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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적으로 공부한다’에 관하여 (1편)

by 문 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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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보다 공부를 잘하고 잘했던 사람들이 많겠지만은 필자도 공부를 워낙 오래 하여서 공부에 관해서라면 한 마디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체계적으로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공부를 할 때 필자는 2가지 계통의 학문을 구분지어서 서로 다른 방법을 적용하는데 한 가지는 수학 계통의 학문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 같은 다수의 개념이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있는 (소위 암기가 주된) 학문이다. 통계학은 첫 번째에 해당될 것이고, 의학이나 생명과학은 두 번째에 해당 될 것이다.


이 두 가지 계통의 학문이 공부하는 방법이 아예 다른데, 우선 수학은 기본부터 확실하게 쌓아나가야 한다. 수학을 기본부터 안 하고 어려운 개념부터 낙하산 식으로 공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게, 우선 기본 개념 없이는 어려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따라서 수학은 기초부터 차근히 쌓아나가는 학문이고, 이 기초가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갑자기 끼어드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정직한 학문이라 생각한다.


반면에 암기 위주의 사회과학 및 자연과학은 병렬적으로 다수의 개념이 복합적으로 제시되어 있기에 일단 이해가 안 가도 다음 단계부터 진행이 가능하다. 따라서 기본 개념이랄 것이 없으며, 아래 학년에서 못 배운 것도 위에서 어차피 다시 배우거나 심하게 말하면 몰라도 function을 하는데 별 상관 없기에 의대에서는 일단 윗 학년으로 올라가는게 최우선인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지금 현직 진단검사의학과 전문의가 해부학의 세부내용을 기억할까? 전혀 아니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이렇게 간단하면 좋겠지만은 그렇지가 않다. 의사의 경우 function을 배우고 로컬에 나가서 환자 진료만 할 것이라면 큰 상관이 없지만, 만약 제대로 된 research outcome을 내고 싶다면 다시 첫 번째, 수학 계통의 학문을 배워나가야 한다. researcher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학문의 경계가 사라진다. 영작도 잘해야 하고, 영어 speaking도 잘해야하고, 통계 개념도 잘 이해해야 하고, 복잡한 실험도 할 줄 알아야 되며, 당연히 의학에서 배운 개념들도 총체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말 그대로 총력전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래서 research performance를 잘 내는 교수님들을 옆에서 보면 확실히 전체적인 수준이 높으시다. 본인이 공부를 워낙 많이 하셨으니 어느새 그 정신적 고상함에 물드신 것이다.


또 한 가지 이야기해보자면 필자는 두 번째 계통의 암기 위주의 학문을 공부할 때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으로 5~6권 정도 빌려다가 병렬적으로 쭉 펼쳐놓고 공부했다. 보통 기초의학을 공부할 때 이 방법을 썼었는데 어떤 개념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고 여러 권을 동시에 보면서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채워져야 완전히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임상의학은 보통 족보에서 시험이 출제되므로 족보를 열심히 풀어보는게 더 퍼포먼스가 나았다.


이렇게 공부의 큰 갈래 2 가지에 따라 공부하는 방법이 천양지차다. 군의관 시절에 통계학을 다시 공부할 때는 집에서 수학의 정석 1, 2 버리지 않은 것을 가져와서 함께 보면서 개념을 이해하곤 했다. 의대시절에는 병렬적으로 여러 기본서를 펴놓고 동시에 이해했고, 임상의학을 공부할 땐 열심히 족보를 눈에 발랐다. 특성에 따라 학습 방법이 다르기에 일률적으로 어떤 방법을 해야한다고 하는 말에 빠지지 않길 바란다. 특히 수학 계통의 학문은 창피해도 기본부터 다져야 나중에 새로운 의사결정을 할 때도 흔들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필자는 지금 논문을 쓰다가 아주 새로운 통계기법이 나와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능하다. 통계 패키지 사용법만 공부한 것이 아니라 통계학 그 자체를 공부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 시선에 신경쓰지 말고 필요한 것이 있다면 기본부터 차근히 공부하자. 그게 장기적으로 앞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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