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너에게 편지를 쓰고 오랜만에 다시 편지를 하는구나. 오늘 글쓰기 주제가 나에게 쓰는 편지더라고... "편지"라는 단어가 주는 설렘을 잘 알고 있기에 벌써 기분이 좋아진다. 참 신기한 일이야.
가장 보람 있었던 에피소드라... 생각해보면 넌 보람을 느꼈던 때가 많았었지. 회사를 다닐 때, 수어를 배우면서 봉사를 다닐 때, 자격증 시험에서 합격했을 때 등등... 그런데 오늘 이 주제에서는 쓰지 않았던 이야기를 쓰고 싶더라고. 바로 "조경"에 대한 이야기 말이야. 회사 동료를 따라 봉사활동을 처음 갔던 날을 기억해. 청소나 도우러 갔었는데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산으로 나무를 가지러 가자고 하셨지. 당황스러웠지만 몇몇 분들과 함께 그분을 따라 산 중턱까지 올랐어. 공터에 가득했던 철쭉과 조경 나무들... 몇십 그루를 삽으로 퍼내고 나르는 게 재밌더라고...
"아가씨 나무도 앞과 뒤가 있어요. 맞춰봐요?"
"네? 나무가 무슨 앞이 있어요.^^;; 저는 첨 들어보는데..."
"자 잘 봐요. 잎들이 모두 한 방향을 보고 있죠? 이쪽이 앞이에요. 그러니까 심을 때도 잎이 향하는 쪽으로 심어줘야 안 죽고 잘 커요. 앞이 해를 보게..."
"우와~ 그렇군요."
정말 철쭉을 자세히 보니 앞이 향하는 쪽이 보였어. 도착한 현장에서 철쭉과 나무들을 심은 뒤 잔디를 옮기며 직사각형 잔디판을 3등분 하던 너. 커다란 작두는 할아버지 집에서 짚을 자르던 그것이었는데 말이야. 처음 해보는데도 쓱쓱 잘 자른다고 칭찬을 받았지. 듬성듬성 잔디를 심긴 했는데 어찌나 볼품없게 보이던지... 굳어진 내 얼굴을 보며 그분이 말을 하셨지.
"이 잔디 지금은 대머리에 머리 몇 가닥처럼 보여도 금세 땅이 안 보이게 뒤덮어요. 풀을 뽑아주긴 해야겠지만 파랗게 올라오면 얼마나 예쁜지 몰라... 사람이 만든 집은 시간이 지날수록 고장이 나고 낡아지지요. 그런데 조경은 말이지~ 해가 지날수록 푸르러지고 더 아름다워져요.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행복해하고..."
"아아... 정말 멋진 일이네요."
그래. 나무 파고 옮겨 심느라 온몸은 흙과 땀범벅이었지만 그날 건물 주변에 심은 꽃나무와 잔디를 보며 넌 미래를 상상하고 있었어. 그 후 조경일을 갈 때마다 삽질하다 손에 물집이 터져도 즐거웠지. 자연스럽게 훗날 직접 집을 짓고 나무를 심을 날을 꿈 꿨어. 물론 지금도 그 꿈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지.
꼬박꼬박 공사현장에 가서 삽질을 했던 너^^. 그럴 시간에 연애를 더 열심히 하라던 선배들의 말을 지금 돌이켜도 후회하진 않아. 오히려 좋은 추억이 되었어. 그리고 1년 전에 가족과 함께 내가 조경을 도왔던 시골 마을 회관을 지나쳤지. 예전 그분이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지 뭐야.
푸르른 잔디, 진분홍 철쭉이 커다란 돌 틈에서 피어 있었고, 아이의 키보다 훨씬 커버린 나무도 보였어. 그분의 말씀처럼 하얗게 칠해놓은 건물은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보였지만 조경 해 놓은 모든 곳들은 내가 처음 심었을 때보다 180도 달라있었어.
"저기 저거... 엄마가 심은 거야. 우와 예쁘게 자랐네~"
20대. 산으로 들로 호미와 삽 들고 콩콩 뛰어다니던 향기야. 잘했어. 지금도 그때 심은 꽃나무들이 계절마다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있을 거야. 너도 그 나무들처럼 울창하게 자라고 있구나. 키 말고 마음 말이야. ^^;; 언제나 너를 응원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