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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Mar 23. 2018

삼십대 후반전, 막막한 마음

백수를 응원합니다

걷다가 발견한 동네의 예쁜 풍경


삼십대 후반에 여섯번째 프로백수리안이 되었다.


공기가 맑아서 많이 걷다 보니 생각보다 가까이 두고도 몰랐던 좋은 장소들이 많다. 이렇게 뚜벅뚜벅 내 발로 걷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 그런 것에 진정한 내 삶이 숨겨져 있기라도 한 듯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오늘도 5키로미터를 걸었다. 걷다보니 문득 어떤 글에서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걸 알고 싶다면 그리고 진짜 자기 인생을 살고 싶으면 싫어하는 것 리스트를 작성해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나 긴 산책을 멈추고 스타벅스에 앉아 써보았다. 


이 막막한 리스트에서 나는 무엇을 알아낼 수 있을까



옆사람 입냄새까지 맡아야 하는 지하철 타는 것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

남들이 하는대로 하는 것

의미 없는 술자리

일할때 일이 아닌 태도나 관계에 대해 자주 따지는 사람을 대하는 것

이유없이 욕 먹는 것

젊은 꼰대


답답한 마음에 이런저런 리스트를 작성하고 자기계발서 읽기도 여러권. 밑줄도 그어보고 필사도 해보고 소리내어 읽어도 봤지만 수많은 훌륭한 분들께서 말씀하시는 내면의 소리는 들리지 않고 이런방법 저런방법 따라하느라 마음만 분주해진다. 어떤책의 "하나의 길만을 보지말고 지금 내가 딛고 있는 들판에핀 꽃과 바람을 즐기라"는 말도 와닿지가 않는다. 삼십대 후반전 제대로 백수의 길로 접어들기로 한 나의 머릿속엔 바람대신 미세먼지가, 꽃 대신 찝찝한 회사에 관한 기억들이 아직도 많은 부분 자리잡고 있었다. 


퇴근 무렵에나 볼 수 있는 하늘을 낮에 자주 볼 수 있는것, 

감기같은 잔병치레가 많은 내가 가고싶은 시간에 병원을 갈 수 있다는것, 

원하는 시간에 일을 하고 밥은 먹고 싶은 시간에 먹는것,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을 대면하고 견디지 않아도 되는것, 

죽어도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도 괜찮은것, 

약속이 있을땐 급하게 정해진 회식을 거절하는것, 

화장실을 자주 가도 눈치보이지 않는것, 

억지웃음이라도 지을것을 요구하지 않는것, 

집단주의의 페르소나에 갖히지 않는것, 

다르다고 비난받지 않는것. 

나는 이런것이 인정되고 통용되는 사회생활을 하고 싶었던것 뿐, 대단한 복지와 연봉을 바란것이 아닌데 조금씩 다른 사람이 모여 구성원이 되는 사회, 회사라는 곳에서 나는 그렇게 잘못이 많았던 걸까.


회사에서 해야 할 일 대신 내가 하고싶어 했던 것들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음에도, 어마무시한 "먹고살이"에 대한, 그리고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민은 이런 노력들을 허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다시 마지막으로 회사를 다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버무려진 눈물이 뚝 뚝 떨어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앞으로 또 박실장 같은 사람이 내 성과는 가로채고 없는 말을 지어내서 대표로 하여금 나를 싫어하게 만들면 어쩌지?' '또 파벌을 만들어서 나만 미운오리새끼 만들고 학벌 같은걸로 왕따 시키면 어쩌지?'  '이대리 처럼 누군가 4년제도 안나온게 무슨 팀장이야? 라고 면전에다 대고 말하면 나는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하지?' 아............내가 또 볼 꼴들은 아니리라.


이제부터라도 잘 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성공까진 아니어도 진짜 행복해서 짓는 미소를 내 주변인들에게, 그리고 부모님께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다. 그래서 더 불안하고 속이 상한다. 아무도 나를 보고 있지 않다고,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수많은 자기계발서는 말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잘 해야 한다'라는 공포가 몸에 배서 그런지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워 지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삼십대 후반전, 오늘도 수많은 자기계발서와 명언들 속에서 생각이 많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소용없는 자기계발 말고 내가 조금 더 행복해지는 길을 그 수많은 생각의 갈래속에서 천천히 찾아보려 한다.


남보다 오래 두리번거려서 멍청한 바보처럼 보이는것에 익숙해지고 싶다. 

욕 먹는것을 두려워 하고 싶지 않다. 찌그러진 돈이라고 돈이 아닌게 아니듯 조금 찌그러진 나와 나의 오늘도 인정해주고 감사하기를 바란다. 지금 백수의 하루하루를 통해서 세상을 향한 나의 생각과 눈이 조금 더 선명해지고 마음에 바람이 불었으면 한다. 


이런 마무리 밖에 지어지지가 않는, 이름하여 백수 플러스 삼십대 후반전.

나처럼 무시한 막막함에 시달리고 계신분이 있다면 정말 따뜻하게 안아드리고 싶다. 

자기계발은 잘 몰라도 나같이 막막한 사람을 그 누구보다 잘 토닥여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마무리 지으며 세수를 해야겠다.


글,사진 A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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