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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진영 Jun 09. 2021

개별 회사원의 입장에서 직장괴롭힘을 어떻게 막아낼까

네이버 직장괴롭힘 특별근로감독


최근 네이버가 직장 괴롭힘으로 팀장급 중에 자살한 사람이 나오면서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에 돌입했다. 아마 사무직들 중에 직장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것이나 쉽사리 유병률이 드러나지도 않을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허다한 직업의학 전문가가 견해를 밝히고 방지법을 밝히지만, 그건 공식적인 연구나 보고서용 이야기이고, 정작 그 연구자들도 자신의 조직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당황하고 대처 방법을 못 찾고 허둥대기 일쑤다. 이 글에서는 정말 피해자인 직장인 입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실제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알아보자. 아마 이 글이 직장인들 입장에서 가장 유용한 글일 것이다.


우선 그냥 간단히 결론을 말하고 시작하겠다. 조직 안에서 자정작용을 거쳐 직장 괴롭힘이 사라지는 일은 절대 없다. 설령 일시적으로 사라지더라도 동일한 직제, 직무, 조직 구조 안에서는 다시 발생한다. 아예 싹 조직을 흩어버리고 사람도 흩어버리고 다시 재건한다면 모를까. 또 동일한 일이 발생한다. 따라서 조직이 자정작용을 거쳐 나를 구제해 줄거라 믿는 순진한 망상은 버리자. 


그렇다면 스스로를 구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외부 사법기관이든 경찰서든 고용노동부든 가야지 바뀐다. 그런데 경찰서나 고용노동부에 가서 '제가 직장괴롭힘을 당하고 있어요.' 라고 하면 '어 그러십니까. 저희가 철저히 조사하겠습니다.' 이럴까? 전혀 아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피해자인 당신은 가뜩이나 서류 작업으로 바쁜 그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일 뿐이다. 따라서 당신을 회유하려고 할 것이다. '그 정도로는 조사가 들어가지 않아요. 설령 조사가 들어가 처벌이 이루어져도 그리 타격이 없을겁니다. 당신만 손해를 볼거에요.' 이런식으로 회유하려 할 것이다. 그러면 그 고용노동부 공무원이나 경찰관까지 같이 묶어서 더 상급기관에 고발한다? 별로 실효성이 없을 것이다. 그럼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은 누구인가. 


아무도 없다. 스스로 외에는 스스로를 보호하지 못한다. 따라서 구체적 물증을 모아야 한다. (물증은 증인보다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고 인용될 확률이 더 높다.) 구체적 물증이 모일 때까지 절대로 경거망동하면 안 된다. 상대가 눈치 채고 물증을 모으지 못하게 할 것이다. 따라서 눈치 채지 못하게 녹음기와 사진기, 기록을 남겨야 한다. 기록을 남길 때는 주의 사항이 있다. 일기장 이런 것보다 날짜와 시간이 찍히는 전자문서에 기록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건 검색해 보면 나온다.) 그리고 영수증이나 이런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잉크가 희미해져 날아가니 스캔해서 전자문서로 보관해두는게 좋다. 


그리고 증거가 충분히 모였으면 바로 변호사를 선임하고 법원으로 가야 한다. 형사든 민사든 그런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풀릴 확률이 크다. 직장 괴롭힘의 경우 대부분 양측 진술이 엇갈린다. (필자는 3년 전에 근로복지공단에서 직장내 괴롭힘 산재 신청 문서를 1000건 가까이 검토한 적 있다.) 아마 상대측이 여럿이라면 단체로 입을 맞추어 피해자의 잘못으로 몰아가려 할 것이다. 그러나 직장 괴롭힘에서는 이런 사례가 많기 때문에 증인 여럿의 진술보다 물증 하나가 더 호소력이 있다. 상당히 긴 싸움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상대측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도 엄청난 철퇴를 맞고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부터 시작해서 과태료 등 불이익이 한 둘이 아니기 때문에 피해자인 당신을 정신이상자나 조직부적응자로 몰아갈 확률이 크다. 따라서 회사가 내 편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회사는 회사 자신이 피해를 보지 않는게 가장 중요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기나긴 싸움의 끝에 피해자가 원했던 것을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미지수이다. 끝까지 간다면 가해자는 타부서로 전출이 갈 것이고 회사는 사과를 할 것이고 재발방지를 약속할 것이다. 혹시 민사 소송을 걸었다면 소정의 보상금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정말 피해자가 원했던 것일까. 왜냐하면 그 소송을 제기한 피해자는 그 직장에서 낙인이 찍힐 것이고, 승진할 수 있는 루트가 막힐 것이며,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건 모든 사내직원이 피하려 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이런 것을 감수하고도 승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면 시작해도 좋다. 하지만 이런 것을 감수하지 못한다면 일반 회사원의 입장에서는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우선 물증과 기록은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언제든지 소송을 걸 수 있는 상태를 준비해놓고 상급자, 회사, 가해자와 deal을 하는 것이 좋다. 재발방지, 물리적 공간분리, 그리고 합리적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금 필자가 이야기하는 것은 직업의학의 대원칙에 크게 위배될 뿐더라 직업의학계의 수 많은 학자들이 들으면 크게 화를 낼 이야기이다. 시스템이 바뀌어야 의미가 있지 개인이 그렇게 조용히 일을 처리해버리면 근본적으로 직장 괴롭힘이 없어지고 직업보건이 향상될 수 있겠냐고 말이다. 그러나 말이다, 그 학계의 대원로 조직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면, 그 대원로라고 정말 원칙대로 명명백백히 일을 처리할까. 그래서 세상 일이 어려운 것이다. 


필자는 지금 학계의 원칙이 아니라 정말 개별 직장인의 입장에서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방법이 승진길도 막히지 않으면서, 회사도 피해를 보지 않으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깔끔한 방법이다. 그러나 직업의학에 한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으로서, 피해자들이 이런 방법을 쓰지 않았으면 한다. 왜냐하면 시스템이 향상될 기회를 날리게 되기 때문이다. (차라리 직장갑질 119 같은 시민단체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개별 회사원 입장에선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이 포스팅을 쓰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제시한 이 방법이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직장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회사원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래서 자살 생각을 조금이라도 접는다면 정말 이 글을 쓴 보람이 있을 것 같다. 그리고 필자도 고백하자면, 이런 방법을 그냥 머리에 떠올린게 아니라,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것이다. 


블로그 글: 개별 회사원의 입장에서 직장괴롭힘을 어떻게 막아낼 수 있을까: 네이버 직장괴롭힘 특별근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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