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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 홋카이도! 온다 태풍!

또다시 홋카이도 2 : 출발

by 김고양

말했던 대로, 몇 가지 이유 덕에 홋카이도행 진에어 항공편에 다시 올랐다.

(그 몇 가지 이유가 적힌 링크, 1년 전 홋카이도 여행의 첫 포스트)

1년 만에 다시 찾는 홋카이도인데, 어쩐지 항공사도, 비행기 시간도 똑같았다. 다만 다른 것은 가격뿐... 작년엔 두세 달 전 예매했음에도 40만 원 근방이었는데, 이번엔 한 달 전에 예매했는데 21만 원 정도였다. 처음 비행기를 예매할 때만 해도, 20만 원이나 싸게 샀으니 이번은 절약이다! 알뜰한 여행객이 된 기분이었지만 결국엔 별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마땅한 숙소는 이미 다 비싸기도 했거니와 나중에 말할 귀신같은 동행, 태풍 덕분이다.


굳은 다짐은 미역을 물에 불리는 것만큼이나 쉽게 풀어지기 마련이다. 바로 작년, 아침 비행기는 너무 피곤하니 타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을 했건만 결국은 가격과 일정을 고려했을 때 다시 삿포로행 진에어일 뿐이다.

(몇 개의 저가 항공사가 인천-삿포로를 운행하고 있다. 진에어는 8:20 인천-삿포로, 12:10 삿포로-인천을 운행 중이다.)


1년이 지났지만, 비행시간도 기내식도 변한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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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을 하면 나비가 그려진 녹색 도시락통을 나눠준다. 어떤 메뉴 일지 기대하면서 뚜껑을 열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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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티슈 아래에 메인 메뉴가 숨어있을 것이라 기대하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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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는 변하지 않았다. 과분하기 짝이 없는 포크랑 숟가락이다. 깨초밥과 빵에겐.


공항에서 입국 수속을 마치면 11:30 ~ 12:00. 점심시간이다. 체인점 우동집인 하나마루 신치토세공항점에서의 작년의 감동을 기리는 차원에서 고민할 것도 없이 점심은 우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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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과 같은 기츠네우동(유부우동) 작은 사이즈. 추가로 가라아게와 어묵 튀김을 골랐다. 고작 1년이니 맛은 변하지 않았겠지만, 그때만큼 맛있진 않았다. 아무래도 작년의 그 맛은 여행의 설렘이라는 조미료가 더해졌었나 보다. 그렇다고 이게 맛이 없냐 하면 그건 절대로 아니다. 300엔이라는 가격을 고려하면 훌륭한 한 끼 식사임엔 틀림없다.


여기까진 훌륭했다. 감흥은 덜했지만 여전히 훌륭한 우동 한 그릇을 뚝딱해치웠고, 여행인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다만 이번 여행의 동반자 태풍이란 놈을 공항 지하 JR 매표소에서 처음 마주했을 뿐.

미리미리 여행지 날씨를 체크하는 건 여행자의 필수 덕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행자로선 실격이다. 홋카이도에 태풍이 온다는 뉴스를 접하긴 했었지만, 그저 지나가는 태풍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니까. 허나 JR매표소에서, 나는 태풍이라는 놈을 다시 봤다. 놈은 잔혹하고 강력했다. 홋카이도를 덮친 태풍 덕에 노선은 곳곳 정비 중이었다. 공항에서 오비히로로 향하는 열차 노선도 물론 운행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여권에 도장이라곤 몇 개 되지 않는 인생이지만은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 첫 목적지는 오비히로였다. 만화 은수저의 배경이자, 홋카이도 제과/디저트의 발상지, 원조 부타동으로 유명한 바로 그 오비히로! 게다가 여행 일정에 딱 맞는 불꽃놀이도 예정되어 있어, 부타동 - 과자점 - 불꽃놀이의 완벽한 일정을 기대한 곳이었다. 잔학 무도한 태풍 덕분에, 우리는 여행 첫날부터 여행 계획을 다시 세워야 했다. 오비히로 - 구시로 - 시레코토 - 아사히카와 - 삿포로로 이어지는 홋카이도 반시계 방향 기차여행을 계획했었는데....


