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째 날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사 입구
우리는 백담사 입구에 있는 펜션에서 머물고 있다. 한 아이의 외할머니가 운영하는 펜션이다. 할머니가 마흔 이후에 건강문제로 산을 타다가 결국 산에 "미쳐서"(할머니 본인의 표현) 10년 전에 이곳에 집을 짓고 펜션사업을 하고 있다고.... 백담마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집이다.
아이들의 반응이 (모르진 않았지만) 새삼스럽다. 아이들은 만 9세
남자아이들이며 말과 행동의 제어가 느슨한 편이다. 이런 것이다. (모두 아이들 발언)
"와~ 여기가 ○○네 할머니 집이라고요? ○○네 할머니 부자구나"...
"선생님, ○○네 할머니는 부잔가요?"
"○○네 할머니는 돈이 얼마나 있나요?"
"이 집은 ○○가 물려받나요?"
"우리 중에서 누구 집이 가장 부잔가요?"
"☆☆네 아빠는 돈이 얼마 있나요?"
"☆☆네 엄마는 돈이 얼마 있나요?"
"우리 아빠는 돈이 얼마 있나요?"
"우리 엄마는 돈이 얼마 있나요?"
"나는 돈이 얼마 있는지 알아맞혀 보세요."
5~6년 전에 중학교 2학년인데 단재학교(중등대안학교)에 잠시 머물렀던 학생이 있었다. 부모는 모두 중등교사이고, 아빠는 모 대안학교의 교감 역할도 맡고 있었다. (공동체학교라서 현직 교사이면서 봉사차원에서 대안학교 교감 역할도 병행했다)
이 학생이 말하길,
"우리 아빠는 충청도 시골 출신인데 할아버지 재산이 별로 없어요. 더구나 아빠는 형제가 많고요. 기대할 게 전혀 없어요. 그런데 엄마는 무남독녀 외동딸에다가 외할아버지가 땅부자예요. 그 땅이 어디로 가겠어요. 결국 나에게 오겠죠. 외할아버지는 제가 21살이 되면 찾을 수 있는 2억 원 펀드에 가입하셨어요. 성인이 되는 제게 주시려고 미리 선물을 준비하신 거죠. 저는 2억 원으로 PC방을 차리려고 해요. 돈을 착실하게 모아서 전국에서 가장 럭셔리한 PC방을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PC방을 자주 가는 건 꿈을 이루기 위한 준비작업인데 엄마는 그걸 몰라줘요. 대학을 갈 생각이 전혀 없는데 왜 저보고 공부하라고 잔소리하고 과외선생을 붙여주는지 모르겠어요."
개그 프로그램에서 "내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건 다 아빠 때문이야"라고 외치는 내용이 있다. 자기 꿈이 건물주가 되는 건데 아빠가 빌딩을 사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거라고....
개그가 완전 현실이다. 나는 직접 들었다. 내게 와서 2년 반을 공부한 중학생 녀석이 하는 얘기를.
"우리 아빠가 하두 골프에 미쳐서 할아버지가 건물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했대요. 더구나 이 인간(자기 아버지를 지칭)이 룸살롱도 자주 다녀요. 거기다 뿌리는 돈도 엄청나다고요. 내 인생은 뭔가요. 우리 아빠 땜에 난 망했어요. 정말 난 재수 없는 집에 태어난 죄 밖에 없다구요."
당시 받은 충격으로 5년은 감수했을 거란 판단이다. 쇼킹 중 쇼킹이었다. 하지만 중학생의 돈타령은 이제 초등 3~4학년에서 나온다. 초등 1학년 아이도 사는 아파트 평수 따진다. 평수에 따른 서열을 지으려는 '수작'인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미 눈치챘겠지만 아이들의 언행은 어른을 그대로 미러링 한 것이다.
어른의 황금만능주의를 이어받은 아이를 교화시키는 방법은 학교에 없다. 교사에게도 없다. 타인의 인위적인 교정교화는 요즘 아이들에게 '사용 불가능'한 테크닉이다.
오늘 하루 100억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아이들과 백담사에 다녀왔다. 이 절은 얼마짜리냐고 묻지는 않았다. 다행이고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사진은 우리가 머무는 펜션의 내부 모습
(2017.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