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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창문을 열 수 없었던 진짜 이유.

by fragancia

* 이 매거진은 Eli 작가님과 공동으로 하는 글쓰기입니다.


이웃을 도우며 사는 일을 더 이상 미루지 마세요. 사랑하며 사는 일을 더 이상 미루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우리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이 남아있는지 결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시간이 있다고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느 날 우리가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을 넘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이미 늦습니다.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 귀욤 뮈소


Q. 오늘 내가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저녁마다 창문을 열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랫집에서 올라오는 냄새 때문이었다. 쓰레기 썩는 냄새, 젓갈의 비릿한 향, 한약을 달이는 쓴 내와 담배 냄새가 복도와 베란다를 타고 내 집까지 스며들었다. 봄·가을 선선한 바람을 한 모금 들이마시고 싶어도, 창문을 열면 숨이 턱 막혔다. 몇 번 경비실을 통해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 집 강아지가 가끔 캉캉 짖을 때마다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더 침묵했는지도 모른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아랫집 할머니는 언제나 작은 수레를 밀고 계셨다. 녹슨 수레에는 고물이 가득했는데, 내가 타면 황급히 그 물건들을 몸 뒤로 숨겼다. 인사를 드려도 대답은 흐릿하게 흘러갔다. 굽은 허리와 낡은 옷차림, 빛바랜 벙거지 모자 끝에는 실이 삐져나와 있었다. 구질구질해 보이는 뒷모습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불편한 감정 속에서도 어떤 사정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따라왔다.




늦봄의 어느 날, 아침부터 집 앞이 이상하게 소란스러웠다. 베란다 창문을 열자 사다리차가 아랫집 창문에 바짝 붙어 있었고, 그 위로 커다란 포대가 줄줄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회색 포대는 몇 십 개로 시작해 금세 몇 백 개로 불어났고, 주차장 앞뒤로 산처럼 쌓여 갔다.


남성 여섯 명이 땀에 절어 포대를 껴안아 날랐다. 그들의 팔뚝은 부르르 떨렸고, 어깨는 금세 땀으로 들러붙었다. 트럭 다섯 대에 포대가 금방 찼다. 급기야 폐기물 수거차까지 출동했다. 봉투가 땅에 부딪칠 때마다 쿵, 퍽 하는 둔탁한 소리가 주차장에 울려 퍼졌다. 포대 속에서 섞여 나온 악취가 코를 찔렀다. 시큼한 곰팡내, 오래된 음식물 썩는 냄새, 녹슨 쇠와 먼지 냄새가 한꺼번에 섞여 올라왔다.


그러다 마침내, 마지막 차례가 다가왔다. 거대한 괴물을 토해내듯 집 안의 가장 깊은 곳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창문에 매달린 사람처럼 숨죽여 내려다보았다. 커다란 매트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세 개나 되는 매트리스는 이미 누렇게 얼룩져 있었다. 천 위에 퍼진 검은곰팡이는 마치 지도가 그려진 것처럼 얼룩덜룩했고, 햇볕에 드러나는 순간 시커먼 자국이 더 뚜렷하게 살아났다. 매트리스가 내려올 때마다 곰팡이 가루가 흩날려 햇빛 속에서 하얗게 부유했다.


뒤이어 부서진 가전들이 줄지어 나왔다. 손잡이가 뜯겨 나간 작은 냉장고, 문짝이 틀어진 서랍장, 필름지가 벗겨진 식탁이 차례로 바닥에 내려왔다. "쾅!" 부서진 식탁 다리가 인부의 발길질에 산산이 갈라져 나무 조각들이 튀어 올랐다. 그 장면은 단순한 정리라기보다 집 안이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거실과 방 세 개에 이 모든 것들이 들어차 있었단 말인가. 하루 이틀 쌓인 물건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켜켜이 쌓이고 덧붙이며 결국 사람의 삶을 집어삼킨 것이었다. 알고 보니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들이 업체를 불러 집 안을 비운 것이었다. 그 무너져 내린 가구와 곰팡이 밴 매트리스, 포대 속에 담긴 무수한 물건들은 모두 할머니의 세월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폐기물이지만, 할머니에게는 끝내 놓을 수 없었던 기억과 버팀목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이 아팠다. 냄새에 불평하며 창문을 닫아야 했던 날들이 스치며, 인사를 피하던 할머니의 뒷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그 작고 굽은 어깨가 사실은 무겁고 고단한 세월을 버티고 있었음을, 나는 왜 미처 헤아리지 못했을까. 조금 더 살갑게 인사를 전할 걸, 후회의 마음이 차올랐다.


아쉽게도 아랫집 할머니와 단 한 번도 진심 어린 인사나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늘 고개를 숙이고 지나치던 그분의 마음을 지금은 더 이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부재가 남긴 공허 속에서, 나는 ‘이웃’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새삼 깨닫는다. 우리가 매일 벽 하나를 두고 살면서도 서로를 모른 척하는 것은, 어쩌면 가장 큰 빈곤일지도 모른다.


쓰레기차가 마지막 포대를 싣고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공간에서 오늘 내가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시작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앞에 있는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은 온기라는 것을.


이웃을 도우며 사는 일을 미루지 말라는 필사 문장을 곱씹는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오늘 내가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사실 대단한 일이 아니다. 누군가의 인생을 구원하거나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어도 된다. 그저 아파트 입구에서 무거운 짐을 들고 오는 사람을 돕는 일, 마주쳤을 때 먼저 건네는 인사 한마디, 작은 관심과 배려. 그것이 누군가의 하루를 버티게 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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