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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ragancia Sep 23. 2020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아빠 품에 안겨있던 딸...

적막한 밤, 시계 초침만이 규칙적으로 똑딱거렸다. 방금 내가 꾼 꿈속의 장면들이 마치 현실인 것처럼 하얀 천장에 펼쳐졌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닿을 듯 선명해서 한참을 눈을 떴다 감았다. 이내 나는 깨달았다. 내가 울고 있었다는 것을...                               


산을 이리저리 깎아 만든 집들 사이로 미로처럼 오르막만 보인다. 가파른 계단을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다 보면  '왜 우리 집은 저렇게 높은 곳에 위치해 있는 걸까' 나는 원망스러웠다. 잠시나마 엄마께서 업어주길 바랐지만 아직 걷지 못하는 남동생이 엄마 등을 차지하고 있었다. 한참 후 15도 기울어진 얇은 철판 대문 앞에 도착했다. 굳게 닫혀있는 걸 보니 아직도 빈집으로 있었나 보다. 엄마가 동생을 방에서 재울 동안 나는 밖에 나와 주인집 화단에서 돌들로 소꿉놀이를 하며 대문 소리에 귀를 쫑긋거렸다.


해가지고 작은 불빛들이 반딧불처럼 이곳저곳 켜질 때, 아빠는 커다란 세일즈 가방을 들고 집에 오셨다. 얼굴 표정이 어두운 걸 보니 오늘도 힘든 하루를 보내고 오신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나는 연신 아빠에게 두 팔을 벌려 보였다. 아빠는 한 손엔 나를 그리고 반대편 손에 남동생을 안고서 담벼락 너머로 켜진 작은 불빛들을 보여주셨다. 그 당시 집 아래로 켜진 불빛은 어린 내 눈에 황홀한 야경처럼 보였다. 나는 아빠에게 안겨있는 이 시간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요즘 나는 아빠의 품에 안겨 동네 불빛을 보던 그날의 꿈을 자주 꾼다. 아빠는 우리를 안고서 가슴속에  빛을 간직하라 하셨다. 빛을 안고 살면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겨낼 수 있다고... 어둠을 비추는 건 꺼지지 않는 작은 불빛 하나라고도 말씀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는 20대 중반 그 어린 나이에 무일푼으로 처자식을 책임져야 했으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작년에 뇌경색으로 쓰러지셔 한쪽 편마비가 되셨는데 최근 건강이 더 악화되셨다. 힘들어하는 아빠와 나는 매일 통화를 한다.


"아빠!! 아빠는 우리 낳은 거 후회한 적 없어요?"


"후회 안 하지. 나는 너희들을 낳고서 비로소 '아버지'라는 이름을 이해했으니까... 너도 알다시피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아빠는 사랑을 못 받았잖아. 그래도 너희들을 키우다 보니 할아버지가 이해가 되더라... 아버지라는 삶의 무게에 대해서도 말이야. 너희들이 아니었으면 아빠라는 이름도 없었겠지..."


그리고 한동안 아빠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아빠는 울고 계셨다... 평생 한 번도 눈물을 보여주지 않았던 아빠인데 요즘 자주 나와 통화를 하며 평생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쏟아내시는 중이다.


나는 딸이라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를 알지 못한다. 짐작만 할 뿐이다. 아빠가 아니었다면 존재하지도 않았을 내 존재. 아빠가 아니셨다면 내 안에 빛을 담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더 아빠의 더듬는 목소리가 가슴을 후벼 파는지도 모른다.


"아빠가 내 아빠여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사랑해요." 

아빠께서 한평생 떨어뜨리지 못했던 눈물만큼 나 역시 한 번도 말씀드리지 못했던 "사랑한다"라는 말을 요즘 더 자주 표현하고 있다. 사랑했고. 사랑하고. 앞으로 평생 사랑할 거라고...

 

사랑하는 아버지가 지금 이 순간 계시고,  

사랑하는 딸이 여기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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