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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Sep 12. 2020

그녀가 떠나갑니다.

눈이 많이 내린다고 했던 기상청의 예보가 빗나간 겨울이었다. tv에서는 연일 우한 폐렴이 메인 뉴스로 보도되었으나 나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전에 유행했던 사스나 메르스처럼 가볍게 지나갈 거라 생각했다. 그 바이러스가 한국에 온다 한들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는 내 믿음은 기상청 예보만큼이나 잘못된 것이었다. 우한 폐렴이 코로나 19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탄생했을 때에도 반년이 넘도록 갇힌 생활을 할 줄 누가 알았으랴.


코로나 창궐하기 전, 작년 가을부터 나는 온라인 모임에 참여했다.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를 입학하면 내 개인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내 성장을 위해 작은 여유시간마저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판단하에 여기저기 모임에 열심히 참여했다. 모임이 점점 확장되면서 올해 초 "공대생의 심야 서재"라는 모임을 통해 그녀를 처음 만났다. "꽃이 꾸는 꿈"이라는 뜻의 닉네임을 쓰는 그녀는 우한 폐렴 때문에 아이들과 친정집으로 피난? 을 왔다는 소개로 문우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녀를 만나기 전 몇 개월 동안 온라인 모임을 통해 많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익명성이라는 때문일까? 혹은 가벼운 관계라 생각했던 걸까? 휙 돌아서 버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헛헛해졌다. 어쩌면 그녀도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아니었다. 그녀는 참 끈덕진 사람이었다.


모임을 이끌면서 한 명 한 명에게 나누어 주는 인사와 쾌활한 웃음, 그 안에 전해지는 정이 좋았다. 모임 안에서만 그녀를 만났다면 나는 밝고 푸른 달의 앞면만을 보았을지 모른다. 달의 뒷면 그 어두운 민낯은 그녀의 글 속에서 드러났다. '아... 그녀가 이런 삶을 살아왔구나. 얼마나 속을 끓이며 눈물을 흘렸을까?' 아픔을 관통한 사람은 상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나 보다. 그녀의 아픔이 내게 그러했다.


"향님의 글은 참 따뜻해요. 아직 마흔도 안되었는데 이렇게 아픈 경험을 많이 했을까요? 놀라기도 하고 그래요. 글 계속 쓰시면 정말 잘 쓰실 거예요."


어쩌면 이 말이 내게 그저 입에 발린 칭찬이었을지 몰라도 내게 글을 쓸 용기를 주었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을까?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그녀의 장점들... 이를테면 자신을 관리하며 무슨 일이든 당당하게 앞장서는 모습, 성실함, 작은 실수의 인간미까지도 사람을 자석처럼 끌어당겼다. 에세이 합평 마지막 날 역시 그랬다. 시작도 하기 전에 큰아이를 한국에 두고 떠나야 하는 그녀의 마음이 읽혀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엄마, 아내, 딸이라는 공통분모로 더 가까워 짐을 느꼈다. 설사 그 감정이 나 혼자 느낀 것이라 해도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로 남겨졌다.


더 이상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으로 만나보고 잠깐이나마 만나보고 싶었다. 서울로 올라가려 2~3번의 시도에도 확산되는 바이러스는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나는 속절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유난히 길어지던 여름 장마의 막바지에 그녀는 다시 중국으로 들어간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언젠가 간다는 걸 알면서도 조금 더 늦춰지면 혹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까 봐 나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내 바람을 아는지 모르는지 9월 3일 목요일 4시 비행기로 그녀는 한국을 떠나갔다. 출국 전 목소리를 들으면 울컥할 것 같아 몇 번이고 핸드폰 화면을 on, off 했다. 모임 속에서 울고 웃으며 쌓인 정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가까이 있어도 마음이 없으면 먼 사람이고 멀리 있어도 마음이 있으면 가까운 사람이라 했다. 때문에 사람과 사람 사이는 거리가 아니라 마음이라고... 우리의 거리가 한국에 있을 때 기차로 2시간이었다면 비행기로 2시간만큼 더해졌을 뿐이다. 설령 그녀를 중국이 아닌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었어도 마음만은 가깝다고 느끼고 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는 우리니까...


그녀가 한국을 떠나고 카톡으로 전송된 사진 한 장. 비행기 안에서 본 중국은 촉촉이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순간 꾹 참았던 눈물이 빗물처럼 조용히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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