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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도르 Jul 27. 2020

50미터 너머를 볼 것

메마른 일상에 촉촉함 더하기

가끔 이런 풍경도 보고 살아야지

주기적으로 안과에서 인공눈물을 처방받는다. 처음 눈이 건조해 안과에 갔을 때 인공눈물의 존재를 알고 정말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눈물마저 인공적으로 주입해줘야 그나마 무엇을 보고 살 수 있다니 한편으론 짠했지만. 


인공눈물이 일상이 되고나서는 당연한듯 나의 눈물을 주기적으로 처방받는다. 메마른 것들이 늘어남에 따라 가방속에 챙겨야할 소지품도 점점 늘어난다. 핸드크림, 헤어오일, 인공눈물, 립밤 등. 산다는건 점점 메말라가고 챙겨야할건 많아지는 것이란걸 정직하게 시간을 보내고서야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동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매우 거추장스러워지기도 한다는 것도.


언젠가 습관적으로 안과에 간 날 의사선생님은 인공눈물이 아닌 자연눈물이 나오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고선 대뜸 창밖 저 멀리 파란지붕을 쳐다보란 거였다. 파란지붕 뒷집 옥상에서 누군가 빨래를 널고 있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요즘 사람들은 눈 앞에 것만 보고 살잖아. 그게 문제지. 가까운 것만 보고 살면 평생 인공눈물 넣어야 돼. 가끔 눈이 뻑뻑하다 싶을때 저 멀리 50미터 너머를 쳐다봐, 그럼 자연적으로 눈에 기름이 핑 돌거야


인공눈물만큼 확실하게 건조함을 해결해주진 않았지만 파란 지붕을 쳐다보고 있자니 눈이 조금 촉촉해진 것도 같았다. 사람의 눈은 기계가 아니라 멀리 또는 가까이 촛점을 달리 하다보면 이렇게 촉촉함이 분비되기도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병원을 나왔다.


우리 너무 눈앞에 것만 보고 사는게 아닐까. 마음 먹은대로 자주 떠나진 못하더라도 멀리 있는 것들을 쳐다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는 거였지만 손쉽고 빠른 방법에 익숙해진 것 같았다. 눈앞에 주어진 이 작은 것들이 내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는데 가까이만 보다보니 너무 크게 보였나 보다.


회사라는 공간도 멀리서보면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그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다 보면 그곳에서의 내가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드넓은 우주속 다양한 모습의 내가 아닌 아주 작은 공간속 내모습만으로 내자신을 평가하다보면 누군가의 말한마디를 일상의 작은 조각으로 여기지 못하고 그 말이 곧 내 자신이라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일상은 언제나 윤기가 돌진 않는다. 어떤 삶인들 늘 윤기가 돌까. 가끔이라도 눈앞의 문제들에서 조금 멀어질 수 있다면 그래도 조금 견딜만할 수 있을 거다. 지금 보이는 저사람과 나의 간격속에서 마음의 수분이 말라갈때는 옥상으로 가기로 했다. 바람을 쐬며 눈을 감고 이번주 일요일로 가본다. 지금 누군가와 문제가 생긴 사람도 나지만 일요일이 되면 마음에 드는 원피스를 하나 사고 먹고 싶었던 케잌을 먹으러 갈 나이기도 하니까. 다음달에는 경주로 여행을 갈 자유로운 나이기도 하고 제주도엔 가기만 하면 반겨주는 친구가 있는 나이기도 하다. 


삶이 메말라갈때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해외여행이나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다. 잠시동안 저 창밖의 한강을 말없이 쳐다보는 것, 여름을 뽐내고 있는 초록색 이파리에 내눈의 촛점을 맞추는 것, 지금 당장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 그런 것들이 아닐까. 빠른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근시안적 삶을 살게 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엄청 멀리도 아니고 단지 50m, 그 너머를 쳐다보는 것이다. 


근시안적 삶을 살면 우리의 일상은 건조해지기 쉽다. 원시안적 시야로도 사는거다. 가까이, 멀리 촛점을 왔다갔다 하다보면 내 시야도 균형을 잡을 것이다. 근시안적 관점으로 보면 눈앞의 얼룩도 커보이지만 원시안적 관점으로 생각하면 그것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 지금 당장 50미터 이상의 그 곳을 바라보자. 


오늘 나의 일상에 약간의 촉촉함이 생길지도 모른다. 





쓰는 아도르

사진, 글, 캘리그라피 adore
블로그 : http://jwhj0048.blog.me
인스타그램 : http://www.instagram.com/adore_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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