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는 논문으로 말한다/교수는 논문으로 말한다', 많이 하는 말이다. 필자도 블로그를 늦게 시작한 것이 논문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공신력 있는 논문으로 이야기를 해야지, 내가 개인적으로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모든 걸 다 논문으로 증명할 수는 없다.
우선 기본적으로 과학논문은 가설연역법을 따른다. 물론 scoping review나 position paper, discussion, commentary 등에서는 귀납, 연역, 귀추 등의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이고 대부분은 가설연역법을 따른다. 이에 따르면 가설이 있고 증명할만한 데이터가 있어야 논문이 성립하는데, 만약 데이터가 없다면?
필자가 현재 리비전 중인 논문이 6개 가량 되고, 1차 리뷰 중인 논문이 3개 가량 된다. 그런데 이 논문들을 쓸 때 데이터가 없다면 애초부터 그 주제를 논문 작성에서 배제하게 된다. 즉, 데이터가 있고, 학술 저널에서 잘 팔릴 것 같은 논문을 주로 쓰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어려울 것 같은 이야기는 정말 중요한 주제라서 내가 풀어내야만 하겠다 싶은 정도가 아니라면 잘 건드리지 않게 된다. 자칫 잘못하면 몇 년 걸리는 논문이 되어버려서 미궁에 빠져버리고 여러 번 submit and reject 과정을 거치면서 코멘트를 보고 다듬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것도 현재 몇 개 있다.)
요약하면 우선 데이터가 있어야 하고, 추상적이지 않고 다루기가 어렵지 않아야 학술논문으로 다루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필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학자들이 동의할 것이다. 데이터가 없고, 추상적인 주제에 도전한 적이 몇 번 있는데, 결국 맨땅에 해딩하는 식으로 어떻게 어떻게 해서 줄기를 뽑아내고 완성을 했는데 (현재 리뷰 중이다), 사실 들인 노력에 비하면 그다지 좋은 저널에 실리기는 힘들 것 같다. 주제가 워낙 추상적이라서 이해할 수 있는 사람도 한정적이고, 분야 자체도 굉장히 specific 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학술 저널의 피어 리뷰를 통과하자면 동료 학자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고 동의를 해 주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 일종의 publication bias (출간편향) 가 일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즉 해당 분야를 공부한 비슷한 생각을 가진 학자들이 동의한 내용만이 학술 저널에 출간되게 된다는 것이다. 여러 분야를 융합하여 그 내용들을 이어나가거나, 이 분야의 내용을 가져다가 저 분야에 적용하는 창의적인 내용은 결국 학술저널에 실리기 어렵게 된다. 피어 리뷰어들이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결국 모든 이야기를 논문으로 풀어나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블로그를 하나 개설해서 글을 쓰는 것이 낫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물론 학술문헌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고 인류의 집단지성에 기여하는 가치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계속해서 열심히 쓸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일을 벌이기에는 애매한 시기라 일단 현재 붙잡고 있는 것들만 마무리중이다.) 하지만 블로그 포스팅을 작성하는 이유에 대해 명확히 하지 않으면 추후에 다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이렇게 미리 글을 써 두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다음 포스팅에서는 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보자.
블로그 글: 논문으로 모든 걸 증명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