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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 리스본 지점장님에게 보내는 위로와 감사의 글

비행기 결항으로 리스본에 두 번 입국하게 된 사연

by 동후

포르투갈 리스본 시간 기준, 지난 9월 3일 대한항공 KE922 LIS-INC행의 출발 지연 및 결항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한항공 리스본 지점장 KYZ님에게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애써주신 것에 대한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전할 길이 없어 SNS에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14박 15일간 포르투갈 여행을 마치고 9월 3일 오후 인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리스본 공항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녁 7시 리스본 공항에 도착하여 여러 차례의 출발 지연과 최종 결항 사태를 경험하고 공항 내에서만 12시간가량의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대한항공이 마련해 준 호텔로 이동하여 몇 시간의 휴식을 취한 뒤 9월 4일 저녁 8시에 출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리스본 지점장님이 보여주신 책임감, 승객을 향한 태도, 문제 해결 능력은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사회인으로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지점장 이하 2명의 한국인 직원분들에게도 감사의 인사 전하고 싶습니다.


상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2주간의 포르투갈 여행을 마치고 인천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리스본 공항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런데 9월 3일 밤 10시 15분에 출발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리스본-인천행 비행기가 1시간가량 지연되었다고 통보받았습니다. 그 정도는 종종 발생하는 일이라 그러려니 했습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보딩 게이트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밤 11시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탑승의 움직임이 없습니다. 그때 보딩 게이트에서 "띵동" 알림과 함께 형광색 조끼를 입은 리스본 지점장님의 안내 메시지가 나옵니다. 비행기의 부품을 교체했는데 전체 시스템을 재부팅하는데 시간이 소요되어 1시간 30분가량 지연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승객들 사이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다음날 00시 30분이 되었습니다. 약속된 시간이 되었는데도 탑승을 위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띵동" 알림과 함께 지점장님의 추가 메시지가 전달되었습니다. 시스템 점검이 완벽하게 끝나지 않아서 1시간 30분 이상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최초 출발 시간 대비 4시간가량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지점장님은 차분하게 상황을 설명하였습니다. "시스템을 정상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시간이 걸리고 있다. 그 부분에 대해 대한항공을 대표해서 사과드린다. 그렇지만, 시스템이 완벽하게 준비 않으면 (안전을 위해) 비행을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2시에 비행 여부를 최종 결정해서 공지하겠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지루한 시간이 흘러 새벽 2시가 넘었습니다. 사람들의 인내심이 바닥을 치기 시작합니다. 사람들은 형광색 조끼(지점장님)를 찾기 시작합니다. 지점장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시스템 정상화에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결항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다. 그러나 출발하는 것이 최우선이니 출발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 다만, 결항에 대비하여 호텔과 교통편을 미리 알아보고 있다. 협조 부탁드린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혼란스러운 상황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보딩 게이트로 몰려들기 시작했고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지점장님 이하 직원들은 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차분히 답변해 주시면서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동시에 결항에 대비하여 호텔과 교통편을 알아보는 것 같았습니다. 게이트에서는 180명이 넘는 승객 한 명 한 명에게 객실 사용 여부를 확인받았습니다. 장시간 기다림에 지친 승객들은 가뜩이나 짜증이 나는데 긴 줄을 서서 일행이 몇 명인지, 어떤 객실을 사용해야 하는지 등등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새벽 4시가 다 되어 갑니다. 아이들은 차가운 의자에 누워 잠들어 있고 어른들도 지친 상태입니다. 한국에서의 일정이 꼬였다며 불평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때 게이트 안쪽에서 지점장님이 이전과 다른 모습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십니다. 비행기가 정상화되어 탑승 가능한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5시에 이륙하겠다고 합니다.

드디어 비행기 탑승 (현지 시간 새벽 4:50)

