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김 빠진 나이의 새로운 출발
갖고 싶어도 못갖는 것들이 있다.
돈이나 명예, 학벌, 굉장한 커리어 같은 것들이 떠오르겠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남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별로 어려운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어려워한다. 예를 들자면 쉽지 않은 부모와의 관계, 멀어지는 지인들, 뜻대로 되지 않는 습관,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 진로고민 같은 것들. 세상에 노출된 확연한 가치들은 다들 갖고 싶어하는 뻔한 것들이니 오히려 우리를 괴롭히는건 남들에게 이야기해봤자 ‘어쩔 수 없지, 신경쓰지마. 그냥 네 삶을 살아’라고 넘길만한 것들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게 결혼이었다. 작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요즘 세상에는 돈, 명예 같은 것보다 훨씬 중요도가 떨어지는, 사소함과 거대함의 중간 정도에 있는 애매한 그런 것.
연애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인기가 너무 없던 것도 아니었는데 결혼 앞에서는 번번이 가시가 돋았다. 이 사람의 이런 점이, 저 사람의 저런 점이 어쩐지 너무 이질적이고 감당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단 말이지. 까다롭다고 하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결혼을 하고 싶어했던 내 바람과 다르게 결혼적령기가 지나도록 결혼할 사람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간단하게 ‘찾지 못했다’라고 끝내기엔 그 사이에 있던 수많은 생각과 번뇌가 생략되었다는걸 알리고 싶다.
그렇다. 30대 중반이 지날 때까지, 나는 이 문제로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뜨거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면 모든게 식는 것처럼, 결혼 고민도 서서히 식고 나는 혼자의 삶을 준비하고 있었다. 고향의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여유롭게 살아가는 머리 희끗한 내 모습을 자주 떠올리곤 했다. 그런데 또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마흔을 앞둔 어느 해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결혼상대를 찾고 말았다. 그간의 호들갑과 고민과 번뇌를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나 담담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래서 어쩐지, 김이 좀 빠졌달까?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은 전부 순조로웠다. 둘 모두 큰 결혼식은 원하지 않았고, 부모님을 설득하는 일도 쉬웠다. 남들이 하는 화려하고 호사스러운 결혼식에는 처음부터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큰언니 말대로 ‘다 늙어서’하는 결혼이라 그런지 되도록 소박하게, 큰 품 들이지 않고 한다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았다. 그저 축하만 받는 그런 한 김 빠진 결혼. 그래서 편안했던, 우리에게 그 누구도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던 결혼이었다.
결혼의 모든 과정은 나의 의견이 90%이상 반영되었다. 성당에서 관면혼을 했고, 식은 제주에서 스몰웨딩으로 진행했다. 잔잔하고 행복했다. 힘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많은걸 생략한 결혼에는 내가 꼭 원하던 알맹이만 남았다. 딱 알맞은 비용, 지인들의 진심어린 축하, 우리의 특성을 한껏 살린 드레스와 식. 결혼할 때 많이들 싸운다는데 우리는 특별한 의견 충돌없이 본질에 충실한 결혼식을 했다. 그 과정에서 이런저런 검색과 후기들이 도움이 되었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위해 이야기를 남기기로 결심했다.
이 브런치북을 시작하게 된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