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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un 27. 2018

도망치는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베를린으로 도망친 서른살 나의 이야기

스물아홉이 되던해에 나는 대한민국을 증오했다. 


작은 디자인 대행업체의 직원, 을 중의 을인 나는 밤을 새는건 기본, jpeg 파일 형식도 모르면서 디자인을 이미지화 해달라는 대기업 직원의 멍청한 갑질에 한마디 했다가 대표님한테 혼나는 일이 일쑤, 갑의 한마디에 퇴근길 도중에 회사로 돌아가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그렇게 6년의 경력을 쌓고 보니 남자와 여자의 사회적 지위와 대우에 대해, 그리고 4년제대학 출신과 전문대학 출신에 대한 차별까지, 내가 살아가야할 대한민국에서 나의 존재는 총체적 난국이었다.  인생에서 조차 갑이 되지 못하는 나만으로도 충분히 힘든데 삶에 대한 '의지보다는 '포기' 선택하기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놓은 대한민국이 스물아홉 청춘에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갑과  같은 단어는  만들어 놔서 이런 세상에 나를 살게 한건지나의 탄생조차 무의미해지는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지는 나의 스물아홉 청춘이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이런 생활에 더이상 내 미래를 걸고 싶지 않았다.


OECD국가중 자살률, 남녀의 임금차별이 가장 높은 나라, 노동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에서 여자의 사회생활이란 대부분 결혼하기전부터 결혼까지를 뜻한다. '취집' 이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근데 듣고보니 이상했다. 그 말의 뜻은 곧 남편이 아내의 고용주가 된다는 말이 아닌가. 결혼이 '동등한 인권을 가진 성인 남녀의 사회적 결합'이라면 취집이 아니라 공동대표 여야 하는게 아닌가.


"대한민국을 떠나야만 한다"


  잴것 없이 오로지  생각밖에 없었다. 6 경력이 남겨준 2천만원 남짓한 돈이 나의 미래를 얼마나 행복하게 해줄지 생각해본 결과 나는 차라리  돈을  써버려야겠다고 결심했다그리고 베를린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그렇게 대한민국을 잠시 끊었다


떠나는 나에게 주변에서는 대단하다거나 멋있다는 말로 인사를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떠나지 못하는게 아니라 떠나지 않는다는걸. 말로는 '나는 너처럼 용감하지 못하다'고 했지만 나는 용감한게 아니었다. 절박했다. 한국이 너무 싫었고 내 자신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내일을 바라보며 고통스럽게 사는 현재를 단 하루라도 더 살면 정신의 뼈대가 다 부러질것만 같았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을 방법을 찾을수만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을 떠났다. 악과 화와 증오만 가득 캐리어에 채우고.


베를린에서의 나는 여유로웠고 행복했다. 아침에 일어나 하는 생각은 오로지 "오늘 뭐하지" 와 "오늘은 뭐 먹지" 였다. 행복이나 즐거움을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날들이 좋았다. 굳이 행복해지지 않아도 되는게 진짜 행복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며 자유로운 하루하루를 적립했다.


아침에 눈을 떠 가고 싶은곳이 생기면 주변국가를 여행하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어느 날은 비엔나에서 카우치서핑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한국인 여자와 비엔나 남자가 동거하는 집에 며칠간 묵게 되었다. 나는 남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지금 여자친구를 좋아하게 되었냐고, 남자는 말했다. "그녀는 똑똑해요 비엔나, 유럽 여자들은 그다지 똑똑하지 않거든요, 그녀는 자신의 목표가 있고 그것을 위해 열심히 공부해요" 


실제로 그녀는 똑똑했다. 한국에서 일류대를 졸업후 비엔나에서 석사, 박사학위까지 공부하는 중이었다. 그녀는 한국에서 똑똑한 여자들은 '골드미스' 같은 단어로 포장되어 혼자 잘나서 결혼도 하지 못하는 드센 여자로 보여질 뿐, 결국은 사람들이 똑똑한 여자를 싫어한다고 했다. 그녀는 나보다 더 대한민국을 싫어했고, 심지어 한국 사람 자체를 싫어했다. 한국 직장생활에서의 남녀차별에 대한 경험을 떠올리며 한국과 한국사람에 대해 이야기 하는것을 진저리치게 싫어했다.


