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의 즐거움

외로움이 아닌, 독립의 시간

by 신지훈

지난주 월요일, 점심부터 고위급 임원과의 식사 자리가 있었다. 인원이 많아 테이블이 여럿으로 나뉘었는데, 하필 그분과 마주 앉게 되었다. 평소 혼밥을 즐기는 나지만, 이때만큼은 사회인 모드로 전환해야 할 시간이었다. 임원분 역시 말수가 적은 편이라, 내가 대화를 이끌지 않으면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잠깐의 정적조차 찬물보다 분위기를 더 얼어붙게 만든다.


우리는 회사의 최신 이슈, 자녀 교육, 부동산, 주식 투자 등 마치 정해진 식순처럼 예측 가능한 대화를 이어갔다. 밥을 다 먹고 나면 바로 잊힐 가벼운 이야기들. 지하철에서 우연히 마주친 낯선 사람과 나눠도 아깝지 않을 대화였다. 임원의 말에는 적절한 공감을, 때로는 추가 질문도 건네야 했다. 그러면서도 임원보다 빨리 먹지도, 늦게 먹지도 않도록 식사 속도까지 조율해야 했다. 어느 월요일의 점심을 소화하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나는 혼밥을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가급적 혼자 먹으려 한다. 누구 눈치 볼 필요도 없고, 의미 없는 대화에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는 시간. 오로지 내 속도로,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 물론 이는 직장에서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나를 사회성 부족한 사람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원하는 관계에서만 진심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그것이 단지 밥 한 끼일지라도.


혼밥이 익숙해진 건 마흔을 넘어서부터였다. 삼십 대까지는 모든 일상이 '사람 중심'으로 돌아갔다. 진지한 제안인지 가벼운 인사치레인지 구분도 못 했다. 밥 먹자면 나갔고, 술 한잔 하자면 무조건 약속을 잡았다. 그러다 보니 소중한 관계보다 휘발성 만남에 더 많은 시간을 썼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다. 수많은 식사와 약속은 의미 없는 말들과 어쩔 수 없는 리액션으로 채워졌고, 나에게는 꽤 큰 피로였다. (피로가 쌓였으면 풀어야 하는 법)


인간은 애초에 혼밥으로 시작했다. 태어나 젖을 물던 순간부터 각자였다. 쌍둥이라도 입은 둘이니 결국 혼자였다. 가장 원초적이고 자연스러운 식사 방식은 혼밥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라면서 그것을 '쓸쓸함'이나 '비정상'으로 취급하는 세상과 마주한다. 가족이 같이 식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식당 구석에 앉은 혼밥족에게는 동정 어린 시선이 쏟아지고, 혼자 온 손님은 "한 분은 곤란하다"는 말에 발길을 돌리기도 한다.


반면 제이는 어쩔 수 없이 혼밥을 자주 한다. 맞벌이 부부의 자녀인 덕분에 엄마가 차려둔 도시락이나 마라탕, 엽떡, 치킨 등의 배달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게 된다. 퇴근해서 보면 반쯤 남은 배달음식 그릇이 덩그러니 놓여 있기 일쑤다. 그 모습이 짠하다. 내가 혼밥을 사랑하면서도, 딸이 혼자 먹는 건 괜히 안쓰럽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아마도 내 혼밥 철학에는 '가족은 예외'라는 조항이 따로 있는 듯하다. 아니, 사춘기 청소년은 예외.


문득 '식구'라는 말이 떠오른다. 함께 밥을 먹는 입들. 그런데 요즘 식구들과 밥 먹는 일이 드물다. 각자 바쁘고, 일정이 엇갈리고, 피곤해서 결국 같은 집에 살아도 대부분 따로 먹는다. 냉장고에는 반찬이 가득해도, 식탁에 나란히 앉는 일은 손에 꼽힌다. 이쯤 되면 '식구'의 정의도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함께 밥은 못 먹더라도, 마음만은 같이 먹는 사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만족해야 하나… 그건 잘 모르겠다.


적어도 내게 혼밥은 고요한 축제다. 내가 고른 음식, 내가 정한 속도,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꼭 누군가와 먹어야만 맛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함께 먹는 게 의무가 되는 순간, 밥상은 전쟁터가 될 수도 있다. 혼밥은 외로움이 아니라 독립이다. 누구와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해진 나이. 그래서 삼각김밥 하나에 따뜻한 육개장 사발면 하나를 먹어도 나는 충분하다.


너무 배가 고파서 집까지 갈 자신이 없었던 어느 퇴근길. 회사 근처 식당 구석에 앉아 혼자 밥을 먹는데, 맞은편 테이블의 중년 남성이 눈에 들어온다. 그도 혼자 뼈해장국을 먹고 있다. 보기 좋다. 국물을 한 숟갈 뜨더니 갑자기 그가 말한다.


"캬, 아줌마 여기 소주 한 병요."


웃음이 나온다. 아, 저 사람도 갱년기인가 보다. 나처럼.


그리고 아무래도 괜찮은 것 같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웃는 것, 요즘 내 삶의 작은 럭셔리다.


그럼... 나도 한 병?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3화1이 사라지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