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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후 May 24. 2018

UX에이전시와 스타트업과 대기업을 모두 경험하다

UX 디자이너가 경험할 수 있는 조직에 대한 이야기

대학원을 마칠 때쯤 교수님과 진로 상담을 하던 중이었다.  


“동후학생은 그래픽보다 기획 쪽으로 가는 게 맞을 것 같아요” (C교수님)

 

120% 동의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그래픽적인 감각이 특별하게 뛰어나지 않았고, 1픽셀 가지고 고민하면서 스트레스받는 게 정말 싫었다. 반대로, 조사와 연구를 통해 논리를 만들고-근거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하는 작업이 너무 즐거웠다. UX 디자인. 방향을 찾았다.

대학원 졸업 후 pxd라는 UX에이전시에서 UX경력을 시작했다. 나의 모든 토양이 그곳에서 나왔다. 고향이자 친정 같은 곳이다. (pxd입사 전에는 조그마한 디자인 회사에서 편집/그래픽 디자인을 잠깐 했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면서 머리가 커지고... 대기업의 일을 대행하는 것에 염증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내 서비스를 해보겠다고 뛰쳐나와 스타트업에 몸을 담갔는데, 간 기능 손상과 흰머리만 남았다. 이후 자식새끼 먹여 살리겠다고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현재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인포테인먼트시스템UI/GUI디자인을 하고 있다.  


트리플 크라운 달성  

상생관계인 에이전시와 대기업 그리고 스타트업. UX 실무로 경험할 수 있는 조직은 다 경험한 것 같다. 조직의 특성과 업무 스타일이 정말 다른데 그 모든 차이점을 직접 경험했다는 건 정말 큰 재산이 되는 것 같다.   

그 경험들을 정리해보고 싶었다.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참고로 아래 이야기는 제가 경험한 조직에 대한 생각입니다. 전체를 일반화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니 참고 바랍니다]


1. 에이전시 : 컨설턴트의 테크트리를 탈 수 있는 환경

1) 기초부터 튼튼한 내공 만들기 : 경력자와 신입의 밸런스가 잘 맞는 조직일 경우 실무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일부 규모가 작은 에이전시의 경우 능력 있는 회사 대표나 시니어 한 두 명의 역량만으로 먹고사는 곳도 있다. 하지만 건강한 에이전시라면 장기적인 생존을 위해서 구성원의 밸런스를 맞추면서, 주니어의 성장을 위해 노력한다. 주니어를 대상으로 프로젝트 중심의 실전 트레이닝이 이루어지고 부가적인 교육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컨설턴트의 테크트리가 시작되는 것이다.

2) 다양한 프로젝트 경험 : 에이전시는 프로젝트 비용을 받고 업무를 대행하는 조직이다. 주로 대기업의 일을 한다. 정해진 건 없다. UX/UI 범주에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컨설턴트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달에는 스마트폰의 금융 App을 설계했다가, 다음 달에는 세탁기의 하드키 인터페이스를 설계할 수도 있다. 다양한 도메인을 경험할 수 있는 건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다만, 매번 새로운 걸 학습하고 적응해야 한다는 건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3) 리더십에 대한 경험과 고민 : 중소기업에서는 규모의 특성상 이른 시점에 관리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적은 규모라도 조직을 운영하게 되어 보면 리더십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대기업과 비교되는 부분 중 하나인데, 리더십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성장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과는 성장의 결이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4) 진로에 대한 고민과 갈등 : 성장을 하면서 산업에 대한 시야가 넓어지고, 업무에 대한 권태기가 올 때쯤 이직의 유혹이 강하게 발동한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다. 연봉, 네임밸류, 안정성, 단순 권태, 새로운 도전 등 개인적이면서 다양한 이유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3년 차가 살짝 위험하고 5년 차는 진짜 위험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헤드헌터들이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연차이기도 하다.   


2. 스타트업 : 대박이라는 스팀팩을 맞고 몸이 부서져라 꿈을 향해 달릴 수 있는 곳

1) 나만의 서비스에 대한 갈증 : 스타트업은 유니크한 아이템 발굴에서 시작된다.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투자를 받게 되고 나만의 서비스를 개발하게 된다. 누군가의 일을 대행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내 서비스를 만들어서 운영하는 것이다. 도전 자체만으로도 흥분되고 즐거운 일이다.

2) 대박의 꿈 : 스타트업은 투자를 기반으로 하는 곳이다. 매출이 발생해야 하고 수익이 나야한다. 또는 직접적인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기업의 가치를 높일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금전적인 대박도 중요한 목표 중 하나이다. 창업 멤버들은 지분을 가지고 있고, 구성원들은 스톡옵션을 제공받는다. 굉장한 동기부여가 된다. 금전적인 보상을 기대하지 않는다면 그건 99% 거짓말이다. 간혹, 주객이 전도되어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데 힘을 쓰지 않고, 겉으로 보이는 기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엉뚱한 곳에 투자금을 낭비하는 곳도 있다. 사용자를 위한 노력이 아니라 오로지 기업의 가치를 높여서 EXIT 하려는 스타트업들이 있다. 그런 스타트업은 가지 말자.

