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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우 Aug 03. 2016

옥수수

또는 강냉이

텃밭을 분양받았다.

도시에서 채소를 가꾼다고 하면 ‘풍요로운 주말 여가와 더불어 유기농 채소로 건강한 밥상을 꾸밀 수 있다’라고 그럴듯하게 들리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실은 판도라의 상자를 열었다는 것을 잘 안다.

먼저 열 발짝 남짓 되는 텃밭에 무엇을 심어야 할지 고민을 시작으로 모종을 사고, 파종을 하고 수시로 들러 물을 뿌리고 비료를 주어야 한다. 여가라기보다는 노동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하다.  

건강한 밥상이 혜택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텃밭을 무색하게 울창한 정글을 막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수확하는 수준이다. 또한 그 양이 어마 어마해서 이웃집에 나누어 주어도 매 끼니 상추쌈을 먹어야 하는 것도 고역이다. 그럼에도 판도라의 상자를 기꺼이 연 이유는 두 아들 녀석에게 비슷한 또래였을 적 내가 느꼈던 것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던지도 모른다.


어릴 적, 여름방학이면 아버지는 농부의 수고로움을 알아야 한다며 어김없이 큰집으로 보냈다. 물론 나의 의사는 전혀 존중되지 못했다. 그렇게 방학을 애타게 기다리던 마음 또한 무색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동이 트기 전에 집을 나서 밭을 매고 고추를 따고 여름 과일을 수확한다. 그뿐만 아니라 가을에 거두어드릴 들깨며 배추를 심어야 한다. 수확과 이앙이 겹치는 한 여름 농촌은 그늘에 몸을 가릴 시간 조차 없다. 그래도 어린 나는 눈치가 있었는지 부지런히 따라다니며 일손을 보탰다. 일이라고 해봐야 고추를 담을 마대자루를 건네준다거나 뽑아 놓은 잡초를 옮기는 수준이지만…


해가 중천에서 기울어지지 시작하면 밭고랑 너머로 눈이 가는 시간이 잦아진다. 그러다 할머니 모습이 나타나면 ‘할머니~’를 연신 외치면 달려갔다. 사실 할머니가 반갑다기보다는 머리에 이고 있는 새참 바구니가 반가웠다. 그리고 이내  ‘아이고 내 손주’하며 거친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할머니를 뒤로 하고 머리에 이고 있던 새참 바구 속을 휘휘 저어 옥수수 하나를 꺼내 들었다.

나는 옥수수를 유난히도 좋아했다. 그런 손자의 식성을 아는 할머니는 새참에는 꼭 삶은 옥수수를 챙겨 오셨다. 그뿐만 아니라 밥에도 옥수수 알갱이를 찾을 수 있었으며, 먹기 좋게 알알이 떼어내어 설탕을 흩뿌려 그릇에 담아 내시기도 했다. 소꼴을 먹이러 갈 때면 미숫가루 주전자와 함께 옥수수 봉지도 잊지 않고 손에 쥐어 주었다. 할머니의 옥수수는 유난히 달았는데 모르긴 몰라도 찬장 깊숙이 있던 사카린을 아낌없이 뿌렸다는 것을 쉬이 짐작할 수 있다. 매 끼니 매 순간마다 옥수수를 구경해야 하는 사촌 형에게 핀잔을 들을지언정 여름 내내 먹는 옥수수는 물리지 않았다.

여기에 멈추지 않고 큰 마대자루를 가득 채울 요량으로 할머니의 손을 이끌고 옥수수를 따러 가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할머니는 단단하고 수염이 짙은 놈으로 골라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하지만 길쭉한 줄기에 유선형으로 삐죽 나온 옥수수는 그놈이 그놈 같았다. 할머니가 꺾은 옥수수는 모두  씨알이 굵었지만 내가 꺾은 것들은 소 여물통으로 가기 일쑤였다.

해가 늬엇 늬엇 지고 선선한 바람이 불면  온 가족이 마당에 둘러앉아 옥수수 손질을 한다. 껍데기는 따로 모아 소죽 끓이는 가마솥으로 들어가고 수염은 소쿠리에 담아 말린다. 알맹이는 굵고 잘생긴 놈과 성기고 못생긴 놈으로 나눈다. 손질이 마무되면  잘생긴 놈은 광으로. 못생긴 놈은 솥으로 들어가 이른 저녁 식사로 출출한 배를 채운다.

개학이 다가오면 시골 생활도 마무리를 해야 한다. 집에 가는 날에도 여전히 큰집 식구는 일찌감치 들에 나가 일을 하시기에 밭을 돌며 인사를 나누어야 했다.  집으로 가는 길, 뒤를 돌아보면 먼발치에서도 큰집 밭은 쉽게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길쭉한 옥수수가 병풍처럼 빼곡히 둘러져 있기 때문이다.

옥수수가 건들건들 흔들리면 바람 때문인지 할머니가 옥수수를 따느라 그런지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시야에서 기다란 옥수수가 사라질 때까지 눈을 뗄 수 없는 것도, 광에서 꺼낸 잘생긴 옥수수가 가득 담긴 자루를 가지고 가면서도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도 잘 모르겠다.


우리 집 텃밭 가장자리도 옥수수로 둘러져 있다. 아내는 옥수수가 자라면 다른 작물이 빛을 받지 못해 죽는다고 했지만 왠지 텃밭 자투리 땅은 꼭 옥수수가 자리해야 할 것만 같았다.

여전히 껍질을 까 보지 않고 잘 생긴 옥수수를 고르는 건 장담할 순 없다. 뭐, 그렇다고 듬성듬성 알이 맺힌 옥수수라도 상관없다. 아들놈과 꺾어서 삶아 먹는 것만으로도 올해 농사는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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