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하를 지출하는 사회
새해 벽두부터 결혼 소식이 네 건이라니 이런 일이 다 있냐고 혼잣말을 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언제쯤 결혼을 하게 될까? 결혼을 하기는 하는 걸까?” 어느덧 서른여덟, 한국사회의 기준으로 결혼을 포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나이가 되었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결혼자금을 미리 준비해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엄청난 룰에 따라 차곡차곡 돈을 모으고 있었는데 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 결혼자금을 모으다니 새삼 결혼하지 않고 (사회적 잣대에서) 너무 지나온 시점에서 돌아보니 여간 웃긴 것이 아니다. 이제야 생긴 단어인 비혼을 선택하게 되면 결혼자금은 자동으로 노후자금으로 변신하는 건가?
애초에 결혼자금이라는 건 필요 없다고 주장하며(핑계 대며) 당장 오늘의 행복을(소비를) 선택해왔던 나인지라 노후에 도움이 될만한 결혼자금도 없지만, 결혼을 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지금까지 축하라는 이름으로 지불했던 돈들이 선명해지면서 결혼 후 소식 없는 그들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우리나라 축의금의 근원에는 품앗이의 뜻이 담겨있다는데 먼저 축하받고 입 닦으면 장땡이란 말인가. 갑자기 괘씸해진다.
이렇게 축하를 돈으로 계산하기에 이르니 나는 앞으로 어떻게 구별하여 현명하게 축하를 지출해야 할지 혼란스러워졌다. 응당 축하를 주고받고 해야 할 일생일대의 중요한 사건을 앞에 두고 계산기나 두드리고 앉은 내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진짜 기분 좋게 축하해주고 싶은데 금액부터 떠올려 정리해야 하는 게 어른인가 싶어 쓸쓸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갑자기 몰린 여러 건의 결혼 소식으로 인해 나만 빼고 다들 앞서 나가는 건 아닌지 걱정과 혼란까지 더해져 축하를 계산하는 일이 영 탐탁지가 않다.
해야 돼서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을 때 하는 게 결혼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이쯤 되니 뭔가 나도 해야만 할 것 같은 불안함, 이젠 너무 늦어서 서두르지 않으면 뒤쳐질 것만 같은 두려움, 나만 못난 것 같은 자격지심, 뭐 이런 못생긴 감정까지 범벅되어 머리가 띵했다. '그냥 적절하게 어딘가의 누군가와 합의를 봐야 하나'라고까지 생각을 하니 눈물까지 찔끔했다. 전화 한 통으로 누적된 결혼식의 숫자가, 아니 그 숫자에 놀라 덜컥 집어먹은 겁이 나의 저녁을 망치고 있었다.
얼마 전 고민 끝에 '그냥 알고 지내는'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사회가 기준하는 적절한 축의금도 내고 밥도 먹었다. 얼마 후 그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던 중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세상에 나보다 직급도 높으신 분이 축의금으로 5만 원을 냈더라니까, 그건 좀 아니지 않니? 진짜 실망했어."
나는 뜨끔했고 결혼하지 않은 다른 친구는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아 가지 말걸...'
굳이 시간 내 참석한 하객을 액수만으로 정렬하는 것이 축하의 의미가 된 사회가 너무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런 결혼식이라면 역시 내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그 친구와 헤어졌다.
축하는 지출하는 것이 아니고 액수와 축하하는 마음이 비례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이제부터 내 결혼식에 안 올지라도 축하해주고 싶은 사람의 결혼식만 가기로 했다.
나는 새해부터 세 건의 결혼식 참석을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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