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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쓰는 이유

2023.4.29(토)

by 박달나무 Sep 26. 2023

어제 일기의 제목을 <현대자동차의 추억>이라 해놓고, 관련 내용을 적지 못했다.


작은아이가 시골길을 걷다가 먼지를 뒤집어 쓴 중형 SUV를 가리키며 차종과 차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아이가 현대 갤로퍼라고 지목한 미쓰비시 자동차아이가 현대 갤로퍼라고 지목한 미쓰비시 자동차

뒤돌아보니(나는 앞에서 걷고 자동차와 거리가 좀 있었다) 미쓰비시 마크가 보이길래, “일본 미쓰비시 자동찬데…” 대답했다.


“아무리 봐도 이거 갤로펀데”


아이가 이렇게 말하는 거다. 깜짝 놀랐다.


“응 갤로퍼가 미쓰비시 자동차 모델을 가지고 똑같이 만든 거야”


“이거 나중에 종이에 그리게 사진을 찍어주세요. 사진 보고 자세히 그릴게요”


그래서 앞뒤옆 비스듬히 보는 겨냥도도 찍고, 타이어도 확대 촬영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옛날 차종인 갤로퍼를 어찌 알았지. 그리고 스페인에서 발견한 미쓰비시 차량을 보고(이 차도 20년 이상 낡은 연식으로 보인다) 바로 갤로퍼를 떠올리다니….”


아이가 갤로퍼 미니피규어를 가지고 있으니까 알아본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아이의 눈썰미는 예사롭지 않다. 자기도 ‘스캔하니까요’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정말 컴퓨터 스캔 능력이다. 


갤로퍼는 90년 대 초반에 현대가 처음으로 4륜구동 자동차를 만들면서 미쓰비시 공전의 히트작 <파제로>를 그대로 복제한 결과다. 심지어 일본과 운전대가 반대인 한국인데도 뒷문짝 여는 방향을 일본과 똑같이 만들었다. (당시에 문짝 방향을 바꿀 기술이 부족했다)


그러니 2019년 11월 어느 날 순례길을 걷다가 남긴 일기 대목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아이들이 작은아이와 같은 나이다.


//


#스페인카미노데산티아고

#열넷째날(2019.11.3)

#칼사디야(Calzadilla)


“스페인에서 대우자동차 누비라 봤다. 어제. 스페인에 한국 자동차 많이 봤지? 너희 대우자동차 알아? 모른다고.... 모르는 게 당연해. 사라진 자동차 회사니까. 그런데 한국에서도 보기 힘든 대우 누비라를 보니까 신기했어. 차는 아주 깨끗해서 금방 뽑은 새 차 같아 보였어. 관리를 잘 했나봐. 너희 집 자동차는 어느 회사 제품이야?”


“저희는 그랜전데....”


“저희는 소울....”


“그건 자동차 모델 이름이고 제조회사가 어딘지 알아?”


“몰라요”


“그랜저는 현대자동차, 소울은 기아자동차야. 그런데 두 회사가 사실은 같은 회사야. 그래서 현대기아자동차라고 부르기도 하지. 기아가 망해서 현대가 인수한 거야. 사람들은 현기차라고 줄여서 말하기도 해”


“현대가 좋아요, 기아가 좋아요?”


“스페인에 어떤 나라 자동차가 제일 많은 지 알아? 바로 일본차야. 일본은 아주 큰 자동차 회사가 여럿이야. 자동차 강국이지. 원래는 미국이 가장 많은 자동차를 생산했는데 이제는 일본에 뒤쳐졌어. 일본 자동차는 한국에도 많아. 하지만 한국에 전혀 들어오지 않은 일본 자동차 회사가 있어. 바로 미쓰비시 자동차야. 미쓰비시 회사는 우리가 식민지 시절 한국 사람을 강제로 데려가서 일을 시키고 제대로 월급을 주지 않아서 미움을 엄청 받는 회사야. 어쨌든 일본에서 가장 큰 회사야. 한국으로 치면 삼성과 같아. 미쓰비시 자동차는 한국에 직접 자동차를 팔지 않지만 사실상 옛날부터 한국 사람에게 차를 판 거라고 볼 수 있어”


“미쓰비시 자동차가 좋은 차예요?”


“좋다 나쁘다를 떠나 큰 규모의 회사야. 기아자동차는 처음에 자전거를 만들던 회산데 오토바이를 만들었다가 승용차도 만들어 팔았어. 그게 50년 전이야. 참 오래 된 얘기네. 하지만 꼭 알아야 하는 얘기야. 기아자동차가 만든 브리사 모델은 일본 마즈다 자동차 모델을 그대로 들여와서 생산한 거야. 스페인에도 갈매기 날개 모양의 마즈다 마크를 단 차가 아주 많아. 그러다가 1975년 그러니까 45년 전에 한국 최초의 고유 모델 승용차가 만들어지게 돼. 그게 현대자동차의 포니야. 포니가 무슨 뜻이지?”


