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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Apr 16. 2019

오늘은 꼭 싫다고 말 해!

의견을 물을땐 적.어.도 두가지 답을 예상하십시오



점심을 먹는데 회사 막둥이가 고민을 털어놨다. “팀장님 저 실장님들이랑 노래방 가는거 너무 싫어요 ㅠㅠ”

나는 입사 초부터 ‘거절하는 여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싫은걸 싫다고 말해 미리 미움을 샀던 터라 노래방이든 회식이든 잘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따로 내색하지 않아 괜찮은줄만 알았던 막내직원이 갑자기 회식때문에 회사가 오기 싫을 지경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술에 취하면 음담패설까지 늘어놓는다나 뭐라나.

왜 그동안 참기만 했냐고, 나한테라도 말하지 그랬냐고 되물었더니 용기가 없어 술에 취해 딱 한번 노래방 가기 싫다고 말했다가 다른 과장님한테 찍혔다고 했다. 맨날 그 과장이 수시로 놀려대는 이유가 이거였다니.
“야 우리 막내 술취하니까 할말 다하더라~ 당차! 대담해!”

‘아니, 당차고 대담한 사람이면 겨우 술 취해서 할말 하겠냐 인간아!’ 나 혼자 생각으로야 당장 두 팔 걷어붙이고 그 자리로 가 따지고 싶지만 그래봐야 해결은 커녕 알량한 그의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났다며 길길이 날뛸게 분명해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얼마 후 스키장에 딸린 콘도로 워크샵을 가게 되었는데 그 건물 지하에 노래방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막내는 또 기겁했다. 나는 그녀를 따로 불러 은밀히 작전을 짰다. 사실 싫은걸 싫다고 말하는데 작전 씩이나 짤 필요도 없었지만 싫어도 웃으며 괜찮다고 말하는게 동방의 ‘예의’인 가’족’같은 회사에 다니는 우리는 너무 진지했다.

“지영씨, 이건 누가 도와줄 수가 없어. 내가 도와준다고 나서면 괜히 미움만 살거야. 회사라는 곳에서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고 참으면 그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인줄 알더라고. 지금 이 회사가 절대 정답도 아니고 나는 절대로 ‘괜찮다’고 말하고 부당한걸 견디는 사람이 잘된다고 생각하지 않아. 오히려 그런 용기 없는 사람이 더 부당한 문화를 만든다고 나는 생각해. 자기 의견은 자기가 말할수 있어야 하는거야 알겠지?”

“워크샵 가서 분명 또 노래방 가자고 하겠지? 막내 운운하면서 지영씨한테 의견을 물으실꺼야. 그럼 싫다고 직설적으로 말하지 말고 “저 사실 노래 못해서 노래방 되게 싫어하는데, 볼링 치러 가요!” 라고 다른 대안을 말해봐. 자기 의견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돌려 말하면 사람들이 생각보다 수긍하게 되더라.”

그리고 결전의 날 저녁이 되었고 아니나 다를까 나이많은 실장님이 “오늘은 우리 막내가 하고싶은걸 하자, 막내야 노래방 갈까?”라고 물었다. 우물쭈물 하는 그녀의 옆구리를 찔렀다. 나의 작전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말했다.


“....노래방 가기 싫은데요...보...볼링장이 있더라구요 지하에!...”

어렵게 꺼낸 그녀의 부끄러운 거절이 먹혔고 정말 다행히도 워크샵 첫쨋날 밤은 볼링장에서 술을 진탕 마시는걸로 마무리 되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그녀는 그 싫다는 말 한마디를 하기 위해 하루 전부터 시뮬레이션 하고 두시간 전부터 심장이 벌렁거렸다고 했다. 하지만 말하고 나니 너무 시원했고 싫다고 당당하게 말하는것에 위축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삼십대에는 팀장님처럼 누가 뭐라든 자신에게 당당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팀장님은 제 롤모델 이예요”

롤모델이라니. 사실 나는 나를 따르는 후배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게 될 때 너무 부끄럽다. 속으로는 ‘나처럼 사회생활 하면 흔히 말하는 아웃사이더가 될텐데 내 주제에 뭘 가르친다고’ 라는 생각으로 늘 입을 닫으려고 하지만 부당한 일만 눈앞에 펼쳐지면 꼭 이렇게 오지랖을 떨게 되니 말이다.

싫고 좋고를 따지라는 말이 아니라 싫다 좋다는 말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지 말라는 뜻이고 진심으로 타인의 의견을 물었을 때에는 적어도 두 가지 답을 예상하라는 말이다.

싫다고 말하는 것은 나쁜것도 아니고 예의 없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말 그대로 ‘싫다’는 말이다. 나는 당신의 거절을 응원한다.
“싫다고 말 해 오늘은 꼭!”




사진,글,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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