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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나의 빛, 그리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by 문 진영

진리탐구 (학문)는 현대사회를 지탱하는 가장 주요한 시스템이고, 이 학문이란 것은 이를 양성하는 학교 시스템, 학회 등의 학계시스템, 저널 등의 출판 시스템 등 여러가지 하위 시스템에 의해 유지 및 발전됩니다. 의사들의 의료 프랙티스에 준거를 제시해주는 의학도 결국 학문의 한 계통이고, 같은 하위 시스템들에 의해 유지가 됩니다.


아이와 뒤늦은 졸업사진을 찍으러 단풍이 좋은 가을에 학교에 왔습니다. 제 학문적 기반을 확실하게 잡아주고 훌륭한 가르침을 주신 선대의 학자들과 교수님들께 지고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어디에 가서 일을 하고 학문을 하든 그 체계를 잡고 뿌리가 되어준 서울대학교를 잊지 않겠습니다.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교훈을 졸업할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이후의 제 인생은 이 한 마디 문장에 무의식적으로 의지해서 달려오던 나날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세속적 가치를 중시하는 풍조가 아무리 범람해도 이 한 마디가 가지는 의미는 결코 경시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직업환경의학은 지식이 그 가치를 가장 극대화시켜 발휘될 수 있는 의학의 한 갈래입니다. 이미 엔트로피가 커져버리고 뒤엉켜버려서, 암이 생기거나 건강장해가 생길 수 있는 사건들을, 이 학문분야의 지식들로 막을 수 있습니다. 이미 사건이 일어난 후에 이를 수습 (수술, 시술, 치료 등)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들고 효과가 좋습니다. 무엇보다 직업의학 및 환경의학 모두 우리의 일상과 뗄래야 뗄 수 없고, 어쩌면 생업을 영위하기 위해 위험인자를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상황들이 있을진대, 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 전체적으로 비용효과적인 학문분야입니다. 보건대학원에서 이를 깊고 순수하게 배울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추상적인 사건들을 숫자로 측정하고 표현 및 계산할 수 있는 일종의 추상적 ‘자’를 가지고 싶었는데, 통계학을 깊숙히 배움으로써 이것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어떤 추상적 의학적 주제가 주어져도 통계적으로 수치화, 체계화시켜 표현할 수 있다는 일말의 자신이 있습니다. 모두 대학원에서 깊게 공부한 덕입니다. 그런 기회를 제공해 준 서울대학교에 감사드립니다.


애초부터 몰랐다면 모를까, 학문의 시스템과 그 방대한 세계를 봐버린 입장에서, 이제 더 이상 이 시스템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발전에 기여하는 식으로 삶의 일부를 할애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거대한 진리의 일부로 제 삶이 편입된다면 무한한 영광일 것 같습니다. 아마 목마른 짐승이 물가에서 물을 찾듯이 그렇게 진리의 강에 계속해서 나타나려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의 제 상태는 내년 2월에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만 취득하면 이제 다시 임상의사를 해도, 직업환경의학과 의사로서 살아도, 아니면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이를테면 ESG 컨설팅을 하며 살아도, 이제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대학에 들어오며 목표했던 소정의 학문적 목표를 달성했고, 이제 어느 정도 목표했던 대로 진리탐구의 도구들을 다룰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제가 제 삶을 만들어 나가기 나름일 것입니다만은, 여기까지 사회가 나에게 투자한 것이 있으니, 사회도 나에게 원하는 역할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단순히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보다 더 적합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생각이 있습니다.


어떤 길을 가든 삶의 한켠에는 연구자의 삶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리는 나의 빛’이라는 말이 제 인생 마지막까지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들을 현장에 적용해 사람들의 건강수준을 증진시키고 향상시킬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블로그 : 진리는 나의 빛, 그리고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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