그 온수매트가 겨울 내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우리는 좌식 생활을 하지 않고 집안에서는 항상 실내화를 신으며, '휴식'에 해당되는 거의 모든 활동을 침대 위에서 한다. 예를 들면 티브이 시청이나 간식 섭취나 대화, 독서 등등. 그러니 사실은 바닥 난방이 그리 절실하지 않다. 침대 생활을 하면 바닥 난방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사니까 전기료가 4만 원대, 가스비가 2-3만 원대로 나왔다. 그럭저럭 견딜 만한 수준이다. 침대 속이 따뜻해도 집안 공기가 차서 코끝은 좀 시리지만. 


우리 집은 방이 두 개인 작은 빌라다. 14평 정도인데 집의 세 면이 외벽이고 한 면은 복도다. 작년 겨울, 30평대 아파트에 사는 친구네에 놀러 갔다.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아주 훈훈한 기운이 감돌아서 겉옷을 빨리 벗었다. 친구는 한 달 난방비가 7-8만 원 정도이며 한두 시간만 틀어도 종일 따뜻하다고 했다. 그때 알았다. 아, 집이 부실하면 유지비가 더 드는구나. 잘 지어진 집은 훨씬 넓어도 적은 연료로 오랫동안 따뜻하구나. 



잘 지어진 집의 연료 효율이 부럽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손가락이 시려 몇 번이나 양손을 엉덩이로 깔고 앉았다. 수면양말을 신고 털실내화를 착용해서 발은 별로 시리지 않지만 키보드나 태블릿을 사용할 때는 손이 꽤 시리다. 요 몇 년 사이 환절기가 오면 자꾸 손가락 한포진에 걸린다. 손가락에 습진 같은 오돌토돌한 수포가 돋아나다가 심해지면 아주 간지럽고 염증이 생겨 열이 나며 아파오는 피부 질환이다. 동네 피부과에서는 스트레스성이라고만 하다가, 자꾸 재발하니 점점 더 독한 약을 쓰고 있다. 의사는 피부의 온도차가 심할 때 안에서 땀이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생기는 현상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손의 온도차가 커서 그런 것 같다. 손도 발도 무탈했으면 좋겠다. 간지러워서 잠 못 드는 밤도, 가스비 폭탄도 무섭다. 



다른 수족냉증인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한반도에서 살아가기 참 힘들지요. 부디 이 추위에 무탈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들 만나면 서로 손은 잡지 않기로 해요. 우리끼리 잡아봤자 나아질 게 없잖아요. 그저 각자의 주머니 속에서 꼼지락꼼지락 추위를 이겨냅시다. 모두들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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