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도르 Jul 10. 2020

언제든 멈춰도 된다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만 달린다_0702

닭가슴살 마저 맛있다.

다이어트, 결정적으로 좋아하는 옷을 입기 위해서였다. 옷을 취향대로 고르는 게 아니라 오직 사이즈로만 고르다 보니 스트레스가 날로 심해졌다. 현재 한국 사회의 라지 사이즈는 옹졸하고 이기적이다. 그 이기심의 콧대를 높이는데 한몫하기가 싫어 빅사이즈 몰을 찾았지만 옷 소재의 퀄리티가 너무 나빴다. 단추와 단추 구멍이 잘 맞지 않아 30만 원어치의 옷 중 12만 원어치의 옷을 버려야 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의식주 중에서 ‘의’로 인해 나날이 스트레스를 폭증시키던 봄의 어느 날, 더 이상은 이렇게 살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것을 포기한다는 건 삶의 의지를 잃는 것과 같다던 나는 생에 최고의 ‘독기’를 품었다. 독기가 가장 강력하던 4월의 주말, 커피 한 잔으로 하루를 버티기도 했다. 그리고 매일 12,000보 이상을 걸어서 퇴근했다. 당산역에서 신정역까지 공복인 상태에서 어지러울 만큼 걸었다. 집에 도착하면 닭가슴살을 먹었다. 그렇게 한 달을 독기로 걸었지만 1kg이 왔다 갔다 할 뿐 크게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진 않았다. 내생에 최고 수준의 독기였지만 진짜 독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초짜였다. 더 강한 식단 조절과 강도 높은 운동이 필요했지만 내 체력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무작정 굶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큰 행복인 나에겐 무리였다. 하루 두 끼 닭가슴살 샐러드를 먹고 퇴근 후 3-5km를 걷다 뛰다 하는 게 나의 최선이다. 포기하지 않을 만큼만 힘들게 운동을 하고 가끔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어가며 식단 조절을 한 지 3개월, 여름이 왔다. 한국의 여름은 어느새 동남아와도 같은 기후로 변했고 시도 때도 없는 비와 열대야 현상은 다이어트를 방해했다. 20kg를 뺀다는 건 그 어떤 스포츠만큼이나 전방위적인 자기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날씨, 계절, 식사, 약속, 관계, 휴가, 주말, 건강 등 일상의 모오든 것들과 싸워야만 한다. 세상에 아름다운 이별은 없듯 예쁘고 처절하지 않은 다이어트는 없다.


어느 날은 매우 독한 마음이 되었다가 어느 날은 피곤에 절어 다이어트고 나발이고 다 집어던지고 싶어 지는 게 우리의 일상이 아닌가. 일상은, 다이어트를 하면서 힘드냐, 그냥 힘드냐 그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해도 이견이 없을 만큼 살을 뺀다는 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자신과의 싸움을 매 순간 해내면서 길고도 지루할 정도로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해야 하는 것이다. 숨이 멎을 만큼 차오를 땐 욕이 나오기도 했고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포기하면 또다시 아침마다 옷장 앞에 서서 눈물 나는 바지를 입어야 한다고, 매 계절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큰 바지를 사면서 나 자신을 원망하며 살아야 한다고 나를 자극했다.


걷기만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살이 잘 빠지지 않아 약간이라도 더 강도 높은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고 막상 한 번 뛰어보니 자꾸만 앞서 나가고 급해지는 마음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숨이 찼다. 집중하지 않으면 넘어지거나 발이 삐끗할지도 몰라 내 숨과 속도에 절로 집중하게 됐다. 해가 뜨거운 한낮에는 절로 욕이 나왔다. 발이 불타는 것 같은 통증이 느껴져 여름 해가 보이는 순간에는 절대로 뛰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오늘은 비 내리는 수요일, 비를 맞으며 달렸다. 요즘 매일 비가 내려 며칠을 내리 쉬었더니 괜히 살이 찌는 것 같아 비를 맞고서 뛸 만큼 간절한 마음이 된 날이다. 비를 맞으며 뛰다니 나 자신이 대견했지만 그 대견은 30초를 넘기지 못했다. 막상 비를 맞고 뛰어보니 내리는 빗방울에 눈앞이 보이지 않았고 손이 와이퍼를 자청하느라 몇 번이나 넘어졌다. 대견은커녕 무식한 나 자신을 욕하며 결국 포기하고 돌아왔다.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비까지 젖은 나를 거울로 확인하고, 고생을 사서 하기엔 이제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어떤 일을 지속할 때 조금 무식한 편이다. 똑똑하게 머리 쓰면서 하는 걸 피곤하게 느낀다. 내가 무엇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은 아직까지 ‘무식하게’인 것 같다. 무릎도 좋지 않아 달리기를 한 이후 통증이 날로 심해졌지만 아직 달리기를 포기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렇게 무식하게 3개월간의 다이어트를 했다. 목표한 20킬로 중 이제 겨우 3킬로가 빠졌는데 내 무릎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운동이라고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자신의 건강과 몸의 상황에 맞게 적당히 하는 게 도움이 된다. 더 무리해서 뛰고 더 완벽하게 식단을 줄였더라면 벌써 10킬로가 빠졌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3개월 동안의 전방위적인 나와의 싸움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숨이 멎도록 차오르는걸 매우 싫어하고 숨이 차면 멈춰야 하는 사람이다. 운동을 더 많이 하면 개운해지는 게 아니라 스트레스를 받고 무릎 통증이 심해진다. 내가 뭘 하든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세상에 넘쳐난다. 하지만 내가 그 사람들처럼 살 수는 없다. 내 몸에 맞는 운동은 그 사람이 하는 운동과 다르고 아무리 좋은 다이어트 계획이라고 해도 나에겐 언제나 무용지물이다. 나는 내일도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만 달릴 것이다. 숨이 차서 힘들어지면 멈추면 된다. 그래야 내일 또 뛸 수 있다.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내 방식대로 살을 뺄 수 있다. 20킬로를 빼려면 20개월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나는 또 측면 돌파를 선택한다.


내일부터는 뛰든 걷는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조절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 자신과 약속했다.

-빗속은 달리지 않기

-잠시 운동을 멈춰도 나에게 화내지 않기

-굶을게 아니라면 먹고 싶은 것은 맛있게 먹기

-군것질은 하지 않기

언제든 멈추면 되는 나만의 다이어트처럼 숨이 차지 않을 정도로만 애쓰며 살고 싶다.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이전 03화 지금 해야 할 것은 준비운동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