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날 강원도 홍천군 동면 구 내천초등학교
춘천 별빛산골교육센터를 떠나 백담계곡으로 이동했다. 지나가는 길에 올 초 폐교된 초등학교가 있어서 학교를 한 바퀴 둘러봤다.
별빛산골교육센터는 94~95년 이태 동안 근무한 오탄초의 옆 동네다. 별빛은 고탄리, 내가 근무했던 곳은 오탄리.... 오래전 폐교돼서 무슨 교육센터로 임대인이 운영하고 있다던데.... 매일 동네 사람들과 미팅했던 점방의 아줌마, 아저씨, 교문 바로 앞에 사는 기영 아빠(갓난쟁이였던 기영이가 지금은.... 그러니까 24살이겠네) 당시 학교 관사에서 살았던 이 기사님 부부와 다섯 딸들, 모두 그리웠지만 눈물 날까 봐/만나서 쉽게 헤어지지 못할 게 뻔해서 가지 않았다.
시골, 그것도 강원도의 폐교된 초등학교를 보면 내 30대 청춘이 되살아난다. 사진의 학교도 같은 감정이 일어났지만, 거기까지.
운동장에서 교사를 바라보고 왼쪽에 있는 어린이상이 이승복 동상이다.(물론 동상은 아니고 시멘트像인데 검붉은 페인트를 칠해서 동상처럼 보이게 한 것) 이승복 동상을 만나니 전혀 새로운 감정이 올라온다. 여기가 올 2월까지는 학교(분교장)로 운영된 곳이다. 이승복 동상이 철거되지 않고 학교 화단에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은 상징성이 있다. 그것도 강렬한 상징이다.
59년 생인 이승복은 평창군 진부의 산골짜기에서 배고파서 썩은 감자 나락을 주워 먹던 당시 심산유곡의 평범한 아이였다. 68년 <삼척 울진 무장공비침투사건>으로 죽임을 당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쳤다는 조선일보의 보도를 계기로 반공 영웅으로 재탄생했다. 70년 대 학교마다 이승복 시멘트像을 세웠다. 90년 대 이후 도시에서는 모두 사라진 이승복이 강원도 학교에서는(강원도도 도시지역은 이승복 像이 없어졌다) 아직도 서있다. 보존을 위해서는 2년에 한 번씩은 새롭게 도색도 한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이승복을 키워드로 마인드맵을 만든다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언론 교육 출판 집회 환경 건축 토목 전방위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 이승복이 운동장 화단에 서있다.
그 장소가 소외된 외진 지역이라는 것이 더욱 강렬한 상징이다.
*이승복 이야기는 5차 교육과정까지 교과서에 나온다. 1998년부터 이승복은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다.
(2017.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