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5.6(토)
아타푸에르까에 오니, 반가운 마음이다.
4년 전 여기를 지나며 찍어야 할 사진을 찍지 못해 영 마음이 불편했었다.
드디어 찍었다. 그때 찍지 못한 그림.(중세 전투 장면을 그린 그림)
당시 늦은 시간까지 손가락만으로 썼던 일기를 불러오지 않을 수 없다.(이때 아이들이 작은아이와 같은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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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졸려서 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나 이어가야겠다.
아타푸에르까는 11세기에 나바라 왕국(지금의 바스크 지역) 쳐들어와서 전투를 벌인 무대다. 아타푸에르까 직전 아헤스(Ages)에 나바라 왕국 가르시아 왕의 무덤 유적이 있다. 11세기는 천년 왕국 나바라의 최전성기였다. 카스티야 왕국의 드넓은 평야를 원했지만 왕이 적진에서 죽는 결과를 낳았다. 승패와 관계 없이 아타푸에르까는 역사 이벤트로 매년 전투를 재현하는 행사를 벌인다고 한다.
알베르게 건너 편 건물 벽에 당시 전투 장면이 벽화로 그려져있다. 말을 탄 기병이 눈을 부릅뜨고 칼을 휘두르며 앞으로 내달리는 그림이다. 시하가 그림을 보더니 물었다.
“선생님, 저 그림은 런던으로 쳐들어가는 장면인가요?”
처음에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런던?
그림 속 기병은 런던 버킹엄궁 수문장이 쓸 법한 원통 모양의 검은 털모자를 쓰고 있었다. 모자를 보고 런던을 상상한 것이다. 런던을 생각하니 런던으로 쳐들어가는 전투로 이어진 것이고.... 추론이 단순하고 직관적이지만 배경지식을 최대한 동원한 놀라운 질문이다. 제자의 기특한 질문에 정성껏 대답하는 건 선생의 의무인지라~^^
“모자가 국적불명, 시대불명인데 천년 전 이 지역에서 일어난 전투 장면이야. 런던은 알다시피 영국의 제일 큰 도시니까 관련 없어. 아마도 옛날 군인 모자에 대한 고증이 있었나보지. 천년 전에 스페인은 없어. 스페인이라는 나라가 없었다는 거지. 대신 지금 스페인 땅은 여러 나라가 차지하고 있었지. 프랑스, 독일, 이태리 이런 나라들도 200년 전만 해도 지금의 나라 이름은 아니었지.”
“네~ 그런데 군인이 들고 있는 칼 끝이 왜 휘어져있나요?”
“알라딘 영화에 나오는 군인들의 칼하고 비슷하지 않니? 페르시아의 전통 칼은 반달처럼 휘어있지. 그런 칼을 ‘삼쉬르’라고 해. 사자의 꼬리라는 뜻이야. 영어로는 흔히 시미터라고 불러. 그리고 사브레(sabre)의 원조인 거지. 영어에서 세이버(saber)라고 부르는. 보통 스워드(sword)는 직검을 말해. 삼쉬르는 곡도의 대표적인 이름이지. 더 복잡한 분류가 있지만 반달처럼 휘어진 칼이 곡도고, 페르시아의 삼쉬르가 원조라고 알면 된다.”
“직검은 뭐고 곡도는 뭐예요.”
태호가 끼어든다.
“‘검’과 ‘도’ 모두 칼을 나타내는 한자말이지. 검은 영어 스워드, 도는 세이버 또는 나이프에 해당한다고 보면 돼. 검에는 이미 길고 똑바른 직선이, 도는 짧고 굽은 곡선의 모양을 나타내는 거야. 칼 도자 알지. 글자 모양을 생각해봐.”
“그런데 왜 칼을 둥글게 만들죠?”
“전투용 삼쉬르에는 과학이 숨어있어. 칼을 휘둘러 적을 베려면 직검보다는 곡도가 더 유리해. 직검은 멀리 있는 적을 빨리 찌르기 위한 칼이고 곡도는 가까이서 백병전을 치를 때 베기용으로 사용하는 칼이야. 한걸음 앞에 있는 적을 찌르는 건 아주 어색하지. 칼을 휘둘러 베는 동작이 훨씬 유리한 거야. 그런데 칼이 반달처럼 휘면 칼끝이 원운동을 할 때 직검보다 조금이라도 나중에 적의 몸뚱아리와 부딪히기 때문에 더 큰 파워를 얻을 수 있어. 야구 배트를 휘두르거나 골프채로 골프공을 때릴 때도 이런 원리가 작용해.”
