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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규 Sep 27. 2023

누구나 시간을 보내는 각자의 방법이 있다

2023.5.16(화)

한참을 걷다가 점심을 먹을 바르로 들어섰다. 그 집 말고는 먹을 집이 없어서 손님이 붐비는 편이다.


바르 바로 옆에 농기구 및 공구를 파는 큰 가게가 있다. 작은아이는 자석에 끌리는 철가루 같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나와 큰아이는 바르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아이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식탁으로 와서는


“선생님. 내 맘에 꼭 드는 걸 발견했어요. 한 6백 만원 정도하는데, 나에게 꼭 알맞은 자동차예요. 내가 운전할 자신이 있어요. 그거 사주세요“


”응 사줄게. 자동차라고? 6백 만원이면 저렴한 편이구나. 니가 운전할 수 있다면 사줄게“


”돈은 있나요?“


”지금은 30만원 정도만 있지“


”그럼 카드로 돈을 찾으면 되겠네“


”응 걱정마. 6백 만원 찾아서 사줄테니“


”나는 거절할 줄 알았는데, 정말 좋아요“


”다만 네가 운전할 수 있을 때 사준다는 거야“


”물론이죠. 제가 운전할 수 있는 그런 자동차예요. 까미노 가다가 힘들면 아빠도 태우고 엄마도 태우고 형도 태우고 선생님도 태우고…. 아, 너무 좋다“


”알았으니 밥 먹고 나가서 확인해보자“


”지금 먼저 확인하면 안 될까요?“


”그래…. 그럼 지금 나가서 확인해보자“


공구상에 아이랑 갔다.


보니 운전자가 올라타서 핸들을 잡고 조정하는 잔디깎이였다. 생긴 게 꼭 붕붕카를 확대해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거 잔디깎이 차량이야. 가격은 2600 유로니까 380만원 정도구나. 길에서 타고 다닐 수 없는 기계야“


”아니 그런 게 어딨어요. 잔디깎이라도 길에서 움직일 수 있지 않나요?“


”더구나 어린이가 운전할 수 없다고 써있어“


”어흐흑… 그럴 일이 없을 텐데. 저기 아저씨에게 확인해보세요“


”확인해보나마나야. 어린이가 엔진 기계를 사용할 수는 없는 법이야“


”그래도 꼭 물어봐 주세요”


“올라. (손가락으로 지목하며)엘니뇨 부릉부릉 오케이?”


“(웃으며, 단호하게) 노”


“한번더. 니뇨 부릉부릉 OK?”


“노, 노”


“봤지. 어린이는 운전할 수 없다고 하잖아”


“그럼 골프카트라도 사주세요. 나는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구요. 무릎이 썪은 것 같아요”


“골프카트도 어린이는 운전할 수 없단다”


하지만 작은아이는 물러설 기미가 없다. 마침 사무실에서 여자 직원이 나와서 작은아이를 환대한다.


대강 상황을 듣더니, 파안대소. 아이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한다. 그리고 아이를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이때다 싶어 나는 바르로 복귀….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데 작은아이가 공구상 브랜드가 박힌 모자를 들고 왔다.


“이거 먹자”


“안 먹어요”


“먹어야 걸을 수 있단다”


“이미 무릎이 썪어서 걸을 수 없다구요”


“먹어야 무릎도 회복되는 거야”


“으허허엉…. 나에게만 되는 일이 없어!! 으아악~”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탄식하지만, 다행히 워낙 바르 안이 왁자지껄이라 아이의 비명이 특별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렇게 총 1시간 정도의 퍼포먼스가 끝났다.


한 일주일 전 일기에 해남 대흥사 스님의 “삶이란 시간죽이기”라는 지론을 소개하고 동의한다고 말했는데…..


작은아이는 1시간의 <시간죽이기>를 <꼬마자동차 사주세요> 퍼포먼스로 완성했다.


나는 지금 일기쓰기 퍼포먼스로 시간을 죽이고 있다.


누구나 시간죽이기의 퍼포먼스가 있다. 어떤 퍼포먼스든 <시간죽이기>로 수렴된다.




아이나 어른이나, 여자나 남자나, 이재용이나 윤석열이나, 일론 머스크나 만수르나, 나나 작은아이나, 물론 큰아이도 잠들지 않았을 때 어떤 식이든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수행한다. 


모두 시간죽이기이며, 드론을 높이 띄워 내려보면 똑같은 의미와 가치가 있다.


<시간죽이기>이니까.



이번주 금요일에 작은아이 부모님이 여기로 와서 일주일 걷고 함께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는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하루하루 금요일이 다가오자 작은아이의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자꾸 엄마아빠가 도착하는 마을 이름, 시간을 물어본다. 하루에도 대여섯 번을 묻고 확인한다. 너무 좋고 기다려진다고 말한다.


확신할 순 없지만 나는 의심이 든다. 진정으로 기다리고 기대하는지. 혹시 부담스럽고 피하고 싶은 퍼포먼스는 아닌지.


너무 좋고 기다려진다는데, 그 누구도 속마음을 알 수는 없다.


요즘 아이가 자주 운다.

순례꾼를 축복하는 메시지


알 수 없고, 거의 알지 못하고 죽는다. 


인간은 죽는 그날까지 열심히 <시간죽이기>를 해야 하는 운명이다.


우주에 시간이 탄생한 의미가 그렇다.  



오늘 문득 작은아이보다 큰아이가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작은아이는 오래 실랑이라도 하는데,


큰아이는 대화의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지 않으면 대화 국면에서 나가버린다. 주도권이 자신에게 있다면 신나서 엔드리스 수다를 떠는데…..



5년 전 오늘도 스페인 까미노 비슷한 코스를 걷고 있었고, 당시 페북 일기에 “이제 늙었으니 아이들 만나는 일은 그만둬야 한다”라고 썼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겠느냐 말이다. 


내 좋아서 계속 하는 일인데!

이렇게 도로와 나란히 걸으면 빨리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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