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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Sep 20. 2017

싹싹하지 말자

왜 싹싹한 여자를 강요하지?

나는 디자이너로 10년 하고도 5년이 넘게 회사를 다녔다. 마지막으로 퇴사한 회사, 약 9명쯤 되는 소규모 디자인에이전시 였는데, 나보다 나이많은 남자이며 직급은 같은 직장동료가 내가 입사한지 한달쯤 되던때에 나를 따로 불러 이렇게 말했다.


좀 싹싹하면 안돼?


싹돋네 진짜


사회생활, 굴러먹을만큼 굴러봤다고 생각했는데 복병은 두루두루 분포해 있었고 종류는 가지가지, 이유도 고루고루 라임이 돋아 주신다. 

커피는 여자가 타야 보기에 좋다는 거지같은 상식, 

신입직원을 막내라고 부르며 딸한테는 안시킬 청소나 탕비실 잡일을 시키는 꼰대정신, 

막내 직원이면 먼저 출근해 자기 책상위를 걸레질 해놓으라는 냄새나는 사상, 

경력이 많든 말든 자기보다 어린 여직원이면 자기말을 들어야 한다는 조선시대식 발상, 

모든일에 “여자라서 그래, 여자들은 그러더라”하고 마무리하는 정신나간 착각, 

뭐 그런것들을 겪으며 사회생활을 해온지라 이제는 크고 작은 다양한 대우와, 상식, 생각에 웬만큼은 단단해졌다고 생각해 오던 즈음이었다.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욕했을지언정, 나의 눈을 보며 직접 말을 내뱉은 사람이 사회생활 십여년동안 처음이었던지라 나는 약 6초정도 말을 잊지 못했다. 그동안 나는 생각했다. 나보다 나이많은, 결혼도 하시고,  단한 지방 4년제를 나오셨으며, 한 아이의 아빠인 이 남자사람이 하는 말의 뜻을 말이다. 6초가 지난 후에도 나는 그 뜻을 알지 못했기에 “네? 제가 일적으로 싹싹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나요?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라고 되물었다. 


요지는 그러했다. 나의 전임자였던 여직원이 굉장히 싹싹하고 사무실 식구들을 잘 챙기며 사근사근하게 사무실의 잡일을 도맡아 하고 잘 받아주는 애교스러운 성격으로 그들이 말하는 성격좋은 사람이어싿고 했다. 그래서 윗분들(사장님, 실장님, 부장님)이 굉장히 예뻐 하셨다고, 여자들중 가장 맡언니인 내가 그렇게 행동해주면 사무실 분위기도 좋아지지 않겠느냐고.


도대체 이런 말같지 않은 말을 언어랍시고 내뱉는 사람이 궁금해졌다. 본인이 왜 그 분들의 생각을 대변하는지도 아이러니 인데다 왜 나에게 싹싹함을 요구하는지를, 웃음을 요구하는지를, 애교있는 생활을 요구하는지를.


일을 하는데 왜 애교가 필요할까. 그 망할놈의 애교와 리액션은 대한민국 여자들에게 요구되는 필수 덕목이란 말이던가. '싹싹한거 좋아하면 본인이 싹싹하면 되지 왜 나에게 요구하는거지' 라고 생각하니 실소가 터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도 싹싹하지 않은 성격은 아니나 일하는 공간에서 그런것을 요구하지 말아주십시오" 라고 정중하게 말하며 기분좋게 대화를 마무리 하긴 했지만 여전히 찝찝했다.


나에게도 분명 애교와 싹싹함이 존재한다. 그것들은 나도모르게 가끔 불쑥 튀어나와 내 자신을 놀래킨다. 커피? 타 줄수 있다. 직장동료도 분명 사람이기에 정이들고 인간으로서 친해지면 얼마든 싹싹하게 대해 줄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것들은 어디까지나 내가 중심이 되어 '내가 원할때' 여야 한다. 나라는 사람은 일을 할 때 애교나 싹싹함을 탑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이 업무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하면 여자 후배들은 멋있는 쎈언니로 통칭하고 남자들은 독하거나 쎄다고 말한다. 왜 직장생활을 오래 한 여자는, 30대 여자는 독하고 쎄며 인간적이지 않은 모습이어야만 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심지어 여자들 사이에서도 여적녀 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하며 '더 싹싹한 여자 되기' 대열에 합류하여 기꺼이 경쟁에 참여하는지, 이런 모습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가끔 동물의 왕국 같아 보이기도 한다.


내가 일을 할때 싹싹함을 거부한다고 해서 뇌의 한쪽이 마비되어 있는것은 아니다. 나도 때와 상황에 따라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여성스러움으로 조금 이익을 볼 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것을 강요할 수는 없다. 겨우 그런것에 스트레스를 받느라, 그렇지 않은 자신을 싫어하느라 보석같이 빛나는 자신의 장점을 숨기고 있을수는 없다. 어떤 책에서 말에는 창의력이 있어 자꾸 들으면 정말 그런가 하고 생각한다고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런 귀중한 말 한마디를 겨우 싹싹해달라라고 요구하는것에 쓰다니.


싹싹하지 않은 여자도 매력이 있다. 싹싹함 말고 다른 매력이. 

그리고 말하건데, 일터에서는 여자와 남자가 아닌 서로를 인간으로서 대했으면 좋겠다. 서로의 여성스러움, 남성다움을 어필할 시간이 우리에겐 따로 있지 않던가. 아름다운 노을이 지는 저녁, 불빛 아련한 밤거리, 마음 가벼운 주말 등 얼마나 많은 시간 우리가 매력적일 수 있단 말인가!


비빔밥은 아니지만 싹싹 긁어 먹었으므로




싹싹하지 말자. 그냥 나로써 즐거운 인간관계를 구축하자.
싹싹해봐야 더 높은 싹싹력을 요구할 뿐 그 어떤것으로도 보상받지 못한다.
싹싹은 비빔밥 먹을때나 비벼먹자.
싹싹하고 싶으면 너나 싹싹 비벼 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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