JR 역무원과 잠깐 상의를 하고, 여행 계획을 새로 짰다. 사실 계획이랄 것도 없었다. 우선 JR 4박 5일 패스를 사고, 도야-하코다테 루트를 타기로 했다. 그 후는 패스가 있으니 어디든 이동하면 된다. 그렇게, 그렇게 억지로 멘탈을 수습하고 도야로 떠났다.


공항에서 도야로 가려면 미나미 치토세 역에서 환승을 해야 한다. 미나미 치토세 역은 환승역 치고는 작지만, 규모에 비해선 굉장히 깨끗했다. 도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면서 냉동식품 자판기를 발견! 물론 속이 쓰린 멘붕 상태였기에 먹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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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R패스가 있으면 해당 기간 내 일반 JR열차를 무제한 이용할 수 있다. JR홋카이도는 담당 영역이 넓고, 사실상 독점이다 보니 가격이 높다. 자유석 / 지정석을 이용할 수 있다. 자유석은 그냥 자유석용 객차에 올라타면 되지만, 지정석을 타려면 JR매표소에서 좌석을 지정받아야 한다. 기차 노선도와 기차 시간표를 보고, 일정 내의 모든 기차표를 한 번에 발권받으면 편하다. 하지만 난 태풍 덕에 언제든지 변경 가능한 슈뢰딩거의 일정을 보냈으므로 해당 사항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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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석 앞에는 이렇게 표를 꽂아 놓는 곳이 있다. 발권받은 기차표를 넣으면 된다. 어쩌면 우리 마음 한켠에도 이런 공간 하나쯤은 다들 남겨놨으리라. 바로 당신을 위한 공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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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이 커지고 싶다고? 그럼 너는 문틈에 찡기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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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해안을 따라 달렸다. 바다 위를 달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도야에 도착했다.

도야역 바로 앞에서 도야 호수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잘 모르겠으면 쭈뼛쭈뼛 거리면서 멍충하게 있을 수 있는 게 여행객의 특권이다. 그럼 동네 할아버지가 와서 여기서 타면 된다고 알려준다.


도야는 호수와 온천, 그리고 분화구(?)로 유명하다. 몇 개의 으리으리한 온천 호텔들이 있다. 물론 내가 머문 숙소는 다소 작고 낡은 온천 호텔이었다. 다만 온천 욕탕은 훌륭했다. 근처 산 정상 분화구에선 대왕 호빵 기계마냥 연기가 모락모락 난다고 하는데, 나는 가지 않았다.

산을 넘고, 분화구 표지판을 보면서 폭발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으면 곧 도착이다. 요상하게 생긴 움직이는 성이 당신을 맞아줄 것이다


도대체 왜 성이 호수에 떠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지만, 호수는 꽤나 넓고 평화롭다.


숙소를 잡고 동네 구경을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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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호수 관광이 전부인 작은 도시다. 다들 대형 리조트에서 먹고 쉬는지 길에는 사람이 드물었고, 식당도 그리 많지는 않았다. 문을 닫은 곳도 많았고, 한눈에 봐도 빈집인 건물도 몇 개는 있더라. 그런 와중에 한 식당에 들어갔는데, 가리비가 유명한 식당이었다. 무려 가리비 카레와 가리비 덮밥을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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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가리비뿐인 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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덮밥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사실 아무리 가리비 컨셉이어도, 일반 카레나 덮밥에 가리비로 포인트를 준 정도일 거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가리비 천지여서 이렇게 다 먹어버리면 인어공주는 상반신을 뭘로 가리나 걱정이 되었다. 속옷으로 쓸 가리비는 남아야 할 텐데...



도야호수는 휴양지다. 온천을 하면서 쉬면 할 게 없다. 그래서인지, 여름엔 매일 밤 작은 불꽃놀이를 연다. 도야 호수의 호텔/리조트들이 주최한다고 한다. 따라서 작은 배에 화약을 싣고선, 호텔들 앞을 지나가면서 순회공연을 한다. 불꽃에 집중하면 나도 모르게 배를 따라서 걷게 되더라. 왜 그 많은 쥐들이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다녔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적한 여름밤, 호수와 함께한 이동식 불꽃놀이. 크진 않아도 충분히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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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불꽃이 아니어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우리의 삶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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