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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 진영 Jun 24. 2021

왜 선행학습은 실패할까




소위 '선행학습'이라 불리우는 학년을 건너뛰고 빨리 배운다거나, 건너뛰진 않더라도 축약해서 미리 다 배워버리는 방법이 초중고에서 유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너뛰지 않고 제대로 배운다면 미리 빨리 배우는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는 엄청나게 많은 약점들이 있고, 한 개체가 지적 성숙을 위해 필요로 하는 물리적 시간을 간과한다. 이 주제를 다뤄보자. 


우선 인생에 마감시한이 없다고 가정하고 생각해보자. 무언가를 빨리 배워야할 이유가 있나? 그냥 학교 교육과정에서 가르치는 만큼만 그 시간에 따라가면 된다. 그리고 남는 시간엔 지덕체를 기르는 것이다 (예체능 활동 등). 그리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주어진 교육과정을 파고들어야만 그 부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 구구단을 배울 때는 구구단을 충분히 배우고 구구단 관련 문제를 열심히 풀어봐야지 벌써 방정식 풀어보겠다고 덤벼들면 구구단도 제대로 못 배운다. 


그렇게 단계에 맞게 따라가면 되는데, 미리 배우려는 또는 배우게 하려는 학생, 부모의 생각은 아마 미리 배울 수록 정규 교육과정에서 성과를 올리기에 유리하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정말 유리한 것이 맞을까? 어느 정도는 유리할 수 있다. 학생이 잘 따라간다면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필자가 항상 이야기하는 인과의 고리 관점에서도 이 이야기가 맞을까 (인과의 고리는 단순하지 않다.). 한 마디로 인과는 선형이 아니기에 이런 식으로 성급하게 앞서서 배우는 인생이 과연 현명한 전략적 의사결정을 인생의 중요 순간마다 내리며 갈 수 있게 만드냐는 것이다. 


유비는 50살이 될 때까지 제대로 된 거점도 없이 정처없이 떠돌았다. 형주와 익주를 먹고 황제에 오른 것은 50 이후의 일이다. 반면 원소, 원술, 도겸, 공손찬은 어떤가. 누가 더 빨랐지. 빠른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일까. 유비는 50까지 정처없이 떠돌았지만 쌓여진 명성, 자신을 따르는 부하와 군사들의 질, 황제의 숙부라는 포지션 등 모든 것을 유리하게 가져갔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쌓아올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관련글: 큰 그릇이 완성되는 데에는 긴 물리적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을 살면서 순간순간 그 단계에 맞는 것들을 충실히 채우고 가는 것이 느려보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가장 robust (단단한이란 의미의 통계학적 용어이다.) 길이다. 인생에서 의문점이 든다면 시간이 들어도 의문점을 해결하고 가자. 그 의문점이 그 시점에 당신에게 나타난 것은 당신이 그 의문점을 해결해야 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다음 단계로 가는 제대로 된 문이 열리기 때문이다. 얼른얼른 빨리빨리 가려고만 하다가 명품을 졸작 만들지 말고 말이다. 


블로그 글: 왜 선행학습은 실패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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