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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소여물의 반대말

2023.5.5(금)

by 박달나무

아침엔 10도…. 바람까지 불어서 좀 쌀쌀


조금 걸으면 볕이 강렬하여 웃옷을 벗게된다.


(*이솝우화의 바람과 태양의 나그네 옷벗기기 경쟁은 정말 탁월한 스토리 아니겠는가!)


스페인의 <솔(Sol; 태양)의 나라> 별명이 괜히 만들어진게 아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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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가 맥락 없이 불쑥 큰아이가 하는 말,


“선생님…. ‘외소여물’의 반대말이 뭔지 아세요?” (녹취를 그대로 풀면 “외소여물의 ….알아?”)


“그게 뭔 말인지 알아야 반대말도 알지. 난 처음 듣는 말이야”


“’외소여물‘의 반대말은 ’내로남불‘이에요”


“내로남불은 알겠는데, ’외소여물‘이 뭐지?”


“’내‘의 반대말 ’외‘, ’로‘의 반대말 ‘소’, ‘남’의 반대말 ‘여’, ‘불’의 반대말 ‘물’….그러니까 ‘외소여물’”


“뭐…..우하하하. 역시 너답네”


큰아이는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나보다. 그러다가 내로남불이 생각났을 거고, 반대말을 스스로 작성한 것이리라. 어쨌든 생각이란 걸 하면서 걷는다는 걸 알았다.


얘기하다보니 내로남불이 어떤 뜻으로 만들어진 말이고, 로맨스와 불륜의 차이에 대해 말하게 됐다. 아이가 이해한다고 대답한다. “키스를 글로 배웠어요”와 비슷한 느낌이다.


난 어릴 때부터 말과 글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초2부터 중2까지 소년동아일보를 매일 정독한 덕에 어휘도 많이 알고, 활달한 성격으로 남 앞에서 말하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 들고, 아이들 가르친 경험이 쌓이다보니 언어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유발 하라리가 곡물이 인류를 길들였다고 한 말은 아마도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얻은 아이디어일 것이다.


스페인 드넓은 밭에서 자라는 밀과 유채, 감자 등을 보니, 곡물의 입장에서 얼마나 꽃놀이패일 것인가 느껴진다.


사람들은 정성껏 곡물이 자라기 좋은 땅으로 일구고, 종자를 심고, 양분을 주고, 잠시도 곁을 떠나지 못하고 곡물의 자식들을 귀하게 받아서 다음해 번식을 위해 최선을 다하니 말이다. 덕분에 사람들은 마을을 이루고 먼 길을 떠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나도 두 아이를 교육/양육한다는 미명하에 아이들에게 길들여지고 있다는 현타가 온다.


아이들이 겪는 모든 생활상의 어려움을 내가 타개해주고 고생은 일도 없게 보살펴주니 아이들은 얼마나 편리한가. 뭐든 요구하면 다 해결되니 말이다.


이게 맞나 싶다…..




작은아이도 재밌지만 엉뚱한 말을 한다.


자기는 오리를 무척 사랑하고, 한국에 돌아가면 오리를 키우고 싶단다.


오리에게 총을 주고 무장을 시켜서 북한군을 물리치도록 하겠단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는 점은,


아니 이런 이야기는 70년 대 스토리잖아. 아니 한국전쟁 직후 5,60년 대 이야기다.


21세기로 넘어온지 20년 이상이 지났는데, 아이는 어디서 들은 얘기를 재탕하고 있나.


레드 컴플랙스 교육은 수명이 길기도 하구나.


“왜 오리가 북한군을 무찔러야 하지? 오리에게 조국이 있니?”


“오리가 남한에서 태어나서 남한을 위해 싸우는 거예요”


“그렇구나, 오리가 북한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구나”


아이고 참나,,,,,



앱으로는 숙소 예약이 불가였으나,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


오늘 13km만 걷고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 마을에 도착했다.


아주 작은 마을이라 숙소가 부족하다.


그런데 이 마을에 3성급 호텔 Anton Abad가 있다. 호텔은 비싸지만 이 호텔이 별도로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다. 사람들이 호텔만 알고 알베르게가 따로 있는 걸 거의 모른다.


내가 2019년에 묵었기에 알고 있었다.


역시 빈 침대 4개를 구할 수 있었다.


이곳은 청결하고 짜임새 있는 알베르게인 덕에 가격은 조금 비싸다. 일인 15유로. 2019년에는 10유로였는데…..


그래도 크게 걱정했는데 쉽게 숙소가 해결돼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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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정상”증후군>이란 사회적 관심사에 대한 집착, 우월하다는 망상, 관습에 따라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생물학적 질환이다. 완치 방법은 없다."
-신경정상인연구소 사이트Q&A에 있는 글



위 글은 자폐인 사이트에 올라온 것이다.


비자폐인을 <신경정상증후군>이라 명명하며 조롱하듯 표현한 것이다.


위 글을 패러디해서 표현하자면,


친구가 많아야 한다는 집착, 상대적으로 우월한 대학에 가야한다는 망상, 어른이 되면 가족을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특징으로 하는 집단이 나를 비롯한 우리가 아닐까.


우리 아이들은 타인을 공격하고, 타인의 이득을 빼앗아 자기의 이득으로 돌리고, (남을 비난…..하기도 하는구나-이건 빼자^^) 독점적 이득을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과연 누가 사회적으로 해악이 되는가. 적어도 우리 아이들은 사회의 지속적 유지를 위해 방해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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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5월1일 올린 포스팅에 소개한 로완의 이야기(호스보이)에서 로완의 부모가 캠브리지 대학의 사이먼 배런 코헨 박사를 찾아간 이야기가 나온다. 코헨 박사는 자폐가 하나의 개성으로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라 말했다.


사실 코헨 박사의 견해는 혁명적 발상이다. 자폐를 하나의 개성으로 본다면, 우리 아이들의 개성은 정말 특별히 거론할 일이 전혀 아니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사용한 <사회성>이란 말에 대해 전혀 다른 설명을 내놓아야 한다. 이건 기존 인류학을 내다버리는 결과다. 휴먼비잉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시각이다.


나는 혁명적 발상을 적극 지지한다.


혁명적 발상이 일반적 개념이 될 때, 우리 아이들이 굳이 나랑 사는 일은 해소된다.


우리 아이들이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건 당연한 미션이지만, 미션 성공을 위한 노력이 우리 아이들만의 노력으로 치부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부도덕하다. 지금 우리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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