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읽음 표시 따위 없던 세상을 추억하며...

by 신지훈

내가 보낸 카톡에서 '1'이 사라지는 순간, 상대방이 내 메시지를 읽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다. 카톡만 그런 게 아니다. 메일, 문자, DM까지. 심지어 어떤 앱은 '지금 답장을 쓰고 있음'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한참 뭔가 적더니 돌아온 건 "ㅇㅋ" 두 글자. 그러면 사람 마음이 좀 이상해진다. 무슨 말을 쓰다 지웠을까? 무슨 고민이 있었을까? 친절도 지나치면 피곤하다. 이러다 서로 동의만 하면, 쓰고 지우는 문장도 실시간 중계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실시간 커뮤니케이션이 과연 관계에 도움이 될까?


요즘 시대를 굳이 '트렌드 코리아st'로 이름 붙이자면 '초(秒)회신 시대', 기다림과의 이별이라 할 만하다. 나는 기다릴 준비가 돼 있는데, 세상은 기다릴 시간을 주지 않는다. 한숨 돌릴 여유 없이 알림은 먼저 도착한다. 사람 마음이란 게, 잠깐의 공백에서 생각도 정리되고 감정도 가라앉는 법인데. 누군가는 이 즉시성을 디지털 시대의 축복이라 말하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속도는 조금 버겁다.


답장을 기다리는 건 분명 답답한 일이지만, 동시에 묘하게 설레는 일이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어릴 적 일본인 펜팔 친구, 마유미에게 영어로 편지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한 달쯤 지나 받은 답장을 들고 입꼬리를 올리던 십대의 나. 상대방이 내 편지를 받았는지조차 알 수 없던 그 시대는 지금과 비교하면 조금은 불편했지만, 그래서 더 설레었다. 이제는 그런 기다림을 겪을 기회조차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내가 정말 기다림을 좋아하냐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성격 급한 중년 남성일뿐이다. 편의점 계산대에서 앞사람이 조금만 더디면 속이 근질거리고, 회사에서 메일을 보냈는데 읽고도 묵묵부답이면, 금세 마음이 소용돌이친다. (짜증이 나는 건, 내가 갱년기여서가 아니다. 이게 그냥 인간의 본능이다. 아마도?) 다만 가끔은, 아주 가끔은 '조금은 느린 시대'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뿐이다. 돌아오지 않는 메시지를 애태우며 기다리던 그런 시절 말이다.




그런 내 바람을 정면으로 비웃듯, 내게 아주 적절한 '기다림'을 선사하는 이가 있다. "진짜로 기다림이 그립다고? 하하, 아닐걸?" 하고 말하듯이, 묵묵히 혹은 무심히 자기만의 속도로 나를 기다리게 만드는 존재. 그 이름도 사랑스러운, 내 딸 제이.


**응**


업무 중, 제이에게서 갑작스레 카톡이 하나 온다. 나는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응'이라니? 잘못 보낸 줄 알고 다시 확인해 보니, 이게 웬걸 3일 전에 보낸 내 톡에 대한 회신이다.


"밥 맛있게 먹고, 학원 잘 다녀와. 차 조심해."


그냥 평범한 안부 메시지였는데, 제이는 그걸 이제야 읽은 거다. 그러니까 사흘 넘게, 나와의 톡방에는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은 수시로 반복된다. 처음엔 일부러 그런 줄 알았다. '내가 꼭 아빠 톡을 바로 확인해야 할 이유는 없잖아' 같은 조용한 반항 말이다. 이건 사춘기의 신호인가, 친구가 더 중요한 나이가 된 걸까, 아니면 그냥 나를 살짝 시험하는 걸까. 기다림이 필요하다던 나는 이 순간 기다림을 원망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제이에게 조심스레 1이 사라지지 않았던 카톡방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어? 나 아빠 톡 봤는데? 미리보기로."


알고 보니, 제이는 미리보기로 대강 보고 '응, 읽었지 뭐' 한 뒤, 그냥 까먹은 거였다. '그래 뭐, 아예 읽지도 않은 것은 아니네' 생각하던 그 순간 뇌리에 스친 질문. "너 엄마한테도 그래?"는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했다. 괜히 쪼잔해 보일까 봐.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한다. 답이 오면 오는 거고, 안 오면 뭐 바쁘겠지. 아니면 까먹었거나. 어차피 인생이란 게 대부분 까먹는 쪽과 잊히는 쪽으로 나뉘는 거니까. 비록 3일 뒤의 답장이지만 제이의 '응' 한 마디에도 괜히 마음이 풀리고, 하루쯤은 덜 서운해지는 걸 보면, 나는 제법 기다림에 능숙한 사람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듯하다. 예전처럼 독촉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곤 한다.


그리고는 결국 하루가 지나면, 제이에게 전화를 건다.


"톡 확인 좀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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