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을 따라서 계속 가면 되는데, 즉 사건을 연결해가면 되는데, 남에게 성과를 중간에 증명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긴다. 다 끝낸 후에 증명해도 충분한데 말이다. 이게 상당히 많은 일이 중간에 엎어지는 내면적 원인이다.
모든 문제가 대부분 이런식이다. 그냥 남한테 증명하려는 마음을 버리면 되는데,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 그런지 이걸 못 버린다. 필요하면 소속 집단에서의 체면도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걸 못 내려놓는다. 그러니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게 되고 결국 사건이 틀어지고 마는 것이다. (비합리적 결정은 미학적 결정일 때에만 장기적으로 옳다고 할 수 있다. 나머지는 합리적 결정보다 최종 결과가 좋지 않다.)
하나 예로 천재 소년을 들 수 있다. 도대체 왜 남보다 빨리 가야 하지. 각 단계에서 제대로 배우는 것이 내부의 사건을 연결해가는 관점에서는 훨씬 중요하다. 내부에서 사건이 연결되지 않으면 (지식이 연결되지 않으면) 사상 누각이고 천장에 막힌다. 올라갈 수 있는 상한선이 정해진다는 이야기이다. 암기하는 방식으로 아무리 대학교육 끝내봤자 대학원 과정에선 안 통한다. 생각해서 자기 논리를 개진해야 먹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예로 무리집단의 시선이 두려워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경우이다. (미학적 결정은 예외로 한다.) 도대체 왜 소속집단의 시선이 두렵지. 솔직히 졸업하거나 수료하면 소수 빼고는 보지도 않을 사람들이잖아. 왜 체면 차리느라고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는 거지. 물론 체면은 중요하다.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면 때문에 비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의사결정의 합리성이 체면보다 더 중요하다.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계속 자금을 끌어오고 사업에 쏟아부어야 한다. 마치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마치 그 체로 걸러지는 물 맞고 콩나물 자라듯이 사업체가 자라난다. 아주 조금씩 말이다. 거기에 집중을 해야하는데 그게 아니라 당장 돈 얼마 들어가고 얼마 남고 당장 이익을 더 남기려 한다. 그리고 자신은 이익을 추종하니 합리적이라고 믿는다. 이 얼마나 답답한 상황인가. 콩나물이 자라는 것에 집중해야지.
결국 남에게 성과를 증명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자기 내부에서 사건을 연결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남에게 증명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비합리적 결정을 내린다. 차라리 그냥 체면 다 깎아버리고 바닥으로 내려가라. 거기서 스스로의 사건을 연결하는데 집중하자. 그게 차라리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데에 더 낫다. 필자도 즐겨쓰던 방법이다. 바닥으로 내려가서 사건을 연결하는데 집중하자.
블로그 글: 남에게 증명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