"한국 사람들은 무례해요.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이유로 무례한 부탁을 하고 약속을 잘 지키지도 않고 인사하는 예의도 없어요. 저는 한국에 다시 돌아가지 않고 그와 여기서 계속 살거예요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된 '한국인'인 내가 다 미안해질 정도였다. 그 대화 이후 나는 엄청나게 조심해서 그 집에서 지내야 했다. 무례한 부탁을 하지 않고 최대한 예의바르게, 한국인 답지 않게 며칠을 지내다가 이른아침, 곤히 자는 그들을 깨우지 않고 조심 조심 그 집을 나왔다. 


비엔나-체코행 버스 안에서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길에 많은 생각을 했다. 오로지 자신을 위한 결정들을 하고 그 결정들에 책임을 지며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똑똑해 보였다.


똑똑하다는건 그런거였다

공부를 잘하는게 아니라자기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변화시키며 사는것

오로지 나를 중심으로 나와  주변의 것들을 바꾸어 나가는것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는것.


지구반대편, 그렇게 먼 곳으로 도망치고 나서야 내가 떠나온곳과 나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평생을 을로써 월급의 노예로 살아야 한다는 공포감이 너무 컸고, 누가 정했는지 모를 기준 따위에 나를 맞추기 싫지만 크게 변하기 힘든 사회구조 속에서 마냥 싫어하는 마음만 키워갔던것 같다.

그렇게 마냥 싫어하고만 있으면 그 마음이 눈덩이 처럼 불어나 절망에 가까워진다. 그럴때 필요한 것이 '도망'이었던것 같다. 나는 꽤 적절하게 도망을 쳤고 그 덕분에 문제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멀리서 내가 떠나온 한국을 떠올려 보니 아직 내가 똑똑한 선택을 하고 살아내야할 것들이 남아있어 보였다 부모님과 내가 좋아하는 이들이 있는곳그런곳에서 다시한번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다그렇게 한국으로 돌아왔다독일로 출발할때 캐리어에 가득했던 '독기' 독일산 핸드크림으로 가득 환전해서 말이다.


최근에 작업실을 얻고 친구와 밥을 먹는데 친구가 말했다.

"너는 위기가 있을때마다   딛고 일어나잖아 얼마나 좋은 거야그래서 너는  될수밖에 없어  니가 하고싶은대로 하면 "


일본 드라마 중에 [도망치는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있다. 

헝가리 속담이라고 하는데, 힘든 상황에서 도망치는건 부끄럽지만 멀리 떨어져서 보면 또 그 도망이 도움이 될 때가 많다. 오히려 도망치지 않으면 내 안에 악만 가득남아 내가 화를 내는건지 화가 나인건지 모르게 될 수도 있다. 오랜 회사생활은 나를 도망조차 제때 치지 못하는 겁쟁이로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또 도망치는 중이다. 길을 잃어도 잃은 길에서 뜻밖의 영화같은 행운을 발견했던 나의 독일행 도망처럼 이번 도망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정말 신기하게도 도망을 치고 나서야 나는 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저 나의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감사하게도 크고작은 수입도 생기고 있다.


지금 행복하냐고? 당연히 행복하지! 

내 손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되는 소중한 하루 하루를 적립하고 있다. 적어도 나는 오늘을 살고있다. 회사원인 나는 '적당히'가 안되서 늘 괴로웠다. 그리고 적당히 월급만 받는 사람들이 많은 곳은 재미가 없다. 


온전한 나를 위한 하루는 적당하지 않아도 된다. 나의 넘치는 재능과 끼를 마음껏 분출하며 살아도 된다. 도망치는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아도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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