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밖은 그냥 삶이야
회사원으로서의 나는 "왜 잘 되지 않는가"에만 목이 말랐었다.
열정은 넘치는데 무슨 일이든 잘 풀리지 않는것 같았고, 실패만을 거듭하여 더이상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할 용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 꽉 묶인 실타래를 풀거나 끊어줄 실마리는 오직 돈이라고, 돈만 있으면 자유롭게 여행하고 작업실을 차리고 나를 등졌던 사람에게 큰소리 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글을 쓸라 치면 너무 할 말이 많고, 잘되야만 한다는 마음이 컸기에 한 글자도 마음에 들게 쓸 수 없었다.
이런 나를 누가 사랑해 줄 리 만무했고 그 어떤 것에도 진실로 기쁜 순간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누구를 만나도 불평밖에 늘어 놓을것이 없었고 그런 말만 늘어 놓을바엔 사람을 만나기가 싫었다. 많은 생각과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안그래도 좁은 나의 뇌용량은 항상 지쳐있었고 언제나 나의 힘듦의 이유를 합리적으로 변명해야 했기에 근거를 찾느라 바빴다.
지금까지의 회사와 그에 속해있는 사람들은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이지 지옥같았다. 오너의 마구잡이 부당해고나 사내정치라는 명목의 이간질, 성희롱, 성차별은 기본이고 직원들간 사무실에서 십원짜리욕과 발길질을 일삼는 동료들, 신입직원들을 선동시켜 왕따를 조장하는 사십대 차장님, 회사의 고급비품을 번번히 집으로 가져가는 실장, 수유실이 없어 탕비실에서 모유를 짜는 대리님을 번번히 면박줬던 이사님, 야근하지 말라면서 눈치야근을 조장하는 부사장님, 언제 잘릴지 몰라 사장 앞에서 벌벌떨던 손들..........
합리보다 비합리에 익숙해져 아랫계급에 있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기합리화에 쩔어 미친소리를 지식인냥 지껄이는 회사붙박이 또라이들이 승승장구 하는 세상. 그것이 내가 본 중소기업의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비합리의 냄새, 비리와 이간질의 악취, 무능력의 불편함과 일관적이지 않음의 형체없는 칼. 칼을 휘두르고 악취가 나고 불편한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을까. 행복은 커녕 칼에 맞지만 않았으면 하고 매일 기도했다. 내가 살인자가 되지않길, 정신이상자가 되지않기를 매일 매일 출근도장을 찍을때마다 문 앞에서 빌었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 도피하고 고민하고 반성해야 했다.
이게 과연 사람이 사는 세상인지 지옥인지 전쟁터인지 모르겠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직을 할 때마다 간통이라는 거북이를 봤으니 성희롱이라는 솥뚜껑 쯤은 이제 나에게 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거북이를 본 사람은 안다. 본 순간에는 솥뚜껑따위에 내가 절대 놀라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번번히 솥뚜껑에 놀라다가 나중에는 냄비뚜껑만 봐도 질색을 한다는것을. 사람사이의 나쁜 기운은 감히 거북이와 솥뚜껑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배려로 때로는 연민으로, 정으로 쉴새없이 그들을 이해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다.
부장님으로서는 타인의 자존감을 짓밟는 말만 내뱉는 상놈이지만 누군가의 다정한 아빠임을,
대리님으로서는 성차별이 쩔어 여직원들의 기탄의 대상이지만 누군가의 상냥한 남편임을,
직장동료로서는 무능력이라는 짐을 다른 동료들에게 지우는 인간이지만 누군가의 효성 지극한 딸아들임을 나는 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소중한 사람들을 제외한 타인들도 누군가의 소중한 누군가임을 왜 모르는지, 왜 잊고 사는지, 자기 자신들이 소중하다면 타인도 소중해 질것이고, 소중한 누군가에게 감히 할 수 없는 행동들을 생계라는 이름으로, 부모라는 이름으로, 직급의 이름으로 할 수 있을까?
