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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그냥 Sep 08. 2024

수영(Swim)에게 가스라이팅 당했다

사람 이름 아니고 운동 수영

 저는 억울합니다. 수영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했어요. 사람 이름 수영이가 아니라 운동 수영에게서요. 이게 무슨 허무맹랑한 소리냐구요? 제 얘기를 들어봐 주세요.


 저는 유산소 운동을 하나 찾고 있었습니다. 평소에 헬스를 통해 무산소 운동을 하고 있었지만 유산소 운동은 못하고 있었거든요. 원래는 러닝도 많이 했었지만 몇 가지 이유로 최근에는 거의 못했습니다. 가장 핵심적인 이유를 하나 꼽자면 미세먼지 때문이에요. 최근에는 그래도 미세먼지가 많이 줄었지만 한창 뛸 때는 미세먼지가 많았습니다. 건강해지려고 열심히 뛰었는데 폐에 미세먼지만 잔뜩 낀 기분을 느낄 때면 러닝에 정이 싹 떨어지곤 했습니다. 미세먼지를 피해 날씨 좋은 날에 러닝을 하기도 했지만 불규칙적이다 보니 러닝을 습관으로 만들기가 어려웠어요. 날씨예보를 보고 미세먼지 없는 날 뛰려고 계획해도 변덕스러운 미세먼지로 인해 못 뛰게 되는 상황을 몇 번 겪고 나니 의욕도 떨어졌습니다.


 그때 조금씩 들리기 시작한 게 수영이에요. 이상하게도 요즘 뭐하는지 물어보는 사람마다 족족 수영을 하고 있다는 거예요. 심지어는 오래 알던 사람도 알고 보니 수영 N년차의 수영인이었더라구요. 어쩌면 이전에 수영한다고 들었지만 관심이 없어서 잊었을지도 모르기는 합니다. 하하하. 그런데 마침 부사수가 수영을 배운다는 거예요. 자기 동기가 수영을 배운다면서 자기도 배워볼거라구요. 그러면서 저도 꼬시더라구요.


 저는 수상했습니다. 미세먼지로 러닝을 못하게 하고, 주변에 수영하는 사람을 둬서 수영이란 단어에 스며들게 하더니 가까이 있는 사람을 매수해서 같이 수영하자고 꼬시게 하다니. 이건 수영 이자식이 지금 세상과 짜고 가스라이팅을 하고 있는 게 확실했습니다. 세상이 날 위해서 이 정도로 노력을 하다니. 이렇게 까지 하는데 노력이 가상해서라도 한번 당해주기로 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수영은 러닝에 비해 장점이 꽤나 많았어요. 우선 실내에서 하니 미세먼지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 러닝은 뛰고 나면 땀에 절어서 집으로 가는 길이 찝찝해요. 버스나 전철이라도 탈라치면 주변인들에게 민폐가 되지는 않을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수영은 들어갈 때 한번, 나올 때 한번 샤워를 하니 정말 깔끔합니다. 러닝은 뛰고 나면 무릎이 아플 때가 있어요. 연골이 소모된다고도 하구요. 하지만 수영은 그럴 일도 없죠.


 그렇게 수영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습니다. 결과적으로 아주 만족스럽게 다니고 있는데요. 수영을 하기 전에는 몰랐던 예상치 못한 장점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이마 리프팅 효과. 정말 예상 못했죠? 수영을 하면 당연히 수영모를 써야 하는데요. 수영모는 탄성이 있어서 이마를 당겨줍니다. 나이가 들면 점점 이마가 내려앉고 눈두덩이가 내려앉고 그러잖아요. 물론 저는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니지만 미리 예방해서 나쁠 거 없으니까요. 하하하.


 그리고 몸매를 신경 쓰게 돼요. 수영을 하려면 아무래도 바지만 입고 상의는 벗잖아요. 아, 저는 남자입니다. 사실 수영장에 가면 모두가 그렇기에 사람들이 제 몸에 관심을 가질 리 없지만, 그렇다고 신경이 안 쓰이지는 않단 말이죠. 거기다 어찌나 몸 좋은 사람들이 많은지 헬스장 제휴 수영장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덕분에 헬스도 더 열심히 하게 돼요. 어느새 저에게 수영장은 열심히 헬스해서 몸 키우고 자신감과 자존감을 채우는 공간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아, 물론 제 몸이 절대 자랑할 만한 몸은 아닙니다; 전보다 나아졌다는 개인적 만족이에요. 거기다 수영하면 어깨도 넓어지고 삼두가 자극돼 팔뚝살도 없어지니 일석이조입니다.  


 심리적 안정 효과도 있습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쌓이곤 하는데요. 수영장에 가서 열심히 물장구치다 보면 스트레스가 싹 날라갑니다. 기본적으로 운동이 힘들어야 집중이 되고 스트레스가 날라간다고 생각합니다. 요가, 필라테스, 러닝, 헬스 다 같다고 생각해요. 수영은 이 중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힘듦을 경험할 수 있는 스포츠입니다. 호흡 몇 번만 잘못해도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거든요. 집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수영을 배울 땐 물멍도 때릴 수 있어요. 한 레인에 여러 명이 수영을 하다 보니 약간씩 대기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이때 때리는 물멍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어요. 저에게는 회사와 일상생활을 단절시켜 주는 소중한 시간입니다.


 어쩌다 보니 수영이라는 스포츠를 굉장히 영업하게 됐는데요. 온라인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주변 지인들에게 수영을 추천하고 다닙니다. 그럼 지인들이 '너 이거 수영 가스라이팅이야'하며 장난을 칩니다. 여러분도 제가 수영을 하라고 가스라이팅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시나요? 그것은 오해예요.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제가 하는 게 아니에요. 세상과 연합한 수영이가 가스라이팅을 하는 겁니다. 저는 조종당하고 있고 저도 피해자라고요!


 저와 같이 수영에게 가스라이팅 당한 사람이 있다면 손을 들어주세요. 힘을 모아보자고요! 아직 수영에게 가스라이팅 당하지 않으셨다면 조심하세요. 언제 치고 들어올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미 이 글을 읽는 순간 여러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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