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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준가 Mar 19. 2020

엄마가 사왔던 딸기는


코로나19 때문에 가급적 외출할 일을 만들지 않고 전 국민이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 중이지만 먹고사는 일은 돌림병의 위험만큼 엄중해서 텅텅 빈 냉장고를 털어 먹다 보면 시장이며 마트에 안 갈 수가 없다. 초반에는 온라인 마트로 몇 번 장을 봤는데 이제는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온라인으로 장을 봐서 그런지 온갖 식료품이 거의 매일 품절 상태이고 어찌어찌 장을 본다 해도 평소에는 당일이나 다음날에 왔던 것이 이제는 이틀이나 사흘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왜 사회적 거리두기일까? 물리적 거리두기가 아니고? 그냥 좀 인간들 떨어져 있자는 의미 아닌가? 사회적으로는 SNS나 각종 통신수단으로 별로 거리를 안 두는 게 아닌가 싶은데. 여튼 사회적이든 물리적이든 행인들과도 가급적 거리를 두고 시장과 마트의 다른 이들과도 가까이 있지 않으려 조심하고 있다. 물론 전혀 신경을 안 쓰는 듯한 사람도 어디든 꼭 있지만. 


딸기 한 팩에 이천 원


마트에 들어서자 마침 과일코너 타임세일이 시작되었다. 마이크를 잡은 아저씨는 딸기가 한 팩에 이천 원이라고 소리쳤다. 정상가는 그 두 배 정도였기에 얼른 가서 개중 괜찮아 보이는 두 팩을 골라 가져왔다. 타임세일 제품은 꼭 별도로 가격표를 붙여서 가야 한다는 것쯤은 모두 다 아시죠.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두 줄로 차곡차곡 들어가 있는 딸기. 윗줄은 좀 크고 신선해 보였지만 아랫줄은 작고 시들해 보였다. 할인 방송을 듣자마자 예상했지만 당연히 상품성이 조금 떨어지니까 가격을 내려 파는 거겠지. 그래도 이런 딸기라도 한 팩도 아니고 두 팩을 사니 기분이 좋았다. 실컷 먹을 수 있으니까. 무른 딸기도 그리 싫지 않다. 괜찮은 것들은 그냥 먹고, 좀 무른 것들은 으깨서 우유에 넣어 먹으면 아주 맛있다. 


집에 와 딸기를 우르르 부어 찬물에 여러 번 씻고 칼로 하나씩 꼭지를 따며 으깰 것과 그냥 먹을 것을 구분했다. 나는 꼭지를 다 따서 포크로 하나씩 쏙쏙 집어 먹는 게 좋다. 엄마는 딸기 꼭지를 따지 않으신다. 딸기를 사오면 식구들이 모여 초록색 꼭지를 손가락으로 집고 딸기과육을 이로 잘라 먹었다. 혹시라도 달지 않은 위쪽 하얀 과육 부분을 남기면 야단을 맞았다. 그건 수박도 마찬가지. 뭐든 싹싹 남기지 않고 먹는 버릇을 들이려 노력하셨다. 엄마는 무른 딸기를 골라 숟가락이나 손으로 으깨고 설탕을 넣어 밀폐용기에 넣어두셨다. 그것을 우유에 타서 먹으면 훌륭한 간식이 되었다. 다른 간식은 잘 드시지 않던 엄마 아빠도 그렇게 만든 생딸기우유는 기쁜 표정으로 드셨다. 나는 엄마 옆에서 가끔 딸기를 고르기도 하고 으깨기도 했다. 그러면서 설탕이 생각보다 많이 들어가야 맛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엄마랑 똑같이 좋은 딸기와 무른 딸기를 골라내면서 우리 엄마도 나처럼 할인하는 딸기를 사오셨겠지 싶었다. 가장 식구가 적을 때는 부모님과 나 셋이었지만 가장 식구가 많았을 때는 언니, 이모, 할머니, 사촌동생까지 해서 입이 일곱까지 늘었던 우리 집. 얼마나 많이 먹고 얼마나 돈이 들었을까? 그때는 어려서 생활비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줄 몰랐다. 지금 룸메와 둘이 사는데도 이렇게 구석구석 돈이 많이 들고, 마트에서 식재료를 아무리 적게 사려 해도 한번에 2만 원은 기본으로 나가는데. 엄마는 늘 할인하는 상점을 찾아다녔을 테고 그러니까 엄마가 사온 딸기는 늘 어느 한구석 무른 딸기였던 것이다. 


지금 엄마는 아빠와 둘만 살고 계신다. 엄마가 일을 그만두시면서 가계 수입도 줄었지만 아직 아빠가 일하고 계셔서 두 분이 사시기에 부족함 없이 철마다 드시고 싶은 과일 마음껏 드시면서 지내고 계신다. 요즘 엄마가 사는 딸기는 무른 것이 없을까?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제 예쁘고 고운 딸기만 드셨으면 좋겠다. 그게 바로 자식의 마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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