도피해서 이직 한번, 고민해서 이직 두번, 반성하며 이직 세번, 내려놓고 이직 네번. 마지막으로 무슨일이 생기든 한번 버텨보자, 하고 다시 회사에 들어갔다. 사람이 많지 않으면서 배울것이 있고, 내가 윗사람인 곳 보다 아랫사람인 곳, 그리고 야근이 당연하지 않은 곳. 그거면 됐다고 생각해서 작은 디자인 에이전시를 선택했다. 이제 회사생활에 이골이 날대로 났기때문에 회사에서는 최대한 사생활에 관한것을 공유하지 않는 선에서 잘지내려고 노력했고, 일 외에 그 누구의 어떤 행동도 간섭하지 않으며 돈버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곳, 일만 실수없게 하면 되는곳. 그것이 내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그렇게 1년여가 흘렀다. 나름대로 회사 사람들과도 정이 들었다고 생각했고, 일도 익숙해졌으며 나는 내 일을 좋아하기 때문에 큰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아끼던 막내 직원이 퇴사 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내용인즉, 몇 몇 직원들이 나 하나를 두고 따돌림 같은 형태의 일이 벌어지고 있고 뒤에서 나의 퇴사를 종용한다는것. 나도 모르는 나의 퇴사를 술안주로 삼는것은 물론이고 나와 친한 막내직원도 함께 욕을 하도록 분위기를 조장해 너무 힘들었다는것, 그래서 본인의 판단으론 내가 알아야 할 것 같고 더이상은 그런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다는것 이었다. 나는 기분이 나쁘기 이전에 "사람이 너무 싫으면 경멸의 단계가 되는것 같아요" 라는 사회 초년생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이 너무 슬펐다. 한참이나 더 미뤄도 될 경멸의 기분을 벌써 알게 되다니, 그들이 무슨짓을 한걸까. 심지어 이런 사실을 회사에 알리고 잘못된걸 잡으시라고, 필요하면 자기가 증인까지 되어 주겠다고 했다.
어디 가서 남한테 상처 안주고 또라이가 되지않기 위해 노력하며 훌륭하진 못해도 아랫사람 대신 할 말은 해 줄수 있는 팀의 장이 되려고 울면서 악으로 깡으로 버텨온 회사생활, 이제는 따돌림의 대상 이라니... 한시간의 퇴근길, 지하철 한쪽에 앉아 생각해보니 기가막히고 억울해서 눈물이 홍수처럼 줄줄 흘렀다. 일 할때는 확실하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누가 시비를 걸라치면 심장부터 나대는 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 일 아닌게 아닌것 같았다. 겨우 이런꼴 보자고 내가 지금까지 버텨온건지, 자존심 상하고 억울해서 지하철에 앉은 채로 50분을 내리 울었다.
그리고 그 막내직원은 퇴사했고, 나는 이틀간 생각이라는걸 해보았다. 도대체 내가 나갔으면 좋겠을 정도로 잘못한게 뭘까,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 상처를 줬나, 1년을 같이 일했는데 겨우 그런식으로 나를 대해 왔던건가, 일말의 정은 없나 ....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되니 그 직원들이 나에게만 업무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밥먹는 장소를 알려주지 않는 등의 유치한 행동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그 간 이유없이 틱틱대는 세 사람의 행동이 퍼즐조각처럼 맞춰졌다. 나 하나를 두고 뒷말을 하는 느낌, 내가 오면 끊어지는 대화, 한순간도 그곳에 있고싶지 않았다. 겨우 9명이 전부인 회사에서 조차 파벌을 만들다니 기가 막히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며칠이 지나니 나도 생각이 명료해졌다. 나는 부장님께 이런 사실들을 알렸고 더이상 일하지 못하겠고, 싸우지도 못하겠으니 내가 나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부장님은 의외로 그런 문제들이 예전부터 고질적으로 있어왔고, 심지어 나보다 몇 살 어린 직원은 실력 문제로 퇴사권유를 받았던 직원인데 네가 그만둘 일이 아니다 라는 답변을 주셨고, 되려 내가 사무실 분위기를 쇄신 시켜주는 역할을 해주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다. 나는 이미 퇴사의 결단이 섰지만 2주 정도만 시간을 가져보고, 그들의 이야기도 들어보라고 말씀드렸다. 경력 꽤나 있는 그들이 그랬다면 나로서도 생각해 볼만한 문제였다. 이유가 듣고 싶었다. 며칠 후 그들이 했던 행동의 이유가 들려왔다. 더욱더 기가막혔다.
