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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은 받지 않습니다

by 조여름

청첩장을 찍으며 남편에게 축의금을 받을거냐 물어보았다. 남편은 단호하게 받지 않는다 했고, 나 역시 가족 및 지인들과 오붓하게 식을 치를 예정이라 청첩장에 당당히 '축의금은 받지 않습니다'라고 넣어두었다. 동료들은 청첩장을 받자마자 '주차장이 넉넉하니 자차이용을 권장합니다'라는 문구와 '축의금을 받지 않는다'는 말을 언급하며 너무나 특이한 청첩장이라며 깔깔 웃었다.


남편의 회사 사람들이야 어차피 제주에서 오니 신경쓸 것 없었지만, 내 하객들은 모두 육지에서 긴 여정으로 오는 사람들이다. 아마도 하루나 이틀정도의 연차를 쓰고 비싼 숙소를 예약해 올텐데 그 사람들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대놓고 축의금은 받지 않는다고 공지하고, 렌트와 숙박에 보태쓰라고 소정의 비용을 전달해주었다. 지인들은 부담스러워했지만, 나의 진심어린 부탁에 고마워하며 받았다. 그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한것을 알고 있는 거다. 그래놓고는 아무래도 결혼선물을 해야 한다며 아주 비싼 선물을 주거나, 두둑한 축의금 봉투를 몰래 찔러놓고 가기도 했다. 나때문에 괜히 돈을 많이 쓰는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그렇게까지 주는 선물에는 또 어쩔 도리가 없어 고마움을 표했다.


스몰웨딩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축의금 문제는 또다른 고민으로 다가올 것 같다. 보통 축의금은 부모님이 뿌린 돈을 회수하는 성격이 강한데, 스몰웨딩을 해버리면 돈을 회수할 길이 없어져버리니까. 그럴때는 부모님이 계신 지역에서 작은 피로연을 여는 것도 방법이다. 어차피 결혼식에 모실 수 없으니, 가까운 곳에서 작게 잔치를 하는거다. 나도 고향에서 피로연을 할 생각이었지만 집안 사정이 생겨 하진 못했다. 하지만 남편은 회사 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겨(?) 피로연을 했고, 제주 문화상 피로연에 참석하는 것이 곧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찾아주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남편은 축의금을 받고 나는 받지 않은 꼴이 된 것이다.




축의금을 받지 않아 서운하다거나 할일은 없었다. 내 결혼소식을 들은 사람 중 내가 축의금을 주었던 이들은 내가 안 받겠다고 해도 알아서 축의금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회사 게시판에 알리지 않았기에 나와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축의금을 받을 일도 없었다. 내가 가장 원하는, 아주 깔끔한 결과였다.


보통 축의금으로 결혼식 비용을 충당한다고 하는데 나는 스몰웨딩을 했기 때문에 비용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오직 결혼식을 위해 들어간 비용은 모두 합해 800만원도 되지 않았다. 신혼여행도 가까운 도쿄로 간 탓에 300만원도 쓰지 못했으니, 결과적으로 우리의 결혼 비용은 기껏해야 1천만원 근처였다. 남편의 피로연은 그날 온 분들의 축의금으로 충분했고, 나 역시 이래저래 받은 비용으로 제주에 와준 분들의 체류비를 충당했으니 정말 순수하게 든 비용은 그게 다였다. 비싼 반지를 선호하지 않아 간결한 디자인으로 맞췄고, 웨딩사진은 어차피 식장에서 찍으니 다음에 제주에서 따로 스냅을 찍기로 합의했다. 예물이나 예단같은건 처음부터 고려하지 않았다. 집은 남편이 물려받은 주택도 있고, 어차피 나는 육지에서 회사를 다닐거라 당장 필요하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살면서 차근차근 갖춰나가는 형태의 결혼이었다.



우리가 맞춘 아주 값싼 결혼반지와 비슷한 디자인의 반지



양가 부모님의 간섭 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진행한 결혼식은 단촐하고 가벼웠다. 결혼박람회같은건 가보지도 않았다. 바가지를 쓸까 걱정한 적도 있었지만, 모든걸 내려놓으면 그럴일도 없다. 결혼을 준비하며 많이 싸운다는데, 우리는 의견차도 없었고 싸울일도 없었다. 지인도 친척도 아닌 아주 엉뚱한 곳에서 스트레스를 받긴했지만, 그건 남편도 나도 어찌 감당할 수 없는 압력(?)이었기에 그냥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생각해보면 나는 결혼식 이틀 전까지 귤밭에 가서 제초작업을 했다. 봄이라 한창 풀이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지체할 수 없었다. 얼굴이 다치면 어쩌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예초기를 돌렸던것 같다. 나는 이렇게 아주 편하게 결혼식을 했다. 비용은 적게 들었지만 꽤 흡족한, 내가 늘 꿈꾸던 결혼식을 했으니 불만은 없다. 원래 결혼이 이런게 아닐까? 모두에게 중요하고 특별한 행사긴 하지만, 당사자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는게 가장 우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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