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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Sep 04. 2018

근력 밑바닥 인생

남은 건 운동뿐이야


개복치 알아요?



"... 혹시 개복치 알아요?"

트레이너는 내 인바디(체지방과 근육량 근사치를 측정하는 기계) 결과지를 앞에 두고, 내가 줄줄이 읊어대는 통증 부위를 다 듣고 나서 대뜸 개복치란 단어를 꺼냈다. 

'사무직 노동자가 다 그렇지, 다들 짬 내서 운동을 하고 또 한동안 안 하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운동하는 거 힘들어하고, 뭐 사람 다 비슷한 거 아냐? 나는 그냥 평균의 사무직 인간인데.'라는 나의 안일한 생각은 이어지는 트레이너와의 대화에서 크게 깨졌다. 


"제가 여기에서 만난 분들 가운데 최하위 두 명 중 한 명이에요. 그리고 다른 한 분은 50대예요." 

정말 믿을 수가 없었다. 여기 있는 사람 중 내가 꼴찌라고? 나보다 나이 많은 분도 엄청 많은데? 아니 이게 어찌 된 일이야? 정말 다들 그렇게 건강에 신경 쓰면서 열심히 운동하면서 사는 거예요? 나만 쓰레기였어?


아무리 내가 학교 때 체력장 아주 잘해야 3급, 못하면 5급인 사람이지만, 성인이 된 이후로 운동이나 몸을 움직이는 취미를 그래도 여러 개 거쳐 왔다.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재즈댄스 3개월, 헬스 3개월, 요가 3개월, 아르헨티나 탱고 1년, 스윙댄스 2개월, 수영 3년(겨울이면 몇 달 쉬긴 했지만), 조깅 5-6km씩 가끔, 그 외 짐볼이나 밴드를 이용한 다양한 홈트레이닝들. 이 중에서 가장 오래 한 것은 역시 수영이고 나름대로 재미를 붙여서 비교적 오랫동안 할 수 있었다. 수영을 하면서 운동의 기쁨을 알게 된 것도 있었고. 그래도 여전히 내가 쓰레기라고? (수영도 지난 6개월간 쉬긴 했지만) 



퍼블리셔스테이블이 가르쳐준 무릎



최근 옛 서울역사에서 열렸던 독립출판물 행사 퍼블리셔스테이블에 참여했었다. 친구랑 팀을 이루어 나갔는데 3일 동안 행사장에 나가 있었다. 많은 독자들을 만났고 가족들, 친구들도 응원차 방문해 즐겁게 인사를 나누고 갔다. 문제는 둘째 날 저녁에 생겼는데, 귀가해 샤워를 마치고 나니 두 무릎이 빨갛게 부어올라 있었고 아프고 열이 났다. 냉찜질을 하고 맨소래담 로션도 듬뿍 바르고 잤더니 다음날 아침엔 가라앉아서, 행사장에 다시 나가 일을 했다. 같이 부스를 지키던 명 작가에게 무릎 상태를 얘기했더니 우리 나이가 그런가 보다며, 자신은 어제 허리가 너무 아파서 한참 고생했다고 한다. 


대체 무릎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부스를 지키며 자꾸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서(손님이 내 책에 관심을 가지시면 자연스럽게 일어나서 인사를 하고 책 설명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이 정도로 무릎에 문제가 생기다니 이건 그냥 두어서는 안 될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간 팔팔한 나이에 휠체어 신세를 질 수도 있다. 


어렸을 때부터 무릎이 아팠다. 그때는 아무리 소아과에 가도 성장통이라고만 했다. 그런데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어도 무릎은 계속 아팠다. 스물다섯 살 때 연세 병원 관절 센터에서 나를 진찰한 의사는 엑스레이 수십 컷을 찍더니 '슬개골연골연화증'이라는 진단명을 알려주고, 선천적으로 무릎뼈가 약간 비뚤어져 있어서 계속 연골이 닳으며 아플 거라고 했다. 약도 수술도 소용없으니 그냥 조심히 살라고 말했다. 


근래 체중이 붇기도 했고 무릎 상태도 있어서 근육을 키우기 위해 일단 피트니스센터를 알아봤다. 운동선수들도 연골이 닳은 경우가 많은데 근육으로 버틴다고들 하지 않는가. 이제는 근육을 키워야 할 때다. 더 이상은 미룰 수가 없다. 동네의 모든(그래 봤자 두 군데) 피트니스 센터에 상담을 하고 더 쾌적한 곳으로 골랐다. 관절 문제와 코어 근육을 케어하기에는 기계 필라테스가 좋다고 해서 동네 새로 생긴 필라테스 학원에도 가봤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액수의 수강료에 깜짝 놀라 나왔다. 가기로 한 피트니스센터는 회원을 1년 단위로만 받는데, 그 1년 치의 이용료보다 필라테스 3개월 치가 훨씬 더 비쌌다. 30만 원이 조금 넘는 돈을 3개월 할부로 결제하고 피트니스센터에 다니기 시작했다. 회원권을 끊으면 OT라고, 몸에 맞는 운동을 소개해주고 기구들을 알려주는 트레이너와의 1:1 시간을 두 번 제공해 준다. 한 달 가까이 기다려 겨우 트레이너를 만났다. 그 한 달 동안은 러닝머신도 하고 사이클도 하고 GX라는 그룹 레슨도 듣곤 했다. 