“뭔 말인가요? 하나도 모르겠어요.”
“ㅋㅋ 하나도 모르지만 열심히 들은 걸로 성공한 거다. 일단 두 가지를 알았지. 까미노 함께 걸은 박샘은 만물박사다. 또 하나는 칼이 굽은 건 페르시아가 원조고 베기에 좋게 만든 것이다. 옛날 스페인 사람들은 아랍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거.... 그리고 더 추가하면 알아야 할 것이 참으로 많구나하는 거.... 무엇보다 너희들이 선생님 말을 일단 들었다는 게 훌륭한 거다. 귀를 기울인 게 아주 훌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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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닥터가 자폐 판정의 세 가지 조건으로 반복(repetition) 과도한 규칙성(ritual) 과도한 집착(fixation) 세 가지를 말한다.
이게 정도의 차이에 따른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라 애매한 일이다.(사이코테라피 분야가 문학적 표현에 기댄다)
우리는 반복하기 위해 스페인에 왔다. 반복적으로 오른발과 왼발을 앞으로 내밀며 내 다리로 내 몸을 이동시키는 반복 행위. (물론 정신과 닥터의 ‘반복’은 무의미한 행동의 반복을 말한다)
일상의 규칙성은 칭송되는 일이다. 스페인 출신 라파엘 나달의 코트에서 절대 깨지 않는 규칙성은 테니스 선수들이 일부러 따라하기도 한다.
집착…. 이게 오늘의 토픽인데….
obsession이 아닌 fixation으로서 집착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 취향의 성격이라면, 오티즘에서 픽세이션은 분노표현과 연결되면서 주위 사람들을 괴롭힌다.
어쨌든 현장에서 아이들과 뒹구르지 않고 (주로 영어를 써서) 개념정의할 때 오해와 오류가 생긴다.
대표적인 게 <발달> <adhd> <정서> <지능> <사회성> 등이다.
나는 이론서에 나오는 구사하는 낱말들이 “말장난”으로 느껴진다. 하나의 낱말이 하나의 개념을 낳는데, 사람의 행동은 특정한 개념에 갇히지 않는다. 오죽하면 저들도 <스펙트럼> 용어를 동원했겠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큰아이는 애착인형에 집착을 보이고, 작은아이는 자동차(특히 버스) 모형 장난감에 집착한다.
집착의 강도가 아슬아슬하게 경계선을 넘나든다. 아이를 책임지는 가디언으로서 무척 스트레스 받는 일이다. 집착하는 물건을 소유하지 못할 때 아이의 감정표현이 과다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오늘따라 심하게 괴로운 건지 드론으로 촬영하듯 시좌를 높여서 나 자신을 내려다본다.
아이가 지시에 따르지 않고 내 의도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에 분노하는 나 자신은 정당한가…. 아이의 입장으로 바꾸어보면, 선생은 일방적으로 강제하고 제멋대로 감정표현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계급장 떼면 누가 누구를 비판할 수 있는가.
결국 모든 사달은 정해진 시간 안에 특정 장소로 이동해야하는 미션이 가디언인 나에게만 주어진 것이고, 아이들에게는 미션의 의무가 없다는데 기인했다.
참참참… 산티아고까지 아니 갈수도 없고…
바람은 없고(어제 바람이 좀 쎘다)구름이 끼어 걷기에 좋았다. 21km 걸었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섞인 숲길을 주로 걸었다.
우리 아이들은 까미노의 유명인이 되었다. 외국인도 우리를 어디어디서 봤다면서 아는 척 하고, 한국인 순례꾼들은 칭찬의 말과, 심지어 돈까지 준다. 예쁘다고 말이다(거절하기에도 어색해서, 작은아이 5유로 획득)
부디 스페인 걷기가 아이들에게 긍정의 기억으로 남기를….
걷기 자체의 속도는 우리 아이들은 성인 속도에 뒤처지지 않는다. 가디언 선생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