같은 직급 이며 나보다 나이 많은 남자직원은 내가 말을 잘 안듣는다는것, 어른들이 권하시는 양꼬치에 술 한잔을 두어번 거절했다는게 이유였다. 나보다 낮은직급의 대리는 내가 ‘막내직원한테만 잘해줘서’가 이유였고, 회사 업무비용을 나에게만 지급하지 말것을 종용하기 까지 했다고 했다. 그녀와는 점심시간 마다 함께 밥을 먹은 사이라 섭섭한 마음에 "너라도 귀뜀을 해주지.. 1년이나 함께 지냈는데 그렇게 까지 해야했냐" 라고 묻자 자신은 전혀 가담하지 않았고 나머지 두 사람이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고 핑계를 댈 뿐이었다. 그리고 제일 경력도 나이도 있는 차장님은 나머지 두 명이 나에 대해 나쁜말만 하니까 싫어졌다고 했다. 입사 첫 날 기억에도 없는 나의 지각을 운운하며 직원중 가장 많은 지각일수를 달성하신 장본인께서 "그러게 나랑 술이라도 한잔 하면서 잘 좀 지내보지 그랬냐" 고........
나는 사실 진짜 그럴듯한 이유가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내가 사과할만한 일이면 사과를 하고 그냥 좀 잘지내볼까, 멀쩡한 어른들이 이유 없이 그런행동을 할 리가 없을텐데, 뭐 이런생각들을 하던 차였다. 그런데 이런 이유들을 듣고 있자니 더욱 자존심이 상했다. 뒤에서 나에게 지급 되어야 할 비용이나 빼돌리고 막냇직원에게 나와 무슨 얘길 했는지 캐기나 하면서, 회사 물품 하나 자기들 맘대로 놓여있지 않으면 막내를 불러 이게 왜 이렇게 되어있냐고 지적하고, 자기들끼린 대낮에 외근을 핑계삼아 술을 마시고 업무비용으로 처리하는 꼴들을 2년간 사회초년생인 막내직원이 보며 지냈을걸 생각하니 이회사가, 이사회가 잘못되도 한참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로 온 정상인 이었고 그들은 이미 회사에 대한 불만이 곪을대로 곪은 상태였는데, 새로 온 내가 아닌걸 아니라고 말하고 자신들이 해왔던 썩어 빠진 전통대로 휩쓸리지 않은것, 이것이 이 곳에서의 내잘못이었다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그들과 달라서 틀린것이었고, 썩은물에 들어와 그동안 혼자 깨끗한척 하고 있었구나, 내가 있을곳이 아니다. 더욱 명확해졌다.
과거의 퇴사들을 통해 나는 자꾸 이직을 하게 되는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서만 찾고 있었을 정도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내가 잘못이라도 했기를 바랬고, 분명 나에게 문제가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퇴사를 통해 그 원인이 꼭 나에게만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고 "제대로" 멈추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또 한번의 퇴사를 했다.
퇴사를 하고 나하나를 두고 비아냥 거리거나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 이유없이 불친절하게 구는 사람이 없는 곳에 있다는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아니, 마음이 선선했다. 이렇게 쉬다가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뭐라도 되겠지 라고 핑계대며 마음 편히 지냈다. 밥사먹을돈 정도 벌 일이 생기겠지, 심지어 이런 생각까지 들면서 일을 줄이니 온화해진다.
적절한 거리는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을 보이게 만든다.혼자 키워오던 사람에 대한 경멸과 분노도 급속도로 누그러진다. 모든것엔 다른 상황과 스토리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것이 정상적인 삶이 되어야 한다. [벌지못하는 돈]에 맞춰졌던 포커스가 [이정도로 얼마나 아끼며 잘 살수 있을까]로 맞춰진다.
예민해 진다는것은 쉬어야 한다는 말이다. 남들보다 많이 쉬어가도 상관없다. 우리는 경주하고 있는게 아니다. 좀 멈추자, 좀 쉬자. 당분간은 진짜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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