3) 일당백 : 잡일부터 잡일까지! 조직의 규모가 작다 보니 온갖 잡무를 다 할 수 있다. 전문성이 없지만 회계 업무를 할 수도 있고 기획자가 기획 업무 외 디자인, 개발, 마케팅, CS 등 모든 걸 커버할 수 있어야 한다. 전문 분야에 100%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니 참고할 것. 양질의 전문 경험이 필요한 주니어에게는 조금 아쉬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4) 성공에 대한 압박 : 결국 스타트업은 투자자의 투자비에 의해서 운영되는 곳이다. 성공의 로드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고 주기적으로 성과에 대한 평가를 받아야 한다. 매출이 나야하고, 수익이 발생해야 한다. 기업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성공에 대한 압박은 대표 혼자만의 몫이 아니라 구성원 전체에게 요구되는 책임이기도 하다.

5) 18시간은 일할 각오와 체력 : 심한 날은 정말 며칠 동안 새벽 2시~3시에 택시를 타고 귀가한 적도 있다. 열정이라는 이름으로, 성공이라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아름다운 그림으로 비칠 수 있지만 망가져 가는 내 건강은 누구도 책임져줄 수 없다. 물론 서비스가 런칭해서 자리를 잡고 안정화가 되면, 그 누구보다 평안하고 루틴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3. 대기업 : 글로벌 제품 개발에 대한 자부심과 '잘 나오는 은행 대출' 

1) 상대적으로 나은 연봉 : 아무래도 연봉의 시작은 중소기업보다 높다. 그 차이는 해가 갈수록 누적이 되어 3년 5년이 되면 꽤 큰 차이를 불러온다. 냉정한 현실이다. 다만 시니어 레벨이 되면 차이는 꽤 극복되는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에 비해 '건실한 중소기업'은 능력에 따라 연봉 상승률이 크고 진급이 빠를 수 있기 때문에 연차가 많이 쌓이면 조금은 맞춰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기업도 진급을 하면 연봉이 큰 폭으로 오르고, 적지 않은 성과급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서 오는 차이는 분명 존재한다.

2) 네임 밸류 : 아무래도 집안 어른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아는 회사 이름이 들리니까 그러시겠지 라고 생각하련다. 중소기업도 좋은 회사들이 얼마나 많은데... 쩝. 그리고 대기업에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 은행에서 대출이 잘된다. 이건 참 좋다.

3) 글로벌 제품에 대한 자부심 : 내가 참여한 제품이나 서비스가 전 세계 사용자들이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매우 보람된다. 솔직히 대기업 때가 덜 묻은 현재까지는 그거 하나로 다 보상을 받는 느낌이다. 동기부여가 된다.  

4) 거대 조직의 작은 부품 : 에이전시와 스타트업과는 다르게 대기업은 수많은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집단이다. 수많은 라인업을 관리해야 하고, 수없이 쏟아지는 이슈에 대응해야 한다. 결국 제한된 범위에서 깊이 있게 일을 해야 하는데, 흔히 이야기하는 거대 조직의 작은 부품 같은 느낌은 피할 수 없다. 에이전시에서는 [조사]-[분석]-[문제정의]-[전략 제시]-[문제 해결]까지 폭넓은 업무를 했지만, 대기업에서는 제한적인 업무를 하게 된다. 시장의 규모나 제품 특성상 각 단계별 전문 부서들이 존재하고 일을 분업화해서 업무 효율을 최대한 높이려고 한다. 스펙트럼이 매우 좁아지는 느낌이다.

5) 능력자들 사이에서의 생존 : 능력 있다는 사람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모이는 곳이다. 그 안에서 뒤처지지 않고 생존하려면 굉장한 압박이 따른다. 결국 내가 잘해야만 한다.

6) 글로벌 제품의 품질 압박 : 글로벌 제품을 만든다는 게 보람이자 장점이긴 하지만, 반대로 거기에 걸맞은 품질 수준을 맞춘다는 건 대단한 압박이다. 세계 지역별 특성을 이해하고 그들 문화에 맞는 제품/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고 시시각각 들어오는 컴플레인에도 빠르고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실력이 부족하여 제품의 품질이 떨어지고 시장의 평가가 나빠져서 기업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비타민 10알씩 먹고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에이전시-스타트업-대기업에 대한 경험을 풀어놓아보았다. 위 내용은 내가 경험한 조직의 특성만을 설명한 것이기 때문에 전체를 대상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글을 읽어 주시는 분들이 그걸 염두하고 봐주셨으면 좋겠다. 하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젊은이들이나 이직을 준비하는 분들에게 어느 정도의 정보는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UX실무자로 조직을 여러 차례 이동하고 다년간 일하면서 느끼는 점들이 많았다. 그걸 그냥 풀어놓고 싶었고, 도움이 되는 분들이 있다면 참고하시길 바라면서 글을 썼다. 요즘 일도 바쁘고 육아와 집안일을 돕느라 개인적으로 글을 쓸 여유가 없었는데 오래간만에 썰을 풀었더니 기분이 좋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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