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없는 일상은 행복할까?
‘한껏 흐트러져 살아본 한달’이라고 제목을 붙이기엔 평소에도 제멋대로 산 사람이지만, 내 나름대로는 ‘모두 내려놓았다’고 할만한 한달을 보냈기에 그 시간들을 기록하고자 한다. 퇴사하자마자 “자유다!”를 외친 나는, 질서 있는 휴식에 대한 계획을 세웠음에도 스스로를 느슨하게 풀어주며 꽤나 헤이해진 날들을 보냈다.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엽기떡볶이와 라면, 과자, 치킨따위를 끊임없이 먹고, 누워서 유튜브를 보거나 새벽까지 깨어 있었다. 5년 가까운 시간을 회사에 얽매여 살아온 나를 위한 뿌듯한 보상. 유익한 시간이라곤 중간중간 텃밭을 가꾸고 책을 읽고 강의를 듣는 정도였다. 하지만 두어달쯤 주려했던 ‘루틴없는 일상’을 지난 한달로 끝낼 작정이다. 이렇게 하면 안된다는걸 체감했기 때문이다.
‘온전한 휴식’이란 무엇일까? 퇴사를 앞두고 제대로 쉬기로 한 나는 이 질문을 진지하게 마주했다. 완전히 나를 풀어주는 일상? 혹은 최소한의 계획만 세우는 일상? 휴식에 관해서 이것저것 찾아보던 나는 휴식에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전문가의 말에 공감하며 해보고 싶었던 일들의 리스트를 세우고 이 것들을 차분하게 해 나가기로 계획했다. 하지만 이미 무의식속에는 ‘반드시 마음껏 놀고 말겠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었고, 최소한의 루틴도 무시한 나는 본능에 몸을 맡긴채 ‘도파민 가득한 일상’ 으로 방향을 틀고 있었다. 몸무게가 2kg쯤 늘어났고, 수면이 불규칙해졌다. 유튜브 숏폼과 인스타 피드없이는 시간을 보낼 수가 없었다. 절망했다. 자유와 방종을 헷갈린 결과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방종’을 검색하니 ‘제멋대로 행동하여 거리낌이 없음’이라고 나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예문들이 책임없는 자유가 바로 방종임을 이야기해 준다. 그 중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예문 하나. ‘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개인적 욕망에 따라 방종하게 되면 폐인이 될 수밖에 없다.’(출처:고려대 한국어대사전) 계속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겠다고 무의식적으로 흐트러짐을 선택했던 나는 이 예문과 딱 맞는 길로 가고 있었다. 최소한의 루틴도 없는 자유는 진정한 자유의 길이 아니라 폐인의 길임을, 머리로만 알던 나는 이제 경험으로 알게 됐다.
문란한(?) 식생활과 나태함으로 보상받고 싶어하던 내 안의 욕망에게 더 이상 힘을 싣지 않기로 했다. 휴대폰에서 유튜브와 인스타 앱을 지웠다. 최소한의 루틴이라도 지키기 위해 다시 다이어리에 계획을 세운다. 계획을 세우는 건 그 계획을 모두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일을 하다 중간중간 기지개를 켜는 것처럼, 내 상태를 점검하고 다시 나아갈 힘을 얻기 위해서다. 사람의 인생이란 끊이지 않는 집안청소처럼 참으로 번거로운 과정의 반복이지만, 또 그래서 재밌고 새롭다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