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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진영 Sep 28. 2024

업무와 연관되서 생기는 손상/질병 [리얼라이저블]

어떤 손상/질병이 업무관련성이 있는걸까. 

*리얼라이저블이라는 공장 운영 플랫폼에 기고하는 글은 제목 뒷부분에 [리얼라이저블]이라고 붙이겠습니다.


지난 번 글에서는 왜 공장에서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가 특수건강검진을 하는지, 근로자가 노출되는 유해인자와 그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직업병을 어떻게 검진을 통해 찾아내는지 설명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과연 어떤 사고나 질병이 업무와 관련되어서 생기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우선 사고의 경우는 비교적 업무관련성이 명확합니다. '공장에서 불산에 노출되어 화상을 입었다. 공장 3층에서 떨어져서 다리뼈가 부러졌다. 지게차에 치여서 허리 부근에 손상을 입었다.' 이런 경우들은 비교적 명백한 산업재해로서 직업성 손상의 범주에 포함됩니다. 누가 보더라도 직업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인과가 비교적 명백한 손상들입니다. 


반면에 직업성 질병의 경우는 업무관련성이 비교적 명백한 경우부터 모호한 경우까지 매우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예를 들면 '메탄올을 이용하면 전자제품을 닦던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실명이 발생했다. 탄광에서 30년간 채탄부로 일하던 광부가 탄광부 진폐증을 진단받았다. 시끄러운 소음이 발생하는 제조공정에서 근무하던 노동자에게서 소음성 난청이 진단되었다. 석면을 이용하여 제품을 만들던 공장에서 근무했던 직원이 30년 후에 중피종이 진단되었다.' 이런 경우들은 비교적 업무관련성이 그래도 명백한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모호한 경우는 무엇이 있을까요. 예를 들면 '지난 10년간 야간 교대 근무를 서며 공장을 지키던 경비원에게서 고혈압과 당뇨, 고지혈증이 진단되었다. 화장품 공장의 실험실에서 분진이 날리는 환경에서 10년 근무한 직원에게서 간질성 폐질환 (interstitial lung disease)이 진단되었다. 공장에서 20년간 주조를 담당하던 직원이 폐암에 진단되었다.' 이런 경우들은 사업주나 사업장 측에서는 애매한 경우라 생각하겠지만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가 보기엔 비교적 업무관련성이 높다. 반대로 업무관련성이 아주 애매한 경우도 많이 있다. 


그렇다면 직업성 질환, 즉 직업병 중에 업무관련성에 대한 판단이 비교적 명확하지 못하고 애매한 질병들이 업무상 질병인지 아닌지 판단을 어떻게 할까. 먼저 이런 판단이 필요한 경우는 대개 1. 질병이 생긴 근로자가 이 질병이 자신의 직업이나 업무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판단해서 노무사를 선임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상을 신청했을 때, 2. 특수건강검진에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작업전환이나 해당 사업장에 대한 임시건강진단이나 수시건강진단을 지시할지 결정할 때, 3. 고용노동부가 직업병 의심 근로자가 대량으로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 임시건강진단을 지시할 때 등을 들 수 있다. 공장 오너나 공장 관리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1번과 2번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내 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에게서 발생한 질병이 업무상 질병이라는 판단은 어떻게 내릴 수 있을까. 



우리사회는 현재 1번에 대해서는 근로복지공단 산하에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라는 것을 각 지역별로 운영하여, 각 지사마다 1년에 수십번의 회의를 열어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산업보건 노출평가 전문가, 노무사, 변호사, 각과 임상 전문의들로 구성된 7명의 위원이 각 회의마다 모여서 회차당 1~2시간동안 십수건의 이런 산재보상신청 케이스에 대해서 업무관련성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2번에 대해서는 해당 특수검진 등을 수행한 직업환경의학과 의사가 책임을 지고 업무관련성을 판단해 회사의 보건관리자와 협의해 결정하고, 3번의 경우는 고용노동부 산하 안전보건공단에 산업안전보건 연구원 등에서 근무하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나 산업보건 전문가들이 판단해 실시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이런 판단의 의학적, 논리적, 이론적 근거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probability of causation이라는 원칙을 적용한 의학적 판단이다. 여기에 1번의 산재보상 여부 결정에 대해서는 상당인과관계라는 법률적 판단이 더해져 판단되게 된다. 2번과 3번의 경우에는 직업의학적 판단이 주가 된다.


어떤 유해인자에 노출되었을 때 어떤 직업병이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도 직업의학과 환경의학 (직업보건과 환경보건)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따라서 이렇게 논문을 통해 연관성이 증명이 되게 되고, 이러한 근거들이 점점 쌓이게 되면, 미국 등 선진국의 안전보건관련 국가 기관이라던가, 아니면 국제노동기구 (ILO),  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 같은 국제적인 기구에서 업무관련성 판단에 대한 문서를 발행하게 된다.


probability of causation은 간단히 말해서 결국 해당 유해인자에 이 정도로 노출이 되었을 때, 해당 질병이 발생할 경우가 그렇지 않을 경우에 비해 50%의 확률을 넘기냐는 것이다. 상당인과관계는 간단히 말하면 해당 업무에 종사하며 이 정도로 해당 유해인자에 노출된 사람에게서 이 질병을 직업병으로 인정시 우리사회가 그 잠재적 총량을 감당할 수 있느냐이다 (사회적 판단).  


그래서 결국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나 산업보건 전문가는 어떤 유해인자에 노출되는 근로자가 어떤 직업병에 걸릴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의학, 보건학 논문을 읽어가며 최신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지식들이 누적이 되고, 실무경험이 쌓일 수록 업무관련성에 대한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비록 공장관리자 분들이 이런 업무관련성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근로자의 질병을 마주하는 일이 없으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어떤 질병이 업무와 관련되어 있는지를 판단하는 준거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시고, 그 준거를 이해하면, 해당 직업병 케이스가 발생해 근로자가 산재보상을 신청하거나, 수시 혹은 임시건강진단 실시가 되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적절히 대응하실 수 있을 것이다. 


2024년 9월 28일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문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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