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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Mar 28. 2018

때로는 의외의 곳에서 위로를

위로가 많이 필요한 세상이다



위로가 많이 필요한 세상이다. 예상해 보건데 백수는 그 위로가 5배쯤 더 필요한 것 같다. 어느날 아침에는 밑도 끝도없이 '아무도 연락이 오지 않는 나 같은건 살 자격도 없어'라는 극도의 불안감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래서 무기력한, 그 어떤것도 나에게는 가치있는 일이 없을것 같은 어느날 아침이었다. 벌써 3주째 역류성 인후염으로 약을 먹었다. 그 와중에 올겨울만 세번째인 감기가 찾아왔다. 콧물과 가래가 내 코와 목구멍을 엄청나게 막고 있는 끈적한 기분, 걸리지도 않던 감기가 백수의 겨울에 세번이나 찾아오다니 세상의 끝으로 밀려난 기분이었다. 


병원이라도 가야했다. 

집근처에 병원이 있지만 그날은 그 병원을 가고싶지 않았다. 본인의 말에 토를 달고 궁금한 것을 묻기라도 하면 "환자분과는 말이 안통하네요, 지시대로 약 드시고 나가보세요" 라며 아픈 환자의 말까지 잘라먹는 의사가 있는 병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분께 바로 진료를 보지 않고 한시간을 기다려서라도 원장선생께 진료를 본다. 나는 몸의 병은 모두 마음의 병이라는 말을 믿기 때문에 마음이 아픈 환자들에게 시비를 거는 의사는 사명감이 없다고 생각해 원장님이 계시지만 그 병원은 가지 않는다. 이것이 내가 굳이 한시간을 지하철을 타고 가야하는 병원에 가는 이유이다. 


특히나 그 날 만큼은 누구와 시비를 붙고 싶지 않았다. 아니 그럴 힘조차 없는 날이었다. 봄바람을 느낄새라 미세먼지가 내 호흡기를 더럽힌다. 겨울+미세먼지+감기의 조합은 다시는 겨울철에 백수로 살지 않을것을 다짐하게 한다. 병원에 도착해서 진료를 받았다. "오늘은 어디가 불편하세요?"라는 말이 들려오자 "선생님 저 가래 땜에 너무 힘들어요ㅠㅠ" 라고 말했다. 


역류성 인후염은 가래가 없음에도 가래가 있는것 같은 이물감과 속쓰림에 시달리고 목이 쉬는 증상까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아주 고약한 질병이다. 게다가 감기까지 겹쳐 물리적으로 너무 힘든 상태였다. 의사 선생님은 "많이 힘들죠! 아직도 안나았나 보네~ 왜 병원에 연속으로 안왔어요?" 하시더니 진료를 시작하셨다. 내 기분을 끈적하게 만드는 이물질들을 제거하고, 시비나 붙이는 의사는 아프게 하던 내시경을 순조롭고 편안하게 하고 확인까지 시켜주시며 "자 가래는 없습니다, 근데 이 질병이 원래 그래요 오죽하면 어떤 환자는 정신과 상담까지 받을정도로 아주 짜증납니다. 그 기분 알죠 허허 ~ 원래 인후두 부분이 한번 부식되고 붓기 시작하면 예민해서 계속 신경쓰이는 거예요" 라시며 "인생사 다 그렇잖아요, 나도 스트레스 라고 밖에 말 할수가 없는데, 일단 우리 커피는 딱 한잔만 드시고 운동을 시작해 봅시다, 규칙적으로 걷기만 해도 아마 좀 편해질거예요, 미세먼지 많으니까 헬스장 끊어서 그냥 매일 걷기만 하세요" 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림까지  그려가며 왜 그럴수 밖에 없는지 설명해 주시는데 나는 무슨 인생 명강의를 듣는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짜증났던 기분은 사라졌고 '아 이제 운동을 해야겠구나'라는 납득이 0.1초만에 됐고, 이게 얼마나 짜증이 나는지 알아주는 선생님이 대단해 보이기 까지 했다. 약을 받아들고 병원을 나오는데 이제 병이 다 나을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보통의 진료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기 적절한 누군가의 한마디나 혹은 눈빛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은 때로 누군가에게 엄청난 위로가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말에 공감을 해 주었다는것은 그 무엇보다 큰 힘이 되었다. 훌륭해지기, 이렇게 쉬운거였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시간, 그 시간에 따뜻해 지기란 쉽지가 않다. 어둠 속에서 내 안의 빛을 밝히는 것은 수많은 경험속에서 얻은 지혜들과 통찰력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힘든 사람의 빛을 밝히는것은 어쩌면 정말 사소한 공감과 인정 일지도 모른다. 내 자신에게를 포함 모두에게 사소하지만 훌륭한 따뜻함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슈바이처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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