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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추억

2023.4.28(금)

by 박달나무 Sep 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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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세스바예스 지역을 떠나 팜플로나로 들어갔다.


앱에 22km떨어졌다는 알베르게에 일단 내 배낭을 이동서비스로 보냈다.


어제 피레네를 넘어오면서 고생이 컸다. 이제 내가 감당하기에 순례길 걷기 프로그램은 버겁다. 아이들 옷가지와 수건 등을 모두 내가 짊어지고 가는데, 무게가 상당하다.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일단 어깨 위 배낭에서 해방…되려고 했지만, 예상했던대로 아이들 배낭을 지고 걸었다.


그래도 한라산보다 훨씬 긴 시간 동안 한라산보다 더 가파른 피레네를 아이들이 자기 배낭을 맨 채 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스페인 걷기는 절반 이상 성공이다.


오늘도 평지는 아니다. 얕은 구릉지대가 오르락내리락 연속해서 이어진다.

좁은 산길이 계속 이어진다좁은 산길이 계속 이어진다

16km 지점의 마을(돈 후앙)에 이르니 한계가 온다. 물 사고, 아이스크림 사 먹고 쉬다가 다시 힘을 내서 4km를 걸으니 모두 지칠대로 지쳤다. 가까이 보이는 오스탈(hostal)에서 방을 얻으려니, 다 찼단다. (우리는 황금연휴의 시작인 줄 생각을 못했다) 더구나 원래 묵으려는 알베르게까지 8km 남았다는 거다. 도저히 걸어갈 수 없는 거리에 있길래, 오스탈 주인에게 도와달라고 했더니, 자기 차로 내 배낭이 있는 알베르게에 데려다 준다.(고맙소!)


문제는 배낭이 도착한 알베르게도 방이 없다는 것. 알베르게 주인 할머니가 한국에서 수도원 생활을 했다며 매우매우 친절하다. 영어도 나보다 잘 한다. 할머니는 우리 두 아이를 매우 예쁘다(대단하다) 칭찬하며 물도 가져다주고, 침대가 있는 알베르게를 알아봐주고 택시를 불러서 우리가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도왔다. 


그래서 우리는 팜플로나 도시 안으로 들어온 것. 옛 수도원 건물을 개조한 알베르게는 가장 저렴한 요금이지만 1인당 10유로. 내가 2018/2019 연속 경험한 알베르게 요금이 100% 오른 것이다. 우리가 묵었던 피레네 초입의 알베르게가 저녁과 아침을 제공하고 1인당 43유로라서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이유가 있었네. 유럽 물가가 엄청 오른 거다.


그래도 음식값은 스페인이 프랑스보다는 70% 수준이다.


우리가 어디서 묵을지 모르는 여행이 더 여행의 목적에 부합한다. 대부분 한 달 이상 잘 곳을 정해놓고 예약하고 왔다고 한다. 우리가 그렇게 잘 곳을 미리 예정하고 왔다면 여행은 매우 위험해진다. 숙소의 고정은 시간 운용의 탄력을 없애는 것이고, 탄력이 없는 상태는 늘 위험하다. 시간이든 물건이든 심리든 성장이든 간에 <고정>은 곧 실패를 품고 있다.


팜플로나는 한국의… 나주 정도.


독자 세력 나주는 백제가 아니었지만, 백제에 편입됐다가 영산강과 드넓은 평야 덕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중소도시로 기능하고 있듯이….


팜플로나도 중세까지 나바라 왕국의 중심이다가 현재 농촌 지역의 중소도시로 역할을 맡고 있다. 


내가 눈길이 닿는 건 역시 거리의 아이들. 금요일 저녁에 부모를 따라 나온 아이들의 표정이 해맑다. 어른들은 경제적 타격으로 수심에 찬 얼굴이지만, 학업/학원/성적/대인관계에 걱정거리가 없는 팜플로나 아이들의 얼굴은 활짝 폈더라.


재활용 쓰레기장에 있는 가전제품 포장 박스를 가지고 오두막을 짓는 아이들을 본 작은아이가, “저건 내가 전문인데. 아니 저렇게 지붕 없이 집을 짓다니 한심하네. 집에 가서 낚시대를 가지고 와서 기둥을 세워야 지붕을 만들 수 있는데…..”


하길래, “네가 가서 한 수 가르쳐줘라” 했다.


“말을 못해서….”


이럴 땐 참으로 작은아이가 대단하다. 이 아이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일까 잠시 생각.


알베르게에서 걸어서 15분 정도에 동전빨래방이 있다고 검색돼서, 빨래를 하고 오니, 10시 반이 넘었다. 알베르게 문이 잠겼다. 관리인이 강하게 질책한다. “Not good!!!”이라 짧고 크게 말한다. 할 수 있는 말이 i am Sorry 밖에 더 있는가.


그러나 잠을 잘 수 없다.


다음 숙소를 잡을 수 없다.


오늘이 금요일 내일은 토요일 그리고 일요일 또 노동절…. 숙소를 잡기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짜낸 아이디어가 로그로뇨로 이동하는 것. 기차 조차 풀예약이라 불가능하다. 버스만 있다. 일단 내일은 10km 떨어진 같은 팜플로나의 호텔을 잡았다. (여기도 비싸지만 팜플로나 중심지 호텔은 7,80만 원을 부른다. 토요일 밤 숙박이니까) 그나마 저렴하다. 200유로. 그리고 로그로뇨의 알베르게를 예약했다. 여기도 머리에 쥐나는 가격이다. 1인 40유로. 이후로는 걸으면서 우리의 운명을 확인할 생각이다. 로그로뇨부터는 내가 2번 경험한 코스니까 좀 낫겠지 하는 근거 없는 희망도 있고….


더이상 버틸 수 없어서 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잤다. 하루 이상 일기를 미루기는 2월1일 일기쓰기 이후로 처음이다. 아침 7시부터 조금의 틈도 없이 18시간이 지나갔다.

(현대자동차 관련 내용은 다음 날 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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