제가 보통은 이렇게까지 안 권해요 


그래도 운 좋게, 자격증 있는 트레이너를 만났다. 보통 헬스장에서 일하는 트레이너들은 자격증이 없어도 취직이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자격증이 있어도 박봉으로 긴 수습 기간을 버텨야 하기 때문에 전문가가 양성되기 어려운 구조라고 들었다. 헬스장이든 헤어숍이든 일반 기업 정규직이든... 기댈 곳이 없으면 힘들긴 마찬가지인 취업의 현실. 


나를 개복치라고 한 트레이너는 무릎 주변 근육과 허벅지 근육, 코어 근육, 등 근육을 자극하는 운동들을 알려주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운동도 있었지만 몰랐던 운동도 있었다. 알고 있던 운동이라도 제대로 된 자세와 꼭 신경 써야 할 포인트를 알려주었다. 강도도 모두 내가 침착하게 해낼 수 있는 정도로만 시켰다. 이까짓 거 뭐 별 거 아니네, 하고 돌아온 나는 다음 날 허벅지가 아파 걷기도 힘든 상태로 깨어났다. 그날 홍대에서 거래처와 미팅이 있었는데 경의선에서 내려 2호선 쪽으로 걷는 동안 다리가 아파 빨리 갈 수가 없어 속이 바짝 탔다. (어기적거리며 갔어도 다행히 미팅에는 정시에 도착했다.)   


스쿼트, 일반적으로 많이들 하는 거고 나도 10년 전쯤 처음 헬스장에 갔을 때 트레이너에게 배웠다. 그 뒤로 많은 운동을 거치면서 또 여러 번 배웠고, 집에서 티브이를 보면서도 가끔 스쿼트를 하곤 했다. 하지만 트레이너가 시킨 대로 스쿼트를 하니 정확히 내가 키워야 할 무릎 주변 근육이 아팠다. 정확한 운동이 이런 것이구나. 나는 좀 감동받았다. 


하지만 트레이너와 계속 운동을 할 수는 없었다. 기본 제공 2시간이 끝나면 나는 혼자 운동을 해야 한다. 트레이너에게 내가 가야 할 방향을 잡아 달라고 했다. 트레이너는 "제가 보통은 이렇게 권하지 않아요. PT 하세요, 진짜."라고 말했다. 게다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제가 욕심이 나요. 이렇게 몸이 부실한 분도 드문데, 회원님은 게다가 열심히 하시니까, 앞으로 정말 많이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랬다. 나는 트레이너가 탐내는 회원이었다. 나도 PT를 받고 싶었다. 정확하게 운동해 근육을 키우고 싶다. 하지만 PT는 10회에 50만 원이었다. 나에게는 사치다. 필요하지만, 할 수 없다. 이미 센터 등록에만 30만 원이 넘는 돈을 썼다. 이 할부가 아직 두 달이나 남았는데 또 50만 원을 결제할 수는 없다. 정말 그건 나에게 너무 큰돈이다. 



근력 밑바닥 인생 청산해



트레이너가 알려준 운동의 이름을 모조리 적어 두고 동작이 기억 안 나면 유튜브를 찾아보면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가끔 그 트레이너가 와서 자세도 고쳐주고 조언도 해준다. 신경 써 주는 것 같아 고맙다. 센터에 매일 가면 일할 시간이 너무 적어져서 이틀에 한번 가며 1시간 이상 운동하고 온다. 아주 조금씩이지만 다리에 근육이 늘고 몸도 가벼워지고 처음에는 아주 힘들었던 동작들이 수월해진다. 횟수나 강도를 조금씩 늘려가며 운동하면 될 것이다. PT를 못 받아도 꾸준히 열심히 내 몸 내가 챙겨야 하니까, 무릎 더 오래 써야 하니까, 이제는 근육을 키울 거다. 


보통 트레이너들은 상담할 때 여성 회원들에게 늘 다이어트에 대해 묻는다. 나는 "관심 없어요."라고 잘라 말했다. 내 운동 목표는 재활이고 건강이라고. 이제 근력 밑바닥 인생 청산하고 근육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거야. 개복치라니! 쓰레기라니! 정상적인 아니, 강한 인간이 될 거야. 아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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