새벽 4시 30분이 넘어서 보딩을 시작합니다. 늦었지만 출발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 사람들의 불만이 잦아듭니다. 저는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목베개와 허리 쿠션을 두르고 비행을 위한 세팅을 마칩니다. 그리고 이어폰을 끼고 영화 한 편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5분 정도 보고 있을 때였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안내 방송이 나옵니다. 복잡한 사정으로 인해 출항을 할 수 없게 되어 모두 비행기에서 내려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7시간 만에 겨우 탑승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보딩 게이트에 모두 모였습니다. 항의가 빗발칩니다. 형광색 조끼를 입은 지점장님이 상황을 진정시키고 전후 사정을 설명합니다. "탑승이 지연되는 과정에서 자리를 비운 승객들이 생겨났고, 비행기가 출발하려면 그 승객들의 짐을 빼줘야 하는데 새벽 시간에 그 업무를 대응해 줄 공항 직원이 없어서 대응을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짐을 빼는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되는데 그렇게 되면 항공기 승무원의 근무시간을 넘기게 되어 항공법 상 운항이 불가능하게 된다. 매우 다양한 이유들이 복잡하게 얽혀서 결항을 결정하게 되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새벽 6시가 다 되어가던 시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딩 게이트로 몰려와 항의를 하기 시작합니다. 정말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점장님 이하 직원들은 차분하고 정중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한국인 직원은 지점장님 포함 총 3명에 불과했습니다. 다행히 멘탈이 강한 승객 중 일부가 직원들을 도와주기 시작했고 어수선한 분위기가 조금씩 수습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에도 많은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결항 결정이 늦어지면서 호텔을 다시 섭외해야 했고, 라운지를 이용하겠다는 사람들이 나오면서 무리가 쪼개지고, 무리가 쪼개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길을 잃고 우왕좌왕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원칙적으로는 공항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입국 심사(?)를 다시 받아 포르투갈로 재입국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출국 예정시간으로부터 9시간 뒤인 다음날 아침 7시 30분이 되어 공항을 빠져나왔고 다시 여행을 온 기분으로 대한항공이 마련해 준 버스를 타고 호텔로 이동하여 조식을 먹고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오전 7:20 재입국 심사를 받고 출구로 나가는 중
오전 7:40 공항 밖 모습

오후에 공항에 돌아와 체크인을 다시 하는 과정에서도 말도 안 되는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직원분들의 흔들리지 않는 업무 처리로 인해 그날 저녁 8시 - 비행기는 정상적으로 이륙할 수 있었습니다.


보딩타임이 정해지고 비행기 탑승을 알리는 마지막 방송에서 지점장님이 감동의 멘트를 하셨습니다. 요약하자면 "일련의 사태에 대해 책임자로서 마음이 무겁고 죄송하다. 대한항공을 대표하여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하지만 그 와중에 격려의 말을 해주시고 인내해 주시고 업무 처리에 도움을 주신 승객분들이 계셔서 끝까지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모든 승객분들에게 너무나 감사드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책임자로서 책임을 미루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준 승객들에게 감사한다는 말씀을 해주신 것입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하셨는지 중간에 울컥하시면서 멘트를 하시는 바람에 사람들이 일순간 조용해졌습니다. 저는 큰 소리로 박수를 쳐드렸습니다. 그러자 많은 승객분들이 환호해 주시면서 함께 박수를 쳐주셨습니다.


승객들은 약 22시간 동안 지점장님이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었는지, 책임자로서 어떻게 대응하셨는지, 승객들에게 어떠한 태도(Attitude)를 보여주셨는지 등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것을 본 사람이라면 격려의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비행기 지연 및 결항 사태는 비행기 부품과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한 일이고, 지연에 불만을 품은 일부 승객이 자리를 떠나면서 문제가 더 커진 것이고, 항공법을 준수하고 승무원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결항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지점장님이 원인이 되어 문제가 생긴 건 없습니다. 그러나 책임자로서 모든 비난을 받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승객들의 격앙된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였습니다. 직항 노선이 생긴 지 1년밖에 안되고 한국인 직원이 없어서 그런가 대응 시스템이 미비해 보이긴 했는데,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승객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지만, 원칙을 지키면서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고작 한국인 직원 2명을 데리고 180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새 12시간 동안 고군분투한 것입니다. 비행기에 탑승했다가 결항을 통보받고 비행기에서 나온 뒤에 수많은 승객들에게 둘러싸인 지점장님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만약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멘탈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었을까?라고 말입니다.


새벽 3시쯤인가 누군가 지점장님에게 질문한 것이 기억납니다. "비행기는 안전한 겁니까. 지금 고친다고 믿고 탈 수 있는 겁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지점장님은 "저도 탑승합니다. 저도 이 비행기 타고 한국 갑니다. 그리고 시스템이 완벽하게 확인되지 않으면 운항을 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 외에 더 신뢰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 사실 저도 계속 불안했습니다. '몇 시간 동안 정상화 되지 않는 비행기를 탑승해도 되는 건가?'라고 말입니다. 근데 지점장님 멘트를 듣고 불안감이 사라졌습니다.


어떤 승객은 인내심에 한계가 왔는지 직원들이 무능하다고 비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은 상황이 개선되기를 바라면서 안내에 따르는 모습이었습니다. 직원들의 헌신적인 모습과 승객들의 협조가 이번 결항 사태를 잘 마무리하게 된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포르투갈 여행은 참 많은 추억을 남긴 여행이 되었습니다.


- 참고: 일의 진행 순서나 세부 시간은 정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계속 확인해서 수정하겠습니다.

- 참고: 이름을 약자로 쓴 이유는 지점장님이 연락처를 공유해 주시면서 성함을 말씀해 주셨는데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음. 카카오톡 아이디를 공유해 주셨는데 거기에 표시된 이름의 이니셜로 대신 표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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