“조랑말이잖아요”


“맞아. 그런데 한국의 최초 고유 모델 포니의 엔진은 미쓰비시 자동차 엔진이야. 자동차의 엔진 다음으로 중요한 동력전달장치도 미쓰비시 자동차에서 생산한 제품을 가져와서 조립했어. 현대자동차는 이태리 디자이너에게 의뢰하고 모양을 결정해서 껍데기만 만들고 일본 미쓰비시 자동차 엔진과 기어 박스를 가져와서 포니를 만든 거야. 포니는 엄청 많이 팔렸어. 나중엔 수출도 많이 했지. 포니가 팔리면 팔릴수록 미쓰비시 자동차만 신나는 일이었지. 그후로 현대자동차는 미쓰비시 모델을 가져와서 신차라고 광고를 많이 했어. 그랜저와 소나타도 미쓰비시 자동차 모델을 그대로 들여온 거야. 그러니까 사실상 옛날의 현대자동차는 땅 짚고 헤엄치는 격으로 자동차 장사를 한 거지”


“그랜저가 일본차예요? 어휴 몰랐어요”


“지금은 현대자동차가 고유 모델을 개발할 정도로 성장했어. 하지만 아직도 완벽하지 않아. 문제는 지금부터 하는 얘기야. 최초의 한국 모델 승용차 포니 가격이 300만원이었어. 45년 전에 말이야. 그 당시 학교 선생님 첫 봉급이 3만원이었어. 그러니까 처음 선생님으로 나간 사람의 100개월 치 월급이 포니 가격이니까 지금으로 따지면 2억 원이 넘는 가격이야. 왜 이렇게 비쌌냐하면, 바로 전 국민을 향해 사기를 친 거야. 가격 책정을 자기 맘대로 한 거지. 포니 수출 가격은 70만원 이었어. 국내에서 파는 가격의 4분의 1이었지. 사실상 현대자동차를 성공시킨 건 우리나라 국민 전체야. 우리 국민이 터무니 없는 가격으로 자동차를 사주고 속아주니까 세계적으로 큰 회사가 된 거야”


“옛날에 월급이 3만원이었어요?”


“그건 물가가 달랐으니 지금 3만원하고는 다르지. 지금은 우리 셋이 한 끼 식사를 해도 5만원을 쓰기도 하잖아. 그래서 서로 가치가 다른 3만원이야. 49년 전에 사람답게 살게 해달라고 자신 몸에 불을 붙여 죽은 사람이 있어. 일주일 후면 그 분이 돌아가신 날이야. 이름이 전태일인데 당시 23살에 불과했어. 대략 전태일이 죽은지 50년이라고 하자. 당시에 초보 옷만들기 보조는 월급이 3천원이었어”


“예?????”


“50년이 지나서 지금은 한달 내내 일하는 초보 보조는 150만원을 받아. 그럼 몇 배가 된 거지? 500배 커진 거야. 어때 월급 3천원이 150만원이 됐으니 어마어마하게 오른 거지! 이게 모두 속임수에 가까워. 50년 전 서울의 집값은 100만원이 안 됐어. 50만원에도 웬만한 집을 한 채 살 수 있었지. 50년이 지난 지금 서울 평균 집 값은 8억이야. 너희들이 사는 집은 10억은 할 거야. 선생님 아파트 값은 5억이야. 그냥 선생님 집값을 기준으로 하고 50년 전 집값을 크게 잡고 100만원이라고 할 때 몇 배가 오른 거지? 바로 500배야”


“우리집이 10억? 와 비싼데요....”


