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작용 속에서 용해되는 자잘한 일들 말고, 한 번 환경의학과 직업의학 연구에 대해 그랜드 디자인을 해보자. 이는 필자의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니 독자분들은 참고만 하시는 것이 좋을 것이다.
자 현재 환경의학과 직업의학의 사회적 포지션은 어떠한가. 우리나라에서는 점차 경제가 고도성장기를 지나 안정기로 접어들면서 선진국 반열에 올라가고 있고, 따라서 이전에는 굳이 문제 삼지 않거나 알아도 의도적으로 외면하던 직업의학의 여러 문제들이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사회 구성원들도 소수 노동자들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관심을 갖지 않거나 할 문제들이 이제는 다수 대중의 문제로 인식되면서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 예를 들면, 택배기사나 플랫폼 배달 라이더의 직업보건 문제같은 경우 말이다. 직장괴롭힘도 마찬가지이다.
환경의학은 어떠한가. 필자는 오히려 경제가 발달하고 사회가 발달하면서 직업의학도 중요하지만 Weiner et al. 의 논문에서 나온 모형처럼 환경의학이 점차 중요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작업장에서 높은 농도로 노동자들이 노출되던 직업의학 문제가, 사회가 발전하면서 점차 다수 대중이 생산된 제품의 유해인자에 낮은 농도로 노출이 되는 환경의학 문제로 변모해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석면, 과불화합물 등) 이는 직업환경의학 의사들이 같은 유해인자에 대한 건강영향을 연구할 때 고농도에 집중적으로 노출되는 노동자 뿐만 아니라 적은 농도에 만성적으로 노출되는 일반 대중에 대한 건강영향도 함께 고려해야함을 이야기한다.
그럼 앞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사적 환경의학과 직업의학의 흐름을 주도하려면 무엇을 해야할까. 우선 훌륭한 연구자가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 환경의학과 직업의학은 역학과 독성학에 기반을 둔 학문인 만큼 일반 임상의학과 다르게 해당 직업병이나 환경병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이 '지식'을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 key가 되는 diagnostic clues (진단적 힌트들)을 잡아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좌우되고, 추후 검사의 진행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경의학과 직업의학 교육을 의과대학과 트레이닝 과정에서 강화하고 (내과와 가정의학과에서 파견을 보내면 어떨까 한다), 직업환경의학회 내부에서는 심도있고 실력있는 연구자를 대폭 길러내야 한다.
둘째는 정말 선진적인 환경의학, 직업의학 주제에 대해 데이터를 모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결국 data-driven 연구로서 evidence를 쌓아나가는 것이 현대 의학이라고 한다면, 최신 주제에 대한 데이터를 체계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체계를 즉시즉시 구축하는 역량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 예를 들어보자. 최근 배양육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2030년에는 전통적인 육식이 (대량 가축 사육과 도축 시스템) 없어질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렇다면 배양육은 건강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일까. 이는 영양역학의 주제이기도 하지만, 환경의학의 주제이기도 하다. 필자는 정말 궁금하다. 하지만 이 궁금증을 해결할 데이터셋은 아마 현재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만약 야망있는 신진 연구자가 이 주제에 대해 연구제안서를 제출하면 신속하게 지원해서 코호트 셋을 구축하거나 환자 대조군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렇게 혁신적인 주제에 대해 신속한 연구비 지원과 데이터셋 구축이 빈번하게 이루어지면 한국인 학자들이 주요 보건학 학술지를 점령하게 되면서 우리가 세계적으로 환경의학과 직업의학의 헤게모니를 가져올 수 있다.
셋째는 환경의학과 직업의학이 산업화와 연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논문이 논문으로만 끝나는 것은 실제 산업현장에서 뛰고있는 일반 국민과 외화가 중요한 정부 입장에서보면 아쉬운 일이다. 혁신적인 논문이 쏟아져 나온다면, 이를 산업화와 연계하여 벤처를 만들거나 기업을 만들어서 투자를 지속적으로 유치하여 산업화시켜야 한다. 현재 미국에 Noom 같은 서비스를 환경의학과 직업의학에 적용하는 것은 어떨까. 앞에서 예로 든 배양육 섭취의 장기적 건강영향에 대해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상업적 건강증진 (health promotion) 서비스에 접목하여 신속하게 서비스하는 것은 어떨까. 최근 논의 중인 탄소발자국을 금융시스템과 연계하여 서비스하는 것은 어떨까. 친환경 서비스나 탄소저감 서비스, 상품을 이용한 개인에게 캐시백 형태로 포인트를 돌려주고 이를 현재 카카오뱅크나 토스뱅크같은 금융시스템과 연계해 실제 현금처럼 소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 금융시스템과 접목된 친환경 보상 서비스는 여러 형태로 응용가능하고 시스템을 통채로 해외에 수출할 수도 있다. 구현하기에 어려운 서비스가 아니다. 아예 비전펀드처럼 국제적으로 유명한 ESG 펀드를 국가대표펀드로 하나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투자자산은 ESG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는 기업이나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벤처에만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것이다. 투자 수익률 측면에서 다른 펀드를 압도할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이런 전문 운용 서비스는 해당 분야에 전문 지식을 지닌 인력을 많이 보유한 국가일 수록 유리하다.
이 포스팅에서 마지막 항목이 필요한 이유는 정부나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는 학술적 결과물이 실제 경제적 이익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의 세수가 늘든 기업 소득이 늘든 가계 소득이 늘든 해야지 실질적인 혜택이 있다고 생각한다. 학자들만의 파티로 끝나지 않게 하자는 말이다. 에너지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어 환경의학과 직업의학의 국제적 선두를 계속 유지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이렇게 환경의학과 직업의학 분야에서도 국제적 관점에서의 그랜드 디자인이 가능하다. 어떠한가. 실제 구현할 수 있다면 한국이 ESG 선진국으로 확고히 자리를 굳히는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그랜드 디자인이 머릿 속에 여러 개 떠오르는데 필자의 전공분야에서 하나 적어 보았다. 15년 내에 직접 구현할 수 있었으면 한다.
블로그 글: 그랜드 디자인을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