“이게 바로 ‘거위가 아프지 않게 털을 뽑기’라고 부르는 물가인상으로 노동자 속이기 정책이야. 내가 붙인 이름이 아니고 유명한 루이14세라는 위세가 대단한 프랑스 왕 밑에서 제2인자였던 콜베른이 한 말이야. 50년 전 전태일이 사람답게 살자고 분신자살을 하던 때, 전태일은 하루에 2시간을 걸어서 출근했어. 퇴근도 2시간이 걸렸지. 매일 우리가 걷는 거리를 전태일은 출퇴근을 위해 걸어다녔어. 왜 그랬을까..... 차비를 조금이라도 아끼려고 했던 거야. 그만큼 월급이 적었고, 밥이고 라면이고 배부르게 먹기 어려웠어. 무엇보다 하루에 일하는 시간이 12시간을 넘어 14시간, 심지어 16시간을 꼬박 일하는 경우도 있었어. 16시간을 일하면 집에 갈 수가 없었어. 일하던 자리에서 그대로 잠들었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곧바로 일해야 16시간을 일할 수 있어. 그건 사람이 산다고 할 수 없었지. 지금도 16시간을 일하는 노동자가 있어. 선생님 가까운 친척이라 잘 알고 있지. 그건 사람을 기계로 생각하는 거잖아.  기계가 망가지면 교체하듯이 노동자가 건강을 해치면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고 잘라버리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어. 월급을 올려주는 것보다 진짜 중요한 건 이런 차별을 없애는 거잖아. 사람은 누구나 귀하다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래서 차별이 없어지거나 최소한 조금씩 줄어들어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못한 거야. 월급을 올려준 다음 물가, 가장 중요한 집값과 땅값을 올려버리면 50년 전 3000원의 월급으로 버스도 맘껏 타지 못했던 것과 다를 게 없는 거지. 선생님은 그런 세상이 바뀌어서 사람들을 귀하게 생각하고 대접해주기를 바라고 있어. 그런데 왜 50년 동안 차별 문제에 변화가 없었을까?”


“왜죠?”


“자기 욕심을 채우는 게 좋은 사람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이지. 욕심 대신 욕망이라고 말하기도 해.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건 우리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고 가르친 거야. 크게 틀린 말은 아니야. 욕심이 있어야 무엇이든 이루려고 노력한다고 할 수 있어. 다만 욕심이니 욕망이니 하는 말들을 잘못 아는 거야. 오해하거나 착각하게 된 거지. 가족에게 친구에게 옆 집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되려는 욕심과 욕망이어야 하는데, 남들보다 더 비싸고 좋은 물건을 가지는 게 욕망이라고 착각하게 만든 거야. 정부가 그랬고, 기업이 그랬고, TV가 그랬어. 비싸지만 남들보다 먼저 더 많이 가지라고 부채질하면 기업은 물건을 더 잘 팔 수 있으니까 좋은 거지. 덕분인지 때문인지 너희도 남들은 없지만 나에게만 있는 물건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잖아. 그게 지나쳐서 남들에게 결례를 범해도 언제나 떳떳하잖아.  선생님이 그런 점을 늘 잔소리 하는 건 내 맘대로 욕심을 부리는 걸 부끄러워 하지 않으면 세상은 총 없는 전쟁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까미노 곳곳에 보이는 “PAZ”가 바로 피스, 평화야. 우리의 나라 한국은 이제 잘 사는 나라가 분명해. 선생님도 물론 한국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지만 더이상 권력을 가진 사람이 국민을 속이면 안돼. 아직 옛날 생각만 하면서 여전히 속이는 사람들이 있어. 아주 많아. 고쳐야 할 점이지”


//


그러나…..


거의 같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계기가 자연스럽게 생겼지만, 이번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과 궁합이 맞지 않는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게 거위털 뽑기> <전태일> <평화> <상품구매> 보다 더 급한 게 있다. 음 그게 뭐냐면….


오늘 도심을 관통해서 느릿느릿(공원을 만나면 놀다가, bar를 만나면 오렌지주스라도 사먹으면서) 10km 걸었는데….

브런치 글 이미지 2


브런치 글 이미지 3


아, 먼저 해야할 얘기가 있다. 그제 피레네를 넘을 때 작은아이를 유튜버로 설정해서 촬영놀이하며(달래며) 지나갔고, 어제는 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하길래, 상상으로 집을 지으며 걸었다. 버스를 개조한 집을 작은아이와 걷는 내내(3시간은 집을 지었다) 상상으로 디자인하며 걸으니까 힘든 시간이 지나갔다.


중고버스를 사서 시트는 앞 세 줄만 남기고(탑승객을 위한 자리) 침대도 놓고 싱크대도 놓고 컴퓨터 자리도 따로 마련하고 강아지를 위한 자리도 만들고 대형TV와 인공위성 인터넷 수신기…. 그러다가 상상이 달나라로 가서 트랜스퍼머처럼 변신도 하고 최첨단 방어시스템도 마련하고, 미사일도 장착한 버스가 나왔다.


이 버스를 자신이 다니던 학교 운동장에 두겠다는 거다.


”친구들이 네 버스를 엄청 부러워할 거야. 아이들이 교실에 안 가고 네 버스에서만 지내려고 하면 어쩌지?“


”교실에서 선생님 수업 열심히 들으면 오후에 내가 초대할게. 그러니 일단 교실에 가거라…. 이렇게 말할 거예요“


”아예 선생님이 네 버스에서 수업을 해도 좋지 않을까“


”그럼 좋겠어요“


”그렇다면 수업을 위한 칠판과 시청각 장치를 버스에 마련해야겠군“


”그런데 진짜로 학교 운동장에 제 버스를 주차할 수 있을까요? 교장 선생님이 허락하실려나….“


”음 그건 좀 곤란할 수 있겠다. 어디 넓고 자유로운 장소가 필요한데….“


”아 그럼 우리 시골 할머니 집 마당이 아주 넓으니 거기로 가야겠어요“


이런 얘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건 어제 상황이고….


오늘 아침부터 나는 예상이 됐다.


아주 힘든 하루가 될 것임을.


희한하게도 아이들은 하루 컨디션이 좋으면 다음날 이쁘지 않은 행동을 한다.(왜 그럴까?)


어제와 그제 아이들에게는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피레네를 넘고 또 오르락내리락하며 20km 이상을 걸었기 때문. 그래서 오늘 10km만 걸으면서 컨디션 조절을 하려고 한 것인데….


어제 작은아이와 긴 상상의 시간을 가진 것이 부작용을 가져왔다. 큰아이의 소외로.


큰아이의 불안감이 커졌다. 스페인 이후 귀국해도 자기와 헤어지는 일은 없게 해달라는 <부탁>을 딱 일곱 번한다.


작은아이가 지시를 거꾸로 수행하고, 먹는 것도 거부하고, 급기야 레고 가게로 들어가서 따라오는 걸 거부하길래 50미터 떨어진 벤치에 앉아 기다리는데, 아이는 우리가 없어진 줄 알고(우리는 아이가 가게에서 레고에 정신이 팔린 줄 알고 나오기만 기다렸다) 울고 불고->현지인이 동양인 미아를 위해 경찰을 불렀고, 출동한 경찰이 아이와 대화하는 장면이 보여서 내가 달려가니까, 아이는 대성통곡->경찰은 내 신분 확인->현지인 아줌마의 호통(아이 잘 데리고 다녀욧)->나는 굽신굽신->큰아이의 작은아이에게 잔소리->내가 짜증스럽게 큰아이를 제지->큰아이의 삐침….뭐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 


나는 똑같이 예상했다. 정말 예상대로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경험으로 예상을 막을 수 없다고 봤다. 그래서 일단 경찰과 엮이는 일이 벌어졌고, 별일 없이 지나갔기 때문에 안심할 수 있었다. 아이가 좀 놀랐지만 경찰 사건 이후로 숨지 않고 잘 따라오니까.


이제 스페인이 익숙한 듯 가게마다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 1유로를 들고 50센트 내외의 어린이용 미끼 상품(한국도 그런 거 있잖은가. 허접한 장난감과 열악한 간식류)을 사서 정확하게 거스름돈을 받는다. 요 장면만 딱 떼어놓고 보면 기특하긴 한데…..


내가 속상해서 말했다.


“이렇게는 못 살아. 너하고 살다가 수명 단축되겠다. 그만 헤어져야 해!”


오늘 무거운 배낭을 매고 이리뛰고 저리뛰다 보니 내가 실수를 한 거다. 


“그럼 우리 아빠 엄마랑 살면 되나요?”


작은아이는 오히려 얼굴이 환해진다.


이후로 큰아이의 불안이 커졌다. 작은아이 집에 복귀하면 자기도 집으로 가야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기는 계속 여주에서 살겠으니 받아들이라고 하루종일 채근한다. 물론 매번 <걱정말아라> 대답했고.


가정집의 고정된 생활 패턴이 아닌 여행지에서 아이들의 깊은 내면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부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다니면 부모도 아이의 모르는 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여행의 부수적 성과다.


내가 매일 일기를 쓰는 이유는,


우선 아이들 부모에게 보내는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서다. 대외적으로 일기쓰기를 선언하면 의무감으로 성실하게 작성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슷한 처지에 있는 부모나 양육/보육/교육 담당자들이 보고 참고하라는 의미도 있다. 잘 하든 못 하든 소중한 기록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이들의 상황에 대해 오해하면 곤란하다. 내가 어떻게 기술(description)하든 아이들은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특히 모든 아이들은 멋진 시민으로 자라야 한다. 지금의  두 아이도 마찬가지다.


독자들의 마음의 응원을 바란다.


이번 기회에 아이들을 믿고 맡겨준 부모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전한다.


너무 많은 사연과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앞으로 계속 이어가 보겠